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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75화 (175/183)

175화

<4천억의 카르마 포인트가 부족할 줄이야>

우리는 나름대로 서두른다고 서둘렀다. 에픽 놀도 겁을 잔뜩 집어먹고 목욕이라고 쓰고 물고문이라고 읽는 코스를 밟고 난 뒤, 누구보다 열심히 채광을 하고 있다.

심지어,

“각자 균등하게 인간 각성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 채광 랭크가 오르면 오른 만큼 빚을 탕감해주고, 한 달에 한 번 가장 교육을 잘 한 한 명과 가장 많은 양의 특수 광물을 채광한 에픽 놀에게 각각 [미스릴 주괴] 100g을 준다. 광석이 아니라, 순수한 [미스릴 주괴]를 말하는 거야. 네이비 랭크 라쿤 [장인]이 제작한.”

이라는 보상을 걸자 눈에 불을 켜고 채광과 교육에 열을 올렸다. 무엇보다 광물을 주식으로 삼는 종족이니 만큼,

“매일 식사로 [마철 주괴] 300g을 주고, 주말에는 [텅스텐 마철 합급] 300g을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미스릴 주괴] 30g을 한 끼 특식으로 제공한다.”

식사를 광물이 아니라, 순도 100% 금속 주괴를 준다고 제시하자 눈에 불을 켜고 채광을 시작했다.

게으르면 죽이겠다는 채찍.

가장 열심히 한 사람은 미스릴 주괴를 준다는 당근.

그리고 일반 강철과 비교할 수 없는 마철을 주식으로 먹을 수 있다는 안정감.

마지막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 상대가 되게 했다.

이런 효과들로 라쿤 [장인]이 채광했을 때나 초반 이틀 동안 농땡이를 피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양의 특수 광물이 [장인]들에게 지급되었다.

실제로 라쿤 [장인]은 비명을 지를 정도로 기뻐했다.

그래. 우리는 분명히 서둘렀다.

『합계 특수 카르마 포인트 사십이칠억(4,200,000,000) 포인트가 소비되었습니다. [마구간]이 네이비(Navy) 랭크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합계 특수 카르마 포인트 사십이칠억(4,200,000,000) 포인트가 소비되었습니다. [도서관]이 네이비(Navy) 랭크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네이비 랭크의 [도서관]에서는 이제 [대마도사]와 [숲 지기]가 참여하면 마법이나 연금술 중 일부를 [스킬북]으로 제작할 수 있다. 시간이 좀 걸리고 카르마 포인트가 들어가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마법사 계열 각성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스킬북]이 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르마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고 모으면서.

[마구간]을 네이비(Navy) 랭크로 진화시켰을 때, 마치 [마구간]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마구간]은 진짜 [마구간]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마구간]에서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에 온갖 환수와 온갖 지형에 특화된 탈 것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리폰]과 같은 건 기본이고, 자이언트라는 수식어가 빠진 [윙 샤벨타이거] 같은 비행형과 [빅 터틀]이나 [벨루가] 같은 수중 전문 탈 것에다가 땅속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하이 몰] 같은 녀석들도 있다.

상황에 맞게 고용하면 되기에 앞으로 전장이 어떤 식으로 변하더라도 우리는 전장의 유불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놀라운 변화는 [마구간]에 드디어 영주 전용 탈 것이 더 나온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섯이나.

“갸으으으.”

“꺄아아.”

“갸르르르.”

노란색, 빨간색, 흰색, 파란색, 녹색, 검은색.

각자 색이 다 다른 도마뱀이다. 그래. 당신의 머릿속에 지금 스치고 지나간 그것.

드래곤 말이다.

옐로, 레드, 실버, 블루, 그린, 블랙.

드래곤이 무려 탈 것으로 등장한 상황. 대박이라고 몇 번이나 외치고 방방 뛰어도 좋을 상황이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 드래곤들이 모두 해츨링이라는 거다. 그것도 아주 어린 아이.

폴리모프조차 구현하지 못해서 지금도 내 옆에서 바둥대며 기대다가 넘어지고, 몸을 뒤집고 난리도 아니다.

“꺄아아아!!”

“귀, 귀여워어!”

“새로운 맛이야! 새로운 귀여움이라고!”

성인 상반신 만한 통통한 도마뱀이 자기 머리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지고 뒹굴거리는 모습에 자지러지는 건 여자들이지만,

“갸아.”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다. 드래곤이라는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이 아직은 내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기에 함부로 몸에 손을 대면…….

“갸아아아아아아앙!!”

