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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66화 (166/183)

166화

<귀족 영애가 등장하는 로맨스 표지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드디어 반응이 오네요. 영주님은 아니, 지구의 각성자는 참 축복 받았네요.”

“축복을 받았다고? 아니, 그전에 반응? 무슨 반응?”

“이걸 설명하려면 엄청 많은 내용이 필요한데.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 볼게요. [엘븐나이츠]를……. 아니지. 저분들도 영주님이 소환하신 분들이죠. 그러면 어디 보자. 거기 조인족 분. 이쪽으로.”

조인족 중에 그린 랭크인 젊은 전사가 소피아의 부름에 빠르게 다가왔다.

“조인족 형제님? 마력을 운기해주시겠어요? 영주님은 눈에 마력을 두르고 이 형제님의 몸을 보세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12시간 넘게 소피아의 말대로 행동하던 내 몸은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마력을 두른 눈으로 본 조인족의 몸은 조금 이상했다.

“심장에 마력이 엄청 뭉쳐 있네?”

“네. 일반적인 마력 사용자는 모두 마력 코어가 존재해요. 그게 기본이에요. 마력 코어에서 마력 회로를 늘려가면서 확장해가는 게 바로 경지의 상승으로 이어지죠. 마력 회로가 늘어나면서 시간 대비 받아들이는 마력의 양이 늘어나고, 당연히 그걸 위해서 마력 코어가 확장하고, 확장한 마력 코어의 크기에 맞게 늘어난 마력을 운용하기 위해서 마력 회로가 확장하고. 이런 선순환 과정을 거치면서 강해지는 게 일반적이죠.”

긴 설명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말하면서도 신성력을 투사해 코어와 마력 회로를 구현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주기까지 한 소피아는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증가한 마력 코어는 어느 순간 한계를 넘게 됩니다. 그게 바로 랭크의 벽을 돌파하는 겁니다. 당연히 마력 코어만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랭크의 벽을 넘을 때마다 몸이 받는 부하가 커지니 신체 능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됩니다.”

거기서 크게 한 번 숨을 내쉰 소피아는,

“그러다가 마스터에 이르면 마력 코어가 두 개가 됩니다. 거기 블루 랭크 조인족 전사님? 이쪽으로.”

다른 조인족 전사를 불러 확인시켜줬다. 가슴과 배에 하나씩 자리한 마력 덩어리를.

“그렇다면 블루 랭크를 넘어 네이비 랭크에 도달하면 마력 코어가 어떻게 될까요?”

“세 개가 된다?”

“녹투오스 형제님?”

소피아는 대답을 해주는 대신 녹투오스를 불러 확인시켜줬다. 가까이 다가온 녹투오스가 본격적으로 마력을 일으키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아니,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였다. 조인족인 녹투오스의 온몸에 가득 채운 연한 남색의 마력을 말이다.

“저렇게 됩니다. 그런데요. 영주님. 저 모습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익숙하다. 저건 각성자를 마력으로 살피면 저런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 거예요. 지구의 각성자는 축복을 받았구나.”

“글쎄?”

아예 이해 못할 논리가 아니긴 한데, 그래도 축복을 받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적을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마력을 다룰 일도 없을 거 아니겠냐고.

“그것보다는 차라리 좋은 AS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네요. 음. 아무튼, 갑자기 제가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었다고? 그냥 평소처럼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으려고 말을 꺼낸 줄 알았더니?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엘븐나이츠]는 물론이고 여러 종족이 섞인 [창천의 날개]조차도 모두 각성자처럼 변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정말 혜택이고요.”

“그래?”

솔직히 뭐가 뭔지 이해가 안 된다. 지금 이게 중요한가?

“네. 아크 리치? 데스나이트 로드? 그런 것 몇이 나타나도 이제 문제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영주님의 몸을 관찰하면서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아까도 말했지만, 지극히 정상이다.

“[창천의 날개]에 말괄량이 앤을 예로 들어볼께요. 최후의 전투에서 앤의 경지는 블루 랭크 중위였어요. 그랜드 마스터라는 경지는 최후까지 살아남은 앤이라고 해도 넘지 못할 정도로 높은 벽이죠. 하지만 지금은요?”

“음. 글쎄?”

“마스터 극에 도달했어요. 이미 이전의 경지를 넘어선 거죠. 그런데 만약에 [기사단 숙소]가 네이비(Navy) 랭크가 된다면요?”

