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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 나만+장르가 이상하다-183화 (183/183)

183화

<계약을 속행할 수 있습니까?>

[비공정]에서 쏟아지던 포화는 멎었다. 그렇다고 최고위 언데드인 황천 기사단장이라는 놈이 죽은 것도 아니다.

언뜻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비공정 조병창]의 랭크는 고작 그린 랭크인데, 어떻게 거기서 제작한 [비공정]에 탑재한 마력 포대에서 푸른색과 연하지만 남색까지 마력을 쏘아내느냐고.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공정]에 설치된 마력 포대가 마력을 집적, 압축, 사출하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복잡한 건 건너뛰고 간단히 설명하면,

[마정석] → 마력 집적 → 마력 압축 → 마력 사출

방식으로 작동되는 게 바로 [비공정]에 탑재된 마력 포대 시스템이다.

그래. 여기서 중요한 게 바로 [텔레포트 게이트] 건설에도 들어가는 [마정석]이다. 네이비 랭크 [광산]에서 채광되는 특수 광물말이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마정석]의 아이템 랭크는 네이비다.

그러네 남색 마력도 압축해서 쏠 수 있는 거겠지. 문제는,

[비공정 메인 시스템에서 보고. 마력 포대의 포신 과열. 함포 사격 중지를 함장께 요청.]

아직 그린 랭크에 불과한 마력 포대의 포신이 네이비 랭크와 블루 랭크 마력을 감당하지 못 한다는 거다.

“포격 중지.”

당연히 이번만 쓰고 말 게 아니기에 메인 시스템의 권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아래는 갑옷이 대부분 깨져 그 틈으로 검은 연기를 피처럼 흘리는 황천 기사단장을 내려다보는 사이,

차콱―!

얼음을 칼로 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를 노려보던 황천 기사단장의 몸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나뒹굴었다. 세로로 쪼개진 채로 말이다. 그래도 죽지 않았다.

“너를 쉽게 죽일 수는 없지. 그렇다고 후환이 될 너를 안일하게 다루지도 않을 거니까 괜한 희망을 품지 말고. 소피아.”

“네에~. 영주님의 소피아가 여기 있습니다~.”

장난스럽게 총총 걸어온 소피아는,

“생츄어리.”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의 성소를 구현했다. 황천 기사단장의 몸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성소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그 안에서 끝까지 괴로워하다가 소멸해라. 너와 네 기사단이 파괴한 차원의 거주민들이 느꼈을 고통의 천만 분의 일이라도 느끼면서.”

황천 기사단장에 대한 처우는 거기서 끝이다. 무려 바이올렛 랭크의 소피아다. 사제도 아니고 성녀 클래스의 소피아. 그녀가 직접 구현한 성지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뭔가를 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소피아가 장담했으니까.

“그러면 이제 남은 건 리치들인가?”

“네!”

“영주님.”

소피아가 대답하기 기다렸다는 듯이 [비공정] 안에서 메인 시스템을 돕던 [대마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수고했어.”

“리치를 저희가 직접 포획해도 될까요?”

“포획?”

“예. 리치를 죽이고, 라이프 베슬을 회수해 봉인해 소멸할 때까지 영혼을 괴롭히고 부리는 방식입니다. 마법사니까 사용할 곳은 무궁무진합니다.”

“위험도는?”

“혼자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말끝을 흐린 [대마도사] 뒤에 그와 같은 등급인 [대마도사] 여럿과 [마도사] 수십 명이 나타났다.

“이것들과 같이 하면 위험할 일이 없이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고 감히 확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뭐. 좋아. 시작해.”

“감사합니다! 은혜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은혜라고 할 것까지 있나? 오히려 구르는 건 너희고 그 과실은 내가 다 가져가는 건데?

“영주님. 제가 그랬잖아요. 쟤들은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요.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아요.”

…라고 신성력이 충만해서 도른자 1, 2위를 다투는 소피아가 말했습니다.

[대마도사]와 [마도사]가 합류하고 안전 구역 경계에서는 마력으로 구현된 기적이나 다름없는 화려한 마법이 땅과 하늘을 뒤덮었다.

“마법사의 전투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어머. 영주님도 참. 마법사야 말로 파괴마들이라고요. 터트리거나, 폭발하거나, 부수거나. 오히려 기사들이 깔끔하죠. 강기로 목만 싹뚝하잖아요?”

“싹뚝이라니.”

“왜요~? 목만 싹뚝 자르는 게 얼마나 깔끔한데요. 강기라서 피도 안 나요. 그냥 싹둑. 뎅겅? 끝!”

희고 깨끗한 피부에 서구적으로 아름답게 생긴 소피아는 외모만 본다면 인형처럼 생겼다. 그런 소피아가 손날로 목을 그으면서 댕강, 댕강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뭔가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것 같달까?

“그래. 알았으니까. 그 손 좀 가만히 둬.”

“네? 아! 헤헤.”

그날. 황천 기사단은 전멸하고 리치 군단의 리치 67마리의 영혼을 생포했다. 그리고 이후 [부속 영지]와 [대영지]의 전체적인 행정을 관리하는 AI [자비스]의 등장 계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 * *

휘하 언데드가 죽어나갈 때마다 리치 군주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랬던 리치 군주가 최고위 언데드이자, 인간으로 치면 네이비 랭크의 언데드 일곱이 소멸했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것은,

『차원 명 〈심연의 추방자〉, 행성 명 〈누더기〉, 개체 명 〈리치 군주〉 본인 맞습니까?』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보다 더 묵직한 기세를 풍기는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도 죽이고, 신들도 죽인다고 호언장담하던 리치 군주는 없다. 그저 겁에 질려 벌벌 떠는 병신이 한 마리 있을 뿐이지.

