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74화 (174/183)

174화

<9,615년 하고 20주>

에픽 놀은 [광산]에 여러 입구 중 특수 광물 [미스릴]이 채광되는 광산 입구로 들어간 뒤로 행복에 겨워 죽어 버릴 뻔했다. 위를 보고 아래를 봐도, 왼쪽과 오른쪽을 봐도 모두 [미스릴]의 광맥이 보였으니까.

“끼에에에에에엑!!”

“여긴 천국이달!”

“난 여기 눕겠달!”

환호와 비명이 섞인 에픽 놀의 외침이 광산에 울리면서 시끄러워졌지만, 정작 에픽 놀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순식간에 장비를 착용하고 각자 마음에 드는 곳으로 흩어져 [미스릴] 광맥에 곡괭이를 박아넣는 것에 열중할 뿐이었다.

처음 두어 시간은 악명이 자자한 에픽 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실하고 충실하게 [미스릴]을 채광하고 그것을 충실히 모아 [광산]에 연결된 특수 시설 [도로]에 실어 보냈다.

아무리 개망나니인 에픽 놀이라고 해도 이백이 넘는 네이비 랭크의 강자들의 위협은 뇌리에서 쉬이 잊혀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딱 두 시간이었다.

“으흐흐흐흐.”

에픽 놀의 개차반인 성격이 [미스릴]을 참아내는 시간은.

“조금만 떼어먹으면 모른달.”

“아주 조금씩. 조금씩.”

“인간은 멍청하달.”

채광하는 [미스릴]이 100g이라면 그중에서 1g을 떼어먹기 시작했다. 100분의 1. 1%에 해당하는 양이니만큼 인간은 눈치채지 못하리라.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체로 그들이 본 인간들은 이런 쪽으로 무지했으니까.

그리고 다시 2시간이 지났을 때,

“조금 덜?”

“조오오금만 더!”

100g의 [미스릴]에서 2g을 떼어 먹기 시작했다. 2%였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났을 때는 4g을, 다시 두 시간이 지났을 때는 6g을 떼어먹었다. 그리고 에픽 놀이 [광산]에 입장하고 만으로 48시간이 지났을 때, 그들은 정확하게 절반인 100g의 [미스릴]에서 50g을 떼어먹고 있었다.

간도 크게 말이지.

녹투오스가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아, 아니달! 우리는 아니달!”

극구 부인했지만, 그들은 모두 네이비 랭크의 강자들에게 한 명씩 붙들려서 [광산]에서 끌려 나왔다.

무려 네이비 랭크다. 녹투오스나 마기스테르는 반쪽 짜리라고 평가했지만, 반쪽 짜리라도 네이비 랭크에 올랐다는 게 중요하다. 수련을 하면 부족한 반쪽이 채워질 테니까. 그런 존재들이 우르르 몰려와 양쪽에서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결박하고 끌고간다.

영지 중앙으로 향할수록 에픽 놀의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몇몇은 흐느껴 울기까지 했다.

철퍽―.

내동댕이 쳐지듯이 바닥에 주저앉힌 이들이 벌벌 떨며 주변을 살핀다.

“왜, 왜이러냘!”

그리고 개중에 몇몇은 호기롭게 대들기까지 한다.

“계약서 소환.”

[미스릴]을 뿌려 아티팩트에 가까운 계약서가 이요한의 손에 나타난다. 그리고 계약서의 6번 특약 사항이 섬뜩한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계약을 어겼더군.”

“우, 우리갈? 그, 그럴 리가 없달?!”

“맞달! 놀권탄압이달!”

“즈, 증거를 대랄!”

살고자 하는 의지는 얼마나 대단한가. 백 명이 넘는 네이비 랭크 강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저렇게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증거? 증거 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증거가 있다. [영주]라는 클래스에는 고유 능력 [영지]와 함께 [영지 관리]라는 일반 능력이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영지 관리]라는 이 일반 능력은 당연한 소리겠지만, 영지 전반적인 관리를 하는 능력이다. [영지 관리]로 보면 [광산]의 매장량과 채광량을 실시간은 물론이고 과거까지 다 볼 수 있다.

“이해했지?”

“으, 으으!”

“난 아니달! 저, 저놈이 쳐먹었달!”

“나도 아니달!!”

“아니! 너달!!”