“…특수 소환된 기사단이 모두 최소 네이비 랭크가 된다?”

“맞아요. 영주님. 지금 최고위 언데드 일곱 마리가 지구에 내려온 일이 엄청 큰일 같지만, 생각해보세요. 같은 방식이라면 바이올렛(Violet) 중위에 머물던 저라고 해도 영지가 승급한 것만으로도 어비스(Abyss) 랭크에 도달할 거라고요. 최고위 언데드? 귀찮게 하는 모기나 다를 거 없어요.”

그녀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그리고 한껏 코를 치켜세우고 있는 소피아를 보면서 그녀가 이렇게 장황하게 상황을 설명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미국 땅에 최고위 언데드 일곱 마리가 나타났다는 말은 들은 영지민이 제법 된다. 소문은 빠르게 퍼질 거고, 불안해 할 거다. 지구의 의지의 사제들도 불안해 할 거고.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엘라가 임신 중이다. 임산부에게 언데드의 기운은 아주 좋지 않으니, 언데드 근처에도 못 가게 할 거다.

어쩌면 그런 이유들로 나도 모르게 조급해졌고, 그런 모습이 내성 안을 힐끔거리는 이들에게 더 불안감을 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 소피아만 믿을게.”

“후후후후. 저만 믿으시라고요! 오호호호홋!!”

조금은 과장되게 악역 영애처럼 이상하게 웃는 소피아 때문인지 [내성] 주변의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자, 그러니 이제 조급함은 버리고, 이걸 받으세요.”

“응? 활?”

활이다. 그것도 나무로 만든 굉장히 원시적이고 조잡해 보이면서 연약해 보이기까지 한 활.

“이 활이 망가지지 않게 20m 과녁에 명중하게 100발만 쏴볼까요?”

그제야 내가 아직 스탯을 올리던 중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좋아.”

91 이후부터는 활로 미세 조정을 이뤄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저녁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 다시 저녁이 찾아왔을 때,

『신체 스탯 [근력]이 블루(Blue)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신체 스탯 [민첩]이 블루(Blue)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신체 스탯 [체력]이 블루(Blue)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신체 스탯 [내구]가 블루(Blue)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신체 스탯 [마력]이 블루(Blue)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특수 스탯 [위엄]이 블루(Blue)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특수 스탯 [교감]이 블루(Blue)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특수 스탯 [친화]가 블루(Blue) 랭크 99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스탯이 99를 달성했다. 이쯤 되니까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음. 네이비(Navy) 랭크라.”

네이비 랭크, 그랜드 마스터라는 거대한 벽을 말이다.

“후우……. 좋아. 가보자고.”

『신체 스탯이 두 번째 벽에 도달했습니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깨달음이나 마이너스 카르마 이억(200,000,000)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좋아. 가즈아아아아!!”

내가 평범하게 수련했다면 감히 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두텁고 거대한 벽을 느끼면서 그렇게 호기롭게 외쳤다.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특수 카르마 포인트로 대체합니다. 특수 카르마 이억(200,000,000)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카르마 포인트를 사용해 두 번째 벽을 넘기 위해서는 특수 스탯이 모두 동일 랭크의 동일한 스탯이어야 합니다.』

『특수 스탯 [위엄], [교감], [친화]가 모두 블루(Blue) 랭크 99임을 확인했습니다.』

『모든 조건 통과.』

『신체 스탯이 블루(Blue)에서 네이비(Navy)로 벽을 넘기 직전입니다.』

『벽을 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고통이 따를 수 있습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5.』

“빌어먹을.”

『4.』

“상당한 고통?”

『3.』

“아오!”

『2.』

“괜찮을 거예요.”

본능적으로 겁을 먹고 아무렇게나 투덜대는 내 어깨를 잡은 따뜻한 소피아의 손에서 신성력이 흘러들어와 나를 진정시켰다.

『1.』

“저만.”

『0. 시작!』

“믿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기절했다.

* * *

소피아는 기절하듯이 쓰러지는 이요한의 몸을 조심히 받았다. 그리고 [내성]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세계수의 뿌리가 드러난 땅 위에 그를 조심히 눕혔다.

‘저만 믿으세요. 나의 신이시여.’

신체의 개변으로 쉴 새 없이 꿈틀대는 이요한의 볼을 조심히 쓰다듬은 소피아가 몸을 일으켰다.