『대답을 하지 않은 관계로 자체적으로 조사하겠습니다.』

파칙―!

“크에에엑?!!!”

시린 순백의 뇌전이 리치 군주의 몸을 관통했다. 해골만 남은 머리끝부터 말끝까지. 그리고,

『확인 결과 리치 군주 본인과 일치합니다.』

『본인 확인 완료.』

『지금부터 신벌을 진행하겠습니다.』

쿠쿠쿠쿵―.

행성 누더기의 외형은 변화가 없다. 행성을 뒤덮은 보기 싫은 살점 조각 하나조차도 소멸하지 않은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상태임에도 어디선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신벌을 진행하는 차원 관장 시스템과 리치 군주에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초월 개체명 리치 군주의 격을 강탈해 격감(激減)시킵니다.』

바로 이런 결정 때문이다. 초월체, 초월자, 초인, 비슷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반신에 가까운 존재이며 권능을 다루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쌓아 올린 격(格)은 함부로 뺏거나 더할 수 없다. 차라리 소멸시키는 쪽이 오히려 더 쉽다.

조금 많이 간략하게 축약해서 예를 들면, 뇌만 적출해서 인간을 살려두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강탈 완료.』

“━━━━━━━━━━━━━━━━!!!!”

리치 군주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영혼이 강제로 뜯겨 나가는 것보다 더한 고통과 상실감을 동시에 선사하는 격의 강탈. 리치 군주처럼 자신의 재능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것을 빼앗아 격을 억지로 쌓아 올린 이들은 그 고통이 더욱 클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격을 쌓은 이들은 강탈당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쌓을 수 있다. 이미 한 번 가본 길이니, 더 수월하게 격을 쌓아 언젠가 다시 초월자가 될 거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리치 군주는?

데이몬이라는 차원 역사에도 보기 드물 정도로 재능 있는 언데드 덕분에 강제로 올라간 초월자의 경지가 강제로 사라졌다?

“흐아아아아아아아!!!”

리치 군주는 초월자라는 지고한 존재였던 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울었다. 해골에서 눈물에 나오지도 않을 게 뻔한데도 눈가를 훔치며 서럽게 우는 모습은 엄청…….

『추합니다.』

추했다. 그래.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강탈된 격은 온전히 회수해 피해를 당한 존재에게 공평하고, 공정하고, 불편부당하게 균등히 분배하여 피해보상에 쓰겠습니다.』

“아, 아, 안 돼!!”

하염없이 쳐울기만 하다가 시스템 메시지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처럼 버둥거렸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쿠쿠쿠쿵―!!!

오직 리치 군주 본인에게만 들리는 굉음과 함께 그의 격이 추락하여 영멸한다. 이제 초월자가 아니라, 고작해야 최고위 언데드와 비슷한 아니,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령술사가 되었다.

“…흐어.”

리치 군주가 정신줄을 완전히 놓으려는 찰나,

“군주시여.”

그가 두 번째로 제작한 언데이면서, 오네로라는 이름을 받은 어비스 나이트가 리치 군주‘였던 것’에게 달려왔다.

그 역시 다른 언데드보다 반수 위의 존재였기에 조금 전까지 자신의 군주 곁을 맴돌던 거대한 힘을 편린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의 편린만으로도 자신 같은 것은 곁에 다가갈수도 없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 섬뜩하고 거대한 기운이 사라지기 무섭게 그는 자신의 주인인 리치 군주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보았다.

“군…주님?”

어딘가 달라진 자신의 주군을.

‘이상…한데?’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오네로로서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간극. 자신의 주인이 자신보다 약해 보인다는 건 그의 언데드로서 삶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리치 군주가 오레로를 스켈레톤 나이트로 제작한 시기는 데이몬을 언데드 메이지에서 리치로 승급시킨 이후였고, 그때 리치 군주는 제법 힘을 주는 사령술사였으니까.

그 이후로 쭉 리치 군주와 오네로 사이에는 감히 메울 수 없는 격의 차이가 존재했었다.

그런데 지금.

“……?”

그 차이가 사라졌다. 아니, 오히려 역전된 것처럼 느껴졌다.

“주군?”

“시끄럽다아―!”

피시싯―.

평소라면 이 정도 분노에 주변이 초토화되었어야 할 텐데, 성냥불이 꺼지는 소리가 나면서 마기가 일어나다가 말았다.

그 허접스럽고 비루한 상황에 당황한 건 오네로보다 오히려 리치 군주 본인이었다.

“뭐, 뭐냐?! 네놈! 무슨 짓을 한 게야?!!”

“예?”

비록 리치 군주 정도는 아니더라도, 오네로 역시 당황한 상황에서 갑자기 자신을 타박하는 주인에게 오네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 혼란과 혼동 그리고 당황과 당혹이 뒤섞인 상황에서 오네로가 내릴 수 있는 최적의 결론은,

‘대저 이 인물은 누구란 말인가? 이 오네로의 주군이 맞긴하단 말인가?’

자신의 주인처럼 보이는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리치 군주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그의 상황은 설상가상(雪上加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휘하에서 가장 믿을만 하다고 생각하여 이름을 준 두 존재 중 하나에게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이 시작이라는 뜻이었다.

『카르마 포인트 시스템입니다.』

『차원 〈심연의 추방자〉를 다스리며, 고귀한 계약의 주체 중 하나인 리치 군주에게 묻습니다.』

『계약을 속행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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