운다. 그것도 엄청 크게 운다. 세상 떠나가라 울고, 운 녀석은 울다가 지칠 정도로 운다. 정말 온몸을 다해서 자신을 만지는 걸 거부한다는 게 느껴진다.

“유다연!”

“헤헤. 아, 아직도 이러네…….”

유다연이 만진 아이는 은빛 비늘이 신비로운 실버 드래곤 해츨링이었다. 저 녀석은 유독 하얗고 작은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할까? 설기와 하찮이들한테도 끔뻑 죽더니, 이번엔 실버 드래곤에 꽂힌 듯 보인다.

“괜찮아. 괜찮아. 뚝!”

우는 실버 드래곤 해츨링을 안아 토닥거려주고 나서야 우렁찬 울음이 그치고 훌쩍이다가 품에서 잠이 든다. 그 모습을 보던 다른 해츨링들은 자신도 안아달라고 칭얼대는데…….

“너희 엄청 커. 이 녀석들아.”

아까 말했잖은가. 성인 남성 상반신만 한 크기라고. 그런 녀석들이 여섯 녀석.

“에휴.”

어쩔 수 없이 [의형강기]로 모두 끌어서 몸에 부착하듯이 안아주고서야 칭얼거림이 줄어들었다.

어리광이 엄청난 여섯 도마뱀이지만, 이 녀석들이 드래곤이라는 건 새삼 먹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밥 먹자.”

“갸아!”

“꺄!”

소금 간을 하지 않고 잘 구운 토마호크를 뼈채로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걸 보면 귀엽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잖은가.

“먀!”

“먀먀.”

“먕!”

설기의 해츨링, 하찮이들이 우다다다 달려와 몸을 들이 박아도 꿈쩍도 안 하고 꼬리로 툭 쳐서 쫓아 보낼 정도로 힘이 장사다.

“어휴. 이 녀석들! 밥 먹을 때는 장난치지 말랬지!”

드래곤 해츨링의 꼬리질 한 방에 저 멀리 데굴데굴 굴러간 하찮이들이 다시 덤벼드는 걸 보면 장난이 아니라 싸움 같지만, 아홉 해츨링들이 지금 하는 행동은 밥상머리에서 투덕대는 말썽꾸러기 남매나 다름 없었다.

“아냐. 혼내는 거 아냐. 울지 말고.”

팔자에도 없는 육아의 시간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쪼개서 영지 건물을 업그레이드 하고 거기서 나오는 혜택을 영지로 돌려 준비에 준비를 더했다.

『합계 특수 카르마 포인트 이백십억(21,000,000,000) 포인트가 소비되었습니다. [치료소]가 네이비(Navy) 랭크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치료소]가 업그레이드 되기 무섭게 소피아가 [성녀]로 지정되고, 그녀 주변에 은색 갑옷으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무장한 존재들이 소환되었다.

[성녀 수호대]의 현신이다.

120명으로 이뤄진 [성녀 수호대]는 [기사단 숙소]에서 소환하는 기사의 특성과 [병영]에서 소환하는 병력의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마력이 아닌 신성력을 사용하며, 10명 단위로 뭉쳐 있을 때마다 [신성 군진: 성지]를 구현할 수 있고, 마스터의 전유물인 오러를 능숙하게 다루는 전투 병기들이다.

보라. 이 얼마나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달려왔는지를.

그런데,

『차원 지구에 차원 심연이 침식이 이뤄집니다.』

[텔레포트 게이트]와 [비공정 조병창]이 이제 막 손을 대기 시작했기에 저런 무시무시한 메시지가 뜨는 걸 막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냥 [텔레포트 게이트]와 [비공정 조병창]부터 빠르게 쭉쭉 올리지 않고 뭐 하느라고 하루 넘게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낮은 랭크에 오픈된 건물부터 올리느냐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합계 특수 카르마 포인트 팔천사백만(84,000,000) 포인트가 소비하여 [텔레포트 게이트]를 오렌지(Orange) 랭크로 업그레이드에 실패했습니다.』

『[텔레포트 게이트[Rank: Orange]]의 안정화를 위해서 네이비(Navy) 랭크의 [도서관]이 건설되어야 합니다.』

『합계 특수 카르마 포인트 팔천사백만(84,000,000) 포인트가 소비하여 [비공정 조병창]를 오렌지(Orange) 랭크로 업그레이드에 실패했습니다.』

『[비공정 게이트[Rank: Orange]]에서 제작된 [비공정] 착륙장이 건설 및 확장될 [성벽]의 랭크가 네이비(Navy) 랭크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저 조건들을 다 업그레이드 하고 이번에는 옐로 랭크로 업그레이드하려고 했을 때,

