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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78화 (178/183)

178화

<비공정>

유다연의 호들갑은 틀렸다. 200배라고 말했던 그것 말이다.

“200배? 유다연, 장난해?”

카르마 포인트가 200배로 증폭되었다는 그녀의 말이 맞지 않았다는 소리다.

“200배는 무슨. 500배도 넘겠다!!”

그래. 200배 따위가 아니라, 500배다.

좀비 한 마리만 잡아도 카르마 포인트를 플러스 5천, 마이너스 5천 포인트나 준다. 합쳐서 1만.

미친 거지.

“영지가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나?”

영지에 있는 전투 계열 각성자는 한 명의 열외도 없이 모두 영지 밖으로 나갔다. 카르마 포인트 폭탄이 터졌는데, 전투 계열 각성자가 이 시기에 영지 안에 있다? 그런 놈이 있으면 내가 영지민 자격을 박탈할 거다.

5배도 아니고, 50배도 아닌, 500배 이벤트!!

카르마 포인트가 순식간에 오르는 것을 확인하면서 포인트가 모일 때마다 [마도사]와 [대마도사]를 소환했다.

그렇게 소환된 [마도사]와 [대마도사]는 당장 [텔레포트 게이트] 건설에 나서는 게 아니라,

“다녀오겠습니다. 영주님. 허허.”

중급 이상의 언데드가 가득한 안전 구역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날아간 방향에서는 하늘에서 불의 비가 쏟아지거나, 마른 하늘에 벼락이 비처럼 내리거나, 한파가 몰아친다.

그러면 카르마 포인트가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지워버린 것처럼 언데드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안전 구역 너머의 하늘에는 검은 운석이 쉬지 않고 떨어지는 중이다.

순식간에 억이라는 단위의 카르마 포인트가 채워진다.

‘이 정도라면 [텔레포트 게이트]를 블루 랭크로 올리는데 필요한 420억도 가능한 거 아닌가? 아니지. 아니지. 멍청한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 하자. 차근차근.’

‘그나저나 리치 군주에게 무슨 일이 있나? 저번 이벤트 때처럼 수작을 부릴 줄 알았는데. 언데드를 계속 공급하네?’

‘하긴. 빡쳤을 수도 있겠네. 회심의 한 수로 준비한 걸 텐데. 잠깐만 그러면 폭증한 카르마 포인트는 누구 지갑에서 나오는 거지?’

‘리치 군주? 그랬다면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그 새끼 엄청 쪼잔해 보이던데?’

온갖 생각을 하면서 카르마 포인트가 모이면 [마도사]와 [대마도사]를 번갈아 소환했다.

[마법사], [마도사], [대마도사]의 공통점이 뭘까? [마법사의 탑]에서 소환했다는 것 말고.

마법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마법사는 화력부대다. 일반적인 마법사와 다르게 영지 건물인 [마법사의 탑]에서 소환한 작은 놈(Gnome) 종족 마법사는 범위 마법을 쉬지 않고 쏟아낼 수 있다. 한 방 때리고 20분 쉬고 다시 마법을 쏘고 이런 유리 대포가 아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MLSR(Multiple Launch Rocket System)라고 할까? 저게 뭐냐고? 다연장 로켓 시스템이다. 그 막 전쟁 영화보면 초반에 나와서 로켓 여러 개를 순차적으로 파파파팍 쏘는 그거 말이다. 광범위하게 적진을 초토화시키는 무기.

‘무슨 말을 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아니, 그전에 나 누구랑 이야기하니?’

아무튼, [마법사]보다 더 강한 [마도사]와 [마도사]보다 더더 강한 [대마도사]는 전장의 일부를 지우는 수준의 마법을 뿌렸다.

무엇보다 [마도사]와 [대마도사]가 광범위한 마법은 포토샵의 가장 큰 크기의 지우개 틀로 클릭한 것처럼 넓은 범위의 좀비를 지워버렸고, 지워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언데드가 다시 내려오는 10분에서 15분 동안 충분히 쉴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마도사]와 [대마도사]라는 전략 병기 같은 개념의 존재들이 15분마다 수천만 포인트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미쳤네. 이거 [심연] 그냥 두면 안 되나?”

