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80화 (180/183)

180화

<이게 바로 전설의 삼연벙을 탄생시킨 벙커 러쉬다.>

북미(北美) 대륙.

그 광활하고 넓은 대륙에 도착한 것은 이른 새벽이었다.

“영주님. 안 주무셨어요?”

“이 정도는 거뜬해. 며칠 안 잔다고 문제가 생길 몸도 아니고. 알잖아?”

“그래도 이동 중에 눈을 좀 붙이시는 게 좋을 텐데요.”

“괜찮아. 오히려 잠이 안 와.”

트라우마 같은 것 때문에 잠이 안 오는 건 아니다. 엄청 걱정했던 트라우마는 영지를 벗어나서 첫 번째 쉘터에 도착하기 무섭게 사라졌다. 아니, 그 전에 사라진 것 같았다.

주변을 철통처럼 경호하는 네이비 랭크의 [그랜드 마스터 기사] 수십과 [마스터 기사] 백 명의 존재 덕분인지, 아니면 내 옆을 지키며 신성력을 진하게 피워올린 소피아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트라우마가 아니라면 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영주님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계시네요. 이렇게 괴로워하실 줄 몰랐어요. 보통은 잘 못 느끼는데.”

“심연이라는 게……. 이런 거였다니.”

북미의 북쪽, 캐나다 인근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느껴지는 섬뜩한 이 느낌. 본능에서부터 오는 거부감. 아무리 영화라도 사람을 잔인하게 썰어대는 장면을 보면 구토가 올라오는 것처럼, 인간으로서의 존재감과 마력이 강렬하게 거부하는 기운.

이 기분은 마치 심한 멀미에 고생하는 사람이 옆자리에 술 냄새와 악취를 풍기는 노숙자를 앉히고 이동하는 것과 같았다.

“돌겠군. 가까워지니까 더 심해져.”

“그런데 이상하네요? 분명히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어비스 존을 ‘동결’한다고 했는데요? 그들이 말하는 동결은 단순히 온도를 낮춰 얼리는 게 아닐 건데……?”

소피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가,

“아! 어쩌면?!”

“응?”

“영주님이 그랜드 마스터에 올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관여한 일이라면 이건 말이 안 돼요. 그렇다면 한 가지. 동결이 풀리고 있는 거예요. 즉, 가까워지고 있어서 더 불편하신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동결이 서서히 풀리면서 불편함을 느끼시는 상태라는 거죠.”

“그 말은……?”

“네. 조사가 끝나간다는 뜻이죠.”

그리고 소피아의 말에 마치 들켰다는 듯이,

『안녕하십니까.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입니다. 앞서 양측에서 제기한 이의에 대한 조사가 끝났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조사 결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본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이 면밀히 조사한 결과 〈심연의 추방자〉 측에서 설계 및 시공한 차원 침식 주술 법진 통칭 [어비스 존]은 계약에 위배 되지 않습니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 메시지가 등장했다.

“어라? 결론이 이렇게 난다고?”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론을 내렸다는 것에 실망하기 잠시,

『하지만 심연의 출몰은 차원 공방전 계약 이전에 위대한 창조주께서 정한 규칙에 어긋납니다.』

『본디 심연(Abyss)이란, 차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모든 종류의 개념을 모아 소멸시키는 장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연을 창조주께서 정한 의지에 의해 절대로 지정한 영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호오?”

뉘앙스가 바로 바뀌는 것에 안도했다.

『심연을 다른 차원에 연결한 행위는 계약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신벌이 내려올 차원의 절대규칙 위반입니다.』

『본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은 이번 사안을 본 시스템 선에서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 이번 일을 모두 신계에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판결이 내려오길 기다리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음에 양해를 부탁합니다.』

『판결 결과를 통보합니다.』

무려 ‘통보’라는 단어를 써서 이번 결정에 반목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나, 심연을 차원으로 끌어들인 차원 〈심연의 추방자〉 차원 심연 침식을 본래대로 돌려놔야만 한다.』

『그 기한은 보고가 전해지는 즉시이며, 만약 지체할 경우 시간 당 막대한 카르마 포인트를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이때 지불한 대가는 모두 심연이 차원 〈지구〉와 분리하는 데 사용된다.』