『합계 특수 카르마 포인트 사억 이천만(420,000,000) 포인트가 소비하여 [텔레포트 게이트]를 오렌지(Orange) 랭크로 업그레이드에 실패했습니다.』

『[텔레포트 게이트[Rank: Yellow]]의 마력 유동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마도사]와 함께 [대마도사]가 필요합니다.』

『합계 특수 카르마 포인트 사억 이천만(420,000,000) 포인트가 소비하여 [비공정 조병창]를 오렌지(Orange) 랭크로 업그레이드에 실패했습니다.』

『[비공정 조병창[Rank: Yellow]]에서 생산되는 중형급 [비공정] 생산을 위한 재료에 [치프 연금술사]와 함께 [숲 지기] 한 명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결국 이렇게 메시지가 뭘 하려고 할 때마다 태클을 거는 메시지에 차분하게 순서대로 영지 건물을 업그레이드 했다.

그렇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면 업그레이드 효과로 각 건물에서 새롭게 추가된 혜택을 정리하지 못하고 끌려다녔을 거다.

무엇보다,

“4천억의 카르마 포인트가 부족할 줄이야.”

그렇게 체계적이지 못하게 중구난방으로 영지 건물을 올렸다가 카르마 포인트가 부족해서 건물만 업그레이드 해놓고 [비공정]이나 [텔레포트 게이트]는 뽑지도 못 할 뻔했다.

“영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는 태교로 못 움직이시지만, 전 괜찮아요. 이번에 [성녀 수호대]도 소환해주셨잖아요. 제가 가서 [신벌(神罰)] 한 방 던져놓고 올게요.”

“아니.”

소피아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여차하면 그녀가 나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고.

소피아의 말처럼 언데드의 사기(死氣)와 소피아의 신성력은 서로에게 상극이다. 그렇다는 건 현재 영지가 네이비(Navy) 랭크에 올라 바이올렛(Violet) 극에 오른 소피아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저 메시지가 심히 거슬린다.

“심연(深淵). 심연이라.”

심연이라는 섬뜩한 메시지가. 왜냐고?

“분명히 세 번째로 지구를 침공하는 놈들이 〈심연의 병사〉였던 것 같은데. 지금 언데드가 〈심연의 추방자〉이고. 불길해.”

심연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도 불길하게 느껴졌다. 섬뜩함을 넘은 불길함.

“심연에 대해서 궁금하세요?”

“잘 알아? 소피아?”

“잘 모르죠. 심연은 그런 곳이니까요. 다만 어떠한 곳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요.”

“설명해줘. 아는 것 전부를.”

“전부라고 해도 별거 없어요. 심연은 모든 차원에서 품어서는 안 되는 개념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일종의 쓰레기처리장이라고 같은 개념이죠. 그렇다고 쌓아만 놓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것들을 모아 무로 돌리는 곳이 심연이라고 알고 있어요.”

“음?”

어째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곳인가?

“그런데 문제는 그 심연에 적응한 존재들이 태어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심연이 더 퍼지지 않게 신이 나서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아니, 그전에 그런 존재들이 태어난 게 왜 문제가 되는 건데?”

“사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더라도 모든 생명체는 종족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있잖아요? 심연에서 태어난 존재는 자신과 같은 존재들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심연이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래서 심연은 팽창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신 중의 신이 개입한 거예요.”

“그럼 심연은 더는 팽창하지 않는 건가?”

“아니요. 심연은 여전히 팽창해요. 그 안에서 태어나는 존재들이 늘어가니까요. 다만 신이 정한 범위를 넘어서면 모두 소멸하죠. 그렇게 신의 관여로 심연은 오히려 전보다 더 빠르게 차원에 해가 되는 개념을 무로 돌릴 수 있게 됐어요.”

“그럼 문제가 없는 건가?”

“심연 차원 자체는 문제가 없죠. 그 안에 사는 존재들이 문제죠.”

“그 안에?”

“모든 악의와 배척받는 심연에서 태어난 존재들. 그들이 그곳에 속해 있으면 어떤 흉악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죠. 똥개도 자기 집 앞마당에서는 반쯤 먹고 들어간다잖아요?”

소피아의 설명을 듣고 보니 더 불길하다. 함부로 소피아를 보내지 않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일단 조금만 기다려. 바로 준비할 테니까.”

“네.”

“비공정 제작하는 동안, 쉘터 특성 각성자들 다시 모이라고 해.”

“네. 영주님.”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경쾌한 걸음으로 멀어지는 소피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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