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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77화 (177/183)

177화

<카르마 포인트 핫타임이야.>

심연의 침식이 일어난다는 메시지와 함께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등장했을 때, 유토피아에 소속된 영지민의 얼굴에는 안도가 흘렀다. 지금까지 쭉 그래 왔으니까.

저들의 생각에눈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은 온전히 자신의 편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런 착각을 가져도 무방한 게, 지금까지 카르마 포인트가 개입한 순간에는 언제나 우리에게 막대한 이득을 안겨왔다.

또한, 지구인의 입장에서 그린스킨과 언데드는 침략자다. 그러니까 가해자라는 거다. 자신들은 피해자고. 평화롭게 세상을 살아가던 지구의 고정관념 속에 자신들이 피해자이니 심판이나 마찬가지인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피해자를 도와줄 거라고 여기는 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난 카르마 포인트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과 몇 번 간접적인 접촉을 하면서 느낀 건 지독하고 섬뜩할 정도로 이성적이고 중립적이라는 거다.

이성적이다. 중립적이다.

이 문장을 들으면 그게 왜?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를 인간이나 지성체가 아니라, 하나의 특이한 변수로 보는 것 같았지.’

그건 인간의 입장에서 굉장히 섬뜩한 시각이다. 감정이 결여되었다는 거니까.

“우리는 하던 걸 계속하자. 조사에 시간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시간을 번 것은 확실하니까.”

“네. 뭐부터 할까요?”

“카르마 포인트. 카르마 포인트가 필요해. 소피아. 미안한데.”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영주님. 제가 좀비를 쓸어버리고 올게요!”

“아니야. 소피아는 나랑 있고, [엘븐나이츠]에 연락해서 원정을 떠나라고 해줘. [창천의 날개]는 따로 갈 데가 있으니까. 방향은 동쪽으로. 러시아를 거쳐서 알래스카 쪽으로.”

“아아. [텔레포트 게이트]! 그것 때문이시군요?”

“맞아. 말이 나온 김에 [창천의 날개]는 호위 준비를 해주고. [마스터 기사]와 [그랜드 마스터 기사]가 함께 할 거야. [임페리얼 가드], [천궁]은 당연히 따를 거고. [피스메이커]는 남을 거야.”

“맞아요. 혹시 모를 일이잖아요?”

“그래. 그리고 쉘터 계열 각성자 몇 명이라고?”

“여섯이요.”

“한참 모자란데?”

“얼마나요?”

“글쎄. 지형이 바뀌기 전이었다면 대략 12,000km 정도였을 건데. 멸망이 시작되고 지형이 대격변을 통해서 바뀌고 대륙이 넓어져서 넉넉히 2만km를 잡고 봐야 하는데. 그럼 스무 명은 필요한데?”

“어, 엄청 부족한데요?”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고? 왜 니들만 알고 있냐고? 독자 무시하는 거냐고? 아니다. 폐급 작가 놈은 몰라도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텔레포트 게이트]의 연결 범위는 [텔레포트 게이트] 랭크가 오를수록 늘어난다.

화이트 랭크에서는 50km였다. 레드 랭크에서는 100km, 오렌지 랭크에서 200km, 옐로 랭크에서 400km였다.

그리고 현재 랭크인 그린(Green)에서 1,000km다.

또한, [텔레포트 게이트]는 바다 한가운데에 건설할 수 없다. 땅 위에 건설할 수 있고, 그렇다는 건 지도에서 최단 거리로 직선을 쭉 긋고 거기에 1,000km마다 게이트를 설치하는 단순한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거다.

무엇보다 중요하고 내가 쉘터 계열 각성자를 찾는 이유는,

“안전지대 안에서만 설치할 수 있어서 쉘터가 필요해.”

[텔레포트 게이트]가 사기인 만큼 안전지대가 필수다. 이런 세상에서 안전지대는 하나다. 각성자가 구현하는 쉘터 즉, 쉘터 계열 각성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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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포트 게이트 [Rank: Green]

(생략)

2. [텔레포트 게이트]는 최대로 연결할 수 있는 거리가 존재하며 랭크가 상승할수록 거리는 증가합니다. 현재 랭크[Green]에서는 1,000km입니다. 다음 랭크[Blue]에서는 4,000km입니다.