『둘, 차원 심연을 지정된 권역 밖으로 빼돌린 것에 대한 처벌을 내린다. 카르마 포인트 ************을 징수한다. 기한은 보고가 전해지는 즉시이다.』

『셋, 이 모든 일을 계획한 개체명 [리치 군주]의 영혼을 차원 〈지구〉에 침식된 심연이 소멸하는 즉시 회수한다.』

『넷, 차원 〈지구〉 역시 자신이 다스리는 차원에 심연이 침식함에도 조처를 하지 않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차원 공방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음을 고려하여 카르마 포인트 ****을 징수하는 것으로 갈음한다.』

『이 모든 판결은 위대한 창조주 휘하의 고귀한 계약과 마법의 신의 이름으로 즉시 시행된다.』

츠―스스스스스.

그건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네이비 랭크에 오른,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의 초인으로 단언하건대 그 소리는 분명히 들렸다.

추운 겨울 아침, 건조하고 바짝 언 바닥 위를 타고 흐르는 바짝 마른 시린 바람이 내는 소리처럼 바닥에 붙어서 들리는 그 소리는,

“흐음…….”

이상하리만치 섬뜩하고 불가해한 느낌을 줬다.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면서 뭔가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소멸의 벽입니다. 마스터.]

사라졌던 반지의 에고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목소리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마 그 상태가 계속되었다면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입니다. 마스터.]

‘출퇴근이 너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니?’

[…죄송합니다. 다만 심연이 등장할 기미가 보인 이후부터는 저희도 그것에 전념해야 했기에. 혹시라도 제가 미리 실마리라도 드렸다면 일은 지금보다 더 복잡해졌을 겁니다.]

‘음. 뭐, 이해는 못하겠지만, 어쩌겠어. 그러려니 해야지. 그것보다 소멸의 벽?’

[심연이 지구와 닿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신의 권능이 들어간 벽입니다. 저 벽에 닿는 모든 것은 명계의 지배자의 힘인 《소멸》과 같은 힘을 지닙니다.]

‘그래서 이런 느낌인 건가? 아득하고, 범접할 수 없는 느낌에 이해할 수 없는 감각. 그리고 꺼림칙함.’

[네. 《소멸》은 그런 힘이니까요. 신조차 무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

‘그건 그렇다고 하고. 저걸 어쩌지? 내가 준비한 게 다 무용지물이 되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마스터께서 준비한 것은 정말 기발하고 시의적절한 계획입니다. 바로 실행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내가 준비한 게 뭔지 알아?’

[네. 전 아니, 우리는 보고 있었으니까요.]

“좋아. 시작하자. 소피아.”

“네. 영주님! 준비하고 있어요!”

소피아의 지시 아래 비공정이 빠르게 날아간다. 그 사이 소피아는 자신 옆에서 긴장한 얼굴로 대기 중인 여자에게,

“괜찮아요. 아까 봤죠? 네이비 랭크의 기사들. 그들이 당신과 당신 쉘터를 지킬 거예요. 카르마 포인트는 충분하죠?”

“네, 네네. 너, 넉넉히 주셔서. 추, 충분해요. 합니다.”

“그래요. 긴장하지 마시라니까요. 이름이?”

“샐리, 샐리 알브라이트에요.”

“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소피아와 가벼운 대화를 이어나가는 샐리라는 여자의 고유능력은 쉘터 계열이다. 미국에서 작은 쉘터를 운영하던 그녀는 평화의 날에 영지에 합류했다.

쉘터 계열임에도 전투에 열심히 참여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그 막중한 중압감을 벗어버린 것에 58,000% 만족하며 유토피아에 적응한 케이스.

이번 일도 저렇게 벌벌 떠는 모습과 다르게 자원했다.

“하, 하하하. 그 영화도 아세요? 오, 오래된 영화인데.”

“그럼요! 명작이잖아요!”

“어릴 때 많이 들었어요. 해리는 어디 있냐고. 언제 만날 거냐고. 헤헤.”

영화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는 걸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샐리의 긴장이 풀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단순히 대화 때문이 아니라, 소피아가 은은하게 일으킨 신성력 덕분이다.