“선배님은 물러나세요. 마력이 흡수되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음.”

엘리아나는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소피아와 이요한이 해주는 인간적인 걱정과 따스함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언제 이런 걸 느껴봤겠나. 엘프의 숲에서 가장 강한 존재이자, 신성한 존재였는데.

‘그리고 에리카의 말도 신경 쓰이고.’

게다가 녹투오스의 보고가 끝나고 따로 정령을 통해서 전해온 [엘븐나이츠] 2조장 에리카의 보고를 자세히 들어봐야겠다는 어떤 예감 같은 게 들었다. 바이올렛(Violet) 극을 넘어 어비스(Abyss) 극초입에 도달한 엘리아나의 예감은 예지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녀는 자신의 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에리카.”

“네. 신녀님.”

“그거 다시 말해볼래? 왠지 기분이 별로였어. 아! [실프]. [마법사의 탑]에 가서 [마법사]들을 호출해줄래? 조금 급하니까 빨리 오라는 말도.”

시잉―. 싱.

서른 마리나 소환된 바람의 하급 정령 [실프]는 불러줬다는 것만으로도 기쁜지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줄기 바람이 되어 [마법사의 탑]으로 날아갔다.

“그러니까요.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그건 분명히 마법진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것도 구름 위에 있는 제가 느낄 정도라면 완성되지 않았음을 감안했을 때, 대륙급 규모일 거예요.”

“음.”

엘리아나는 다재다능하다. 그녀는 세계수에서 태어난 하이 엘프답게 마법도 상당한 경지를 이뤘고, 에리카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금방 이해했다.

“대륙급 규모? 아닌 것 같은데?”

엘리아나는 당시 에리카가 머물던 위치와 아크 리치 한 명이 주도하는 상황, 그리고 거리와 지구라는 특별한 환경을 빠르게 계산해 냈다.

“네? 그럼 괜한 호들갑이었을까요?”

“아니. 대륙급이 아니라, 행성급 마법진 같은데?”

“네에?!!”

그리고 이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혼자서 고민할 문제도 아니라는 것도.

“[마법사]부터 부를 게 아니었어. [실피드].”

이요한과 소피아의 호들갑에 소환을 해제했던 바람의 정령왕을 다시 불러냈다. 한줄기 미풍과 함께 나타난 [실피드]는,

“응? 다시 불러도 괜찮은 거야?”

오히려 주변을 빠르게 살피며 눈치를 봤다. 이요한과 소피아가 극성이라서 눈치를 보며 소환을 해제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실피드. 그것보다 그날 이상한 거 못 봤어?”

“이상한 거? 다 이상했지.”

“응?”

“그거 알고 있었어? 여기 영주가 키우는 작은 고양이 말이야. 그날 보니까 자이언트 윙 샤벨 타이거더라? 그거 멸종되지 않았나? 나 그날 보고 진짜 까무라칠 뻔했잖아.”

실피드는 다 좋은데, 이게 문제다. 너무 장난끼가 심해서 매사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

“실피드.”

나지막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한참 신이 나서 떠들던 실피드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하, 하하하. 미안. 미안. 이상한 거 물었지? 이상한 거라. 이상한……. 있었지.”

“뭔데?”

“거기 리치들. 뭔가 준비하는 모양이던데? 마기를 엄청 모으고 있더라고.”

“그걸 왜 지금 말……! 후우.”

“뭐, 나도 말할까 했는데, 그날 엄청 구박 받았잖아! 안 알려주려다가 엘라 너 니까 말해주는 거야. 흥!”

실피드가 토라진 얼굴을 하고 그렇게 어리광을 부렸지만, 엘리아나는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이런 문제에서 가장 먼저 앞장 서는 사람은 엘리아나였다.

그러나,

“하아…….”

엘리아나는 자신의 배를 조심히 쓰다듬으면서 충동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접어뒀다.

“소피아 후배님이 잘 해결할 때까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야겠네.”

실피드를 보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최고위 언데드 일곱이라면 실피드가 전투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그것도 상당히 먼 거리에서.

그렇다면 이요한과 소피아가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마력이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 거리라면 엘리아나도 무리를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선배님.”

“아. 왔어요? 후배님?”

“이제 선배님 차례예요. 신성무투술은 성공적으로 각인 됐어요.”

“그래요.”

둘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각인?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 마주 보는 두 미인의 모습은 귀족 영애가 등장하는 로맨스 표지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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