3. 건설할 수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의 수 역시 랭크에 따라 상승합니다. 현재 랭크[Green]에서는 스물다섯(25) 개입니다. 다음 랭크[Blue]에서는 백(100) 개입니다.

(중략)

6. [텔레포트 게이트]는 안전지대 영역 안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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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포트 게이트]를 스무 개나 건설할 수 있어서 개수에서는 얼추 계산이 맞아떨어진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휴.”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블루(Blue)로 올리면 된다. 그럼 [텔레포트 게이트] 간의 거리가 4,000km로 늘어나니까 최대 2만km라고 해도 다섯 명이면 해결되니까.

“카르마 포인트가 없으니 문제지.”

벌면 되지 않냐고? [엘븐나이츠]를 보냈으니까 조금 기다려보자고?

“허허허.”

그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네이비(Navy) 랭크에 오픈된 건물인 [텔레포트 게이트]와 [비공정 조병창]을 그린(Green)에서 블루(Blue)로 업그레이드하는데 필요한 카르마 포인트의 정가는 500억이다. 본래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면 즉시 건설까지 천억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여러 혜택을 받아서 420억에 건설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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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정보>

1. 이름(Name): 이요한

2. 칭호(Title): [지구가 도와주는] [장비 전문가] [그랜드 마스터]

2. 국가(Nation): 대한민국

3. 소속(Clan): 유토피아

4. 직업(Class): 영주(領主)

5. 카르마(Karma)

[선업(Plus Karma) 0]

[악업(Minus Karma) 0]

[특수 카르마 포인트 300,428,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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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작 3억 카르마 포인트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허. 고작이라. 고작.”

언제부터 내가 3억 카르마 포인트를 ‘고작’이라고 표현할 수 있게 간이 커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뭐,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넘어가고.

“보스. 이런 식은 어떠신가요?”

“응?”

지구 전도를 펼쳐놓고 고민하는 내게 올리비아가 이상한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사달이 발생한 미국 남부까지 최단 거리는 한국 동북쪽 러시아 대륙을 통해 알래스카와 앵커리지를 거쳐 캐나다에서 내려오는 경로다.

그런데 올리비아가 만든 경로는 직선도 아니고 남북으로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경로인데다가 무엇보다 중국과 몽골을 거쳐 이란, 터키를 지나 유럽 대륙을 타고 영국까지 찍고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타고 캐나다에서 남하하는 경로다.

“이건 더 멀잖아? 멸망 전의 멀쩡한 지구의 거리로 따져도 2만km는 되겠는데?”

“맞습니다.”

“그런데 이걸 왜 추천해?”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와 여기……. 이곳, 이곳, 그리고…….”

세계 전도 위로 그린 올리비아의 경로 위에 파란색 점이 찍히기 시작했다. 처음 몇 개일 때는 몰랐는데, 영국의 맨체스터까지 점을 찍는 걸 보고 올리비아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여기까지. 이 점들은…….”

“쉘터구나.”

“맞습니다. 지금까지 생존해 유지하고 있는 타국의 쉘터입니다.”

“그래! 그래! 이런 방법이 있었어! 올리비아! 천잰데?!”

“호호호. 과찬이세요. 보스.”

올리비아는 부끄럽다는 듯이 웃으면서 두 팔을 벌렸다. 남미 원정을 다녀왔을 때처럼.

“좋아! 칭찬해! 무척, 아주 몹시, 많이, 격렬히 칭찬해!”

뭐, 어떤가. 이런 기발한 해결책을 냈는데. 무엇보다 나도 싫지 않고.

“좋아. 그런데 협조를 구할 수 있을까?”

“왜요?”

“엉?”

“왜 협조를 구해야 하죠? 우리가?”

“그럼?”

“협조가 아니라 협박을 해야…죠?”

그…런가? 그래도 되나?

“하긴 지금 상황이 긴급 상황이긴 하지?”