그 달달함에 미친 소리를 입에 담을 정도로 달았다. 이빨이 썩어 없어질 정도로.

그렇게 꼬박 24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소피아는 계속 내 옆을 지켰다. 엘라는 당연히 억지로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자게 했으니 자리를 비웠고.

“다녀왔습니다. 영주님.”

“고생했어.”

무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인 [대마도사] 스무 명과 마스터 경지인 [마도사] 백 명. 전략 병기 같은 존재들이 무릎을 꿇고 사냥 보고를 마쳤다.

“일단 고생했으니까. 조금 쉬는 게 낫겠지?”

“…저. 영주님.”

“응? 아, 미안. 내가 마음이 급해서 조금이라고 말했는데. 12시간 정도 여유 시간을 줄 수 있어.”

“그게 아니라……. 영주님께서 개의치 않으신다면 연구부터 시작해도 될까요?”

“연구?”

“네. 영지에 [텔레포트 게이트]와 [비공정]을 제작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24시간을 언데드와 악마에게 마법을 날린 네이비 랭크의 [대마도사]라는 엄청난 지위를 가진 이들이 알아서 공밀레를 하겠다고? 왜?

“혹시 누가 눈치를 줬나? 지금 영지 상황이 좋지 않다거나?”

“허허허. 아닙니다. 영주님께서는 아니, 영주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법사라는 족속을 이해하기 힘드실 겁니다. 저희는 자다가도 새로운 연구 주제를 던져주고 자금을 지원해주면 벌떡 일어나는 족속입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네.”

“아니긴! 너는 죽어가다가도 연구비를 무한으로 댄다고 하면 벌떡 일어날 놈이야!”

갑자기 소란스럽게 각자 한 소리씩 하는 [대마도사]를 보면서 뭔가 [기사단 숙소]에서 소환한 같은 랭크인 네이비 랭크의 [그랜드 마스터 기사]와 다르다는 걸 느꼈다.

각자가 완벽한 인격체 같다고 할까? 그러니까 [엘븐나이츠]들이나 [창천의 날개] 기사단처럼 말이다.

“맞습니다.”

“응?”

“영주님이 생각하시는 추측이 맞는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내 생각을 어떻게 알고?”

“허허. 영주님은 얼굴에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십니다. 주위에서 이런 말 안 해주던가요?”

전에 누군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기사와 마법사, 연금술사의 차이가 거기에 있습니다. 저희는 실존합니다. 그렇기에 저희에게 새로운 연구는 존재의 의의이자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러니 쉬는 것보다 당장 [텔레포트 게이트]에 필요한 아티팩트를 제작하고, [비공정] 건설에 뛰어들고 싶다!!’ 라고 말하는 눈을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진해서 갈리겠다고 ‘열망’하는 괴짜들이라니.

“그렇게 해.”

“허허허허! 영주님의 자비에 감사합니다.”

이걸 자비라고 말한다? 감사하다는 말은 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언젠가 소피아가 그랬다.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다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인 지금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고. 지금 난 그녀의 말에 십분 공감한다.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별개로 좋아서 연구에 뛰어든 네이비 랭크의 괴물 [대마도사]. 그것도 무려 스무 명이나 되는 합류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최초의 [비공정]을 뽑아내기에 이르렀다.

무려 그린(Green) 랭크의 [비공정 조병창]에서 제작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비공정]인 베히모스 등급이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성벽 위에 확장된 공간에 ‘주차’되었다.

베히모스 등급 비공정.

전장, 그러니까 비공정 선수에서 선미까지, 더 쉽게 설명하면 비공정의 끝에서 끝까지 세로의 길이가 370m였다.

세상이 멸망하기 전 지구의 군함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미국의 니미치급 항공모함이 300m 언저리였다는 걸 생각하면 작지 않은 크기다.

선수부터 선미까지, 유려한 곡선을 이루며 유선형으로 잘 빠진 [비공정]은 흔히 애니메이션이 등장했던 공중전함과 달리 배처럼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서프보드를 연상케 할 정도의 형태로,

“어라? 어디서 본 모양인데?”

“저거 그거다. 롯데월드타워!”

“오! 닮았어!”

세로로 세워두면 롯데월드타워와 비슷한 형태의 단순한 형태다. 물론 롯데월드타워보다 훨씬 더 폭이 넓고 깊이도 크지만.