그 여파로 소피아의 머리 뒤에 헤일로라고 불리는 광배가 보였다.

“그러니까요. 무엇보다 영주님과 저도 함께할 거예요. 유다연이도 오고 싶다고 했는데, 샐리도 알겠지만, 피버 타임이잖아요? 그래서 못 왔어요. 그 정도로 이번 작전은 엄청난 작전이에요. 나중에 두고두고 이번 일을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밥을 얻어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보장해요!”

“그랬으면……. 정말 좋겠네요.”

나중에 두고두고 밥을 얻어먹는다는 건, 살아서 유토피아에 돌아간다는 의미이기에 샐리는 간절히 바라는 것을 상상하는 것처럼 해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착했다. 소피아.”

그 모습을 서너 걸음 떨어져서 보던 지켜보는 사이 [비공정]은 계획한 지점에 정확히 착륙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그랜드 마스터 기사]가 내리고, 그 뒤를 다라 [마스터 기사] 역시 내려 사방을 경계했다.

그 모습을 [비공정] 안에서 확인하고 난 뒤에야,

“우리도 가요.”

소피아는 샐리를 옆에 나란히 세우고 [성녀 수호대]의 호위를 받으며 미국 남부에 위치한 미군 기지 포트 블리스에 발을 디뎠다.

“시작할까?”

“네! 샐리!”

“네, 네네! 하, 하겠습니다! 고, 고유능력 발현. [방공호].”

우우우웅―!!!

샐리를 중심으로 반투명한 노란색의 마력 돔이 형성됐다. 그것은 그녀의 고유능력이 옐로(Yellow) 랭크라는 걸 의미하는데. 당연히 그녀가 이번 원정을 준비하면서 카르마 포인트를 지원 받았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경지다.

쉘터 계열 중 모든 형태의 침입을 방어하는 마력 돔 형태의 고유능력이기에 다른 쉘터 각성자가 아니라, 그녀가 언데드와 가장 가까운 이곳에 쉘터를 구현했다.

“돼, 됐어요!”

“됐대요! 영주님!”

“그래. 이쪽도 다 돼가. 잠시만.”

『마이너스 카르마 포인트 팔천사백만(84,000,000) 포인트가 차감됩니다.』

『[텔레포트 게이트] 건설이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우리가 세운 계획이자, 반지의 에고인 군주가 칭찬한 계획은 별 게 아니다. [텔레포트 게이트]와 [비공정] 그리고 [대영주]로 상승한 클래스에서 파생된 기능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부속 영지] 지정.”

『현재 구현된 안전지대 [방공호]를 [부속 영지]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카르마 포인트 5천만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지정해.”

『[부속 영지]로 지정하기 위한 조건을 검사 중입니다.』

『안전지대 확보 완료.』

『[대영지]와 연결성 점검. [텔레포트 게이트] 확인.』

『[부속 영지]에 적대적인 존재 점검. 없음.』

『해당 안전지대가 [부속 영지]로 지정됩니다.』

화아앗―!

밝은 순백의 빛과 함께 방공호 영역 경계에 아주 예전에 봤던 나무로 된 목책이 둘러쳐졌다.

“[성벽], [성문], [병영], [내성] 업그레이드. 즉시 건설.”

샐리의 고유능력 랭크인 옐로 랭크와 동일한 랭크를 공유했던 [부속 영지]는 제한 랭크인 2단계 아래인 그린 랭크까지 빠르게 그 덩치를 키워나갔고,

『…영지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벤트 보상으로 획득한 기간제 안전지대에 차원 〈지구〉 소속이 아닌 존재들이 머물고 침범했습니다.』

『최고위 언데드 아크 리치 네 마리와 데스나이트 로드 두 마리, 어비스 나이트 한 마리입니다.』

『지엄한 계약에 의거, 적대적이며 허락되지 않은 존재들을 배제합니다.』

“이게 바로 전설의 삼연벙을 탄생시킨 벙커 러쉬다. 이 개자식들아.”

그리고 이런 기발한 계획은,

『이벤트 보상으로 획득한 기간제 안전지대 권역 안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기운 [심연]이 존재합니다.』

『기운을 몰아냅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효과를 불러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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