“뭐……. 그런 것과 상관없지만요. 보스가 그게 편하시다면 그렇다고 하죠. 가이아 게시판을 통해서 공지를 전할게요.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텔레포트 게이트] 건설을 반대하는 멍청이는 없을 거예요.”

“그렇겠지.”

내가 괜히 ‘협조’를 입에 담은 게 아니다. 나도 협박이 더 편하다는 건 알지만, [텔레포트 게이트]라는 이 신비한 이능의 산물은 유사시, 그들에게 생명줄이 될 거다.

만약 쉘터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괴물이 등장한다면? 기존에는 쉘터를 없앨 수 없으니 옥쇄를 각오하고 버텨야 했지만, [텔레포트 게이트]가 쉘터 중앙에 존재한다면? 타고 도주한다는 방법이 생기는 셈이니까.

“그럼 [마정석]은 준비됐고, [텔레포트 게이트] 관리와 작동을 위해서 [마도사]를 상주시켜야 하니까 최소 25명의 [마도사]를 소환해야 하고, [대마도사]도 그 절반은 필요하네? 카르마 포인트가 되려나?”

[마도 공학자]나 [생명 공학자] 같은 경우는 [텔레포트 게이트] 건설뿐만 아니라, [비공정 조병창]에도 필요한 인력이라서 넉넉히 소환한 상태였지만, 25개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관리하고 작동시킬 [마도사]가 필요했다.

‘[마도사] 한 명에 2,500만 포인트. 스물다섯 명이면 6억 2,500만?! 3억이 넘는 카르마 포인트를 어디서 구해?!’

다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하고 있을 때,

“오빠! 오빠! 오빠!!”

유다연이 버프까지 써가면서 달려왔다. 평소처럼 장난스럽지 않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땀까지 흘려가면서.

“헤엑. 헤엑. 오빠.”

“천천히. 숨을 좀 쉬면서.”

“카르마……. 포인트. 미쳤어.”

“응?”

“카르마 포인트가……. 미쳤어!!”

“이게 무슨 소리야? 카르마 포인트가 뭐가 미쳤어? 천천히 말하라고 했지, 중간 다 자르고 말하라고 하진 않았잖아.”

“카르마 포인트가 200배는 넘게 들어와요. 진짜 미쳤다고요!!”

“…왜?”

같은 괴물을 잡고 카르마 포인트가 증폭하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그린스킨 침공 당시처럼 차원 겹침 현상 같은 적에게 유리한 지형이 생기는 경우.

“잠깐만. 설마? 그건가?”

“그거요? 오빠는 왜 이런지 알겠어요? 저 좀비 잡다가 진짜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상처가 생길뻔했다고요.”

“심연 말이야. 지금 소환했지만, 동결되었다는 그거.”

“아? 엥?!”

“아까 소피아 말을 들어보니까 심연이 소환되면 차원에 엄청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던데? 그래서 증폭된 거 아닌가?”

“지금은 아무 영향도 없잖아요?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동결 어쩌고 해서.”

“그러니까 이건……. 진짜 버근가?”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장난처럼 버그라고 말했지만, 이건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진 행운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렇게 있을 수 없다.

“경험치 이벤트다. 카르마 포인트 핫타임이야. 모두 내보내! 다들 나가!!”

“오오오오!!”

“와아!!”

이럴 때가 아니다. 영지에도 [임페리얼 가드] 20%만 지키게 하고 모든 병력을 내보냈다. 아직도 유지 중인 안전 구역 밖으로.

“설기야.”

“먀아.”[맡겨주세요.]

“고마워.”

“먀아~.”

[이정도 가지고~.]

설기는 바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거대한 크기로 변해 영지에서 소환한 병력을 태웠다. [기사단 숙소]에서 소환한 [마스터 기사]와 [그랜드 마스터 기사] 전부와 [병영]에서 소환한 [임페리얼 가드]와 [천궁] 그리고 [피스메이커]까지.

저들은 더 멀리 나가서 좀비와 악마를 사냥할 거다. 그리고 카르마 포인트를 포크레인으로 퍼 올리듯이 벌어올 거다.

“난 우리 [병력] 믿어. 믿을 거야.”

소피아가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이상해졌지만, 괜찮다. 카르마 포인트만 끌어올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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