“닮긴 했네.”

닮았다. 다만 롯데월드타워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옆쪽하고 앞뒤로 무수히 많이 달린 건 아무리 봐도 포(包) 같은데?”

롯데월드타워의 외관에 달린 창문 만큼,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 포였다. 그것도 포탄을 쏘아내는 형식이 아니라,

“그리고 마력 대포 같지? 망루에 달린 것과 비슷한?”

[마력 포대]에 구성품인 마력 대포와 유사하게 생긴 위협적인 무기가 잔뜩 달려 있었다.

“흠. 저거 날 수 있나? 가능해? 성벽에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도 상식이 파괴되는 느낌인데?”

“성벽이 안 무너지는 게 신기해서?”

“응.”

“뭐, 우리 성벽은 무려 네이비(Navy) 랭크라고. 무너질 것 같아?”

비각성자, 그러니까 악하진 않지만, 착하지도 않은 영지민들. 그들은 광신에 가깝게 펠리카 교를 믿고 신봉했다. 이런 세상에서 자신의 힘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들은 절실했고, 적지 않은 이들이 기어이 신성력을 개화해냈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히 좀비나 언데드를 잡아 카르마 포인트로 강해질 수 있는 이들이 아니기에 이 난리에도 영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영지를 지켰다. 성벽 위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면서.

광신에 가깝게 신봉한, 그래서 신성력을 깨우치고 소피아와 [창천의 날개]가 직접 전수한 신성무투술을 배운 이들은,

“조용히.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마라.”

무려 나라는 인간을 신으로 섬기는 이들이다. 솔직히 저들의 경계보다 누군가 영지로 다가온다면 당장 [망루]가 불을 뿜을 거고, 내가 먼저 알아차리겠지만.

“미안하네.”

“음. 미안.”

이들은 진심이었다. 잡담을 나눈 두 청년은 정말 큰 잘못을 한 것처럼 허리를 숙여 주변에 사과하고 다시 성벽 너머를 경계했다.

“저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지 그랬어?”

“어머. 영주님. 저건 강요가 아니에요.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선물을 하는 팬에게, ‘내가 너보다 돈이 더 많으니까 이런 거 사지 마.’라고 말하면 좋기도 하지만 슬프잖아요. 그런 것보다 몇 배나 더한 실망감을 느낄 거라고요. 좋아서 하는 거니 저대로 두세요.”

“그래?”

“네! 저것 보세요.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갔잖아요. 흐흐흐.”

정말로 온몸에 힘을 빡 주고 사방을 경계하는 이들. 비각성자이며 신성력을 깨우쳐 ‘성투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들을 보면서 소피아는 재롱을 떠는 어린 조카를 바라보는 눈으로 웃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비공정]이 빨리 나왔어. 이 속도라면 당장 내일부터 이동해야겠는데?”

“그렇겠네요.”

“흐음…….”

가슴이 묵직하다. 괜히 눈이 따갑고 피곤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그런 내 상태를 인지하지마자 심장이 빠르게 뛴다.

“영주님.”

그때 내게 기대듯이 안기는 소피아의 온기에 잔뜩 좁아졌던 시야가 다시 화악 넓어짐을 느낀다.

“호위는 걱정하지 마세요. 당장 리치 군주가 눈앞에 나타나도 몸을 뺄 수 있도록 준비할게요.”

“그래. 믿어.”

소피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 온기를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올라온 트라우마를 몰아냈다. 회귀 전, 지금처럼 어쩔 수 없이 쉘터 밖으로 나갔다가 버림 받았던 기억이 몰고 오는 트라우마를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영주님은 안전할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언니랑 동생들이랑 약속했거든요.)”

너무 작아서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듣지 못했지만, 든든하게 느껴지는 소피아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우리는 [내성]으로 향했다. 그리고 떨쳐내지 못한 남은 불안함을 소피아와 격렬한 정사로 지워버리고,

“모두 탑승하세요!”

최초로 제작한 [비공정]에 가장 먼저 올라탔다.

자그마치 사흘을 보낸 후에야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어 미국 중부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안녕하십니까.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입니다. 앞서 양측에서 제기한 이의에 대한 조사가 끝났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조사 결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카르마 포인트가 다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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