증거를 보여달래서 보여줬더니 서로 자긴 아니고 다른 놈이 처먹은 거라고 우기더니 나중에서 서로 멱살을 잡다가 주먹질까지 하고 있다.

“개판이네.”

“놀이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개판은 그 개판이 아닌데.”

그러는 사이에 [엘븐나이츠]가 정령을 소환해 서로 주먹을 날리던 에픽 놀을 다 떨어뜨려놨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공증한 계약서가 불길한 색으로 반짝이잖나. 당연히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

“무, 무슨 뜻이냘?!”

“몰라? [차원 용병] 같은 뜨뜻미지근한 제약이 아니라고.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의 공증이면 죽는다고 해도 끝나지 않을걸? 죽어서도 영혼이 잡혀서 고통받지 않을까?”

“히이익?!!”

단순히 겁을 주려고 한 말이 아니다. 카르마 포인트가 공증한 계약서에 그 정도 강제성은 당연한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구의 의지가 사기 계약을 당하고 순순히 따를 이유가 없을 테니까.

“여기 이거 보여?”

────────────────

6. 특약 사항

1. “갑”과 “을”은 서로의 재산을 침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재산을 침해하는 경우 1만 배로 배상한다.

────────────────

계약서에서 불길하게 핏빛으로 물든 부분을 가리키며 말하자 에픽 놀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든다.

“너부터.”

“끼이에에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에픽 놀을 가리키며 계약서를 소환하자 역시나 6번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디 보자……. [미스릴]을 얼마나 드셨나? 이런. 벌써 4kg을 넘게 드셨네? 4,409g? 미쳤네. 아무튼, 배상합시다.”

“히엑?!!”

4.4t을 배상으로 내놔야 하는데, [미스릴]을 그만큼이나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그랬다면 여기에 일하러 오지도 않았겠지.

“사, 사, 사, 사톤?! 켁?!”

4t이라는 단위를 듣기 무섭게 에픽 놀은 눈을 뜨고 선 채로 기절했다. 다른 금속도 아니고 만능 금속이라고 불리는 [미스릴] 4t.

“기절했네? 기절하면 끝나냐? 저거 일단 땅에 목만 내놓고 파묻어.”

“네! 영주님!”

“다음은 너.”

“끼에에엑! 사, 살려줠!”

“응. 안 돼.”

“끼에에엑!!”

대부분 비슷했다. 가장 적게 처먹은 놈이 4t 정도였고, 많이 처먹은 놈은 7t이나 된다. 갚아야 할 [미스릴]이.

“일당을 모두 카르마 포인트로 돌리면 얼마나 일해야 하는 거야?”

“[아스가르드]에서 [미스릴] 100g 주괴 하나가 1,000만 카르마 포인트에 거래됩니다.”

나도 알고 있다. 사전에 들었으니까. 궁금해서 물을 게 아니라, 목만 내놓고 땅에 심어진 에픽 놀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그렇기에 미스릴 주괴는 불순물을 뺀 순수한 [미스릴]이라서 광산에서 저들이 퍼먹은 미스릴 광석보다는 더 순도가 높아서 비싼 거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걸 감안해도 100g 미스릴 광석에 400만 언저리라고 했으니까. 그만큼 [미스릴]이라는 특수 광물이 [차원 용병]의 본부가 있는 차원에서도 비싼 광물이라는 의미다.

“그러면 평균으로 5t으로 잡으면. 이게 얼마야? 5천억 카르마 포인트?”

“히에에에에엑?!”

“께에에에엑!!”

“주에 100만 포인트가 우리 계약이었습니다. 보스. 1년이 52주. 1년에 5,200만 카르마 포인트. 9,615년 하고 20주입니다.”

“이야! 너희 정말 좋겠다!”

“뭐, 뭐가 말이냘?!”

“너희가 좋아하는 [미스릴], [아다만티움], [마정석] 같은 광물을 1만 년 동안 캘 수 있는 거잖아!”

“아니다!!”

성인 남성 가슴 정도 오는 키의 에픽 놀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똑같은 자세로 땅에 심어졌기 때문에 바락바락 대드는 것이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지금 소리 지른 거야? 나한테?”

“아, 아, 아니달.”

“와아! 남의 [광산]에서 몰래 광석 훔처 먹고, 계약서도 어기고, 거짓말까지 하더니. 이제는 [광산] 주인에게 화를 내? 너 인성 문제있어?”

“무, 문제?”

“문제 있구나. 인성에. 그럼 해결해줘야지. 유다연.”

“네! 오빠! 진실의 방으로?”

“…그건 언제적 영화야. 그리고 그 영화 1편은 청불인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진실의 방으로 빨리 가요!”

그게 중요하지! 유다연 저거 발랑 까져가지고. 그리고 진실의 방이 어디 있냐?

“제가 이럴 것 같았아서 준비를 했죠. 녹투오스 할아범한테 물어보니까 얘들은 광물에 미친 놈들답게 물을 엄청 싫어한대요. 그래서 씻는 것도 싫어할 정도라더라고요? 물도 안 마신대요!”

“그래?”

“네! 그러니까 우리 다 같이 목욕할까? 얘들아? 아! 물론 대가리부터 담그는 신기하고 활기찬 목욕이야!”

유다연과 [엘븐나이츠]는 서로 어떤 교류가 있었던 건지 해맑은 목소리에 섬뜩한 내용의 그녀의 말에 땅에 박혀 있던 에픽 놀들이 모두 무 뽑히듯이 뽑혀나왔다.

그리고 대신에 세계수 옆에 며칠 전에 완공된 수영장에 던져졌다.

“끄에에에엑!”

“끼에에엑!!”

“카야아아아아악!!!”

누가 보면 용암이나 황산 호수에 던진 것처럼 보이지만, 저 물은 무려 물의 정령이 만든 정령수다. 오염은커녕 오히려 몸을 담그고 있으면 피부가 깨끗해질 정도로 좋은 물이다. 깨끗하다는 거지.

“근데 저것들은……? 왜?”

그런 정령수에 닿았음에도 마치 황산이나 염산이 몸에 닿은 것처럼 괴로워 하는 에픽 놀. 종말을 떠오르게 하는 잿빛 털의 위엄이 무색하리만치 목욕을 싫어하는 강아지처럼 아주 지랄 발광을 하고 앉았다.

“살려달랄!!”

“까내달랄!!”

“끼에에에에엑!!”

지들이 나오면 될 일인데,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손만 뻗고 있다.

“아무래도 쟤들은 못 쓰겠다. 그냥 죽이자.”

하는 꼬라지를 보니 빚을 졌다고 일을 열심히 할 놈들이 아니다. 보아하니 이미 빚도 잔뜩 졌으니, [미스릴] 캐는 족족 입에 처넣을 놈들이다.

“하긴 그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9,615년이라니. 에픽 놀은 보통 500년 정도의 수명을 가지고 있는데. 평생을 일해도 다 못갚을 액수 아닙니까? 이참에 처리하시죠. 그리고 다른 종족을 찾으면 될 겁니다.”

“그래.”

나와 녹투오스는 일부러 수영장 바로 옆에서 목소리에 마력을 은밀하게 실어서 대화를 나눴다. 에픽 놀을 죽이겠다는 대화를.

첨벙―. 첨벙!

‘그래’라는 긍정의 말을 꺼내기 무섭게 안에서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던 에픽 놀 놈들이 모두 수영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열심히 하겠습니달.”

“일하겠습니달.”

영혼이 바뀐 것처럼 진중한 목소리에 무릎을 꿇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는 놈들을 보고 있노라니,

“아……. 못 쓰는 놈들이야. 이거. 1000 나누기 55 같은 놈들이야.”

계획을 위해 설정한 대사가 아니라, 진짜로 못쓸 놈들 같아 보였다. 차라리 그냥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 1000 나누기 55는 뭐냐고? 핸드폰을 들고 있다면 계산기 어플을 실행해서 해봐라.

‘18.1818181818 같은 놈들!’

“히익! 사, 살려주세욜! 여, 열심히 일합니달!”

“[미스릴], [아다만티움], [부유석]도 캘 수 있었욜!”

이 새끼들 가만히 생각하니 더 열받는 게 뭔 줄 알아?

“…이 개자식들이 이제 보니까 존댓말 할 줄 아네? 그것도 엄청 자연스러운데?”

원래부터 종족 특성으로 혀가 반토막이 아니라는 거다.

“일단 좀 맞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