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10화
당근
휴일을 방 안에서만 보내는 것도 한도가 있었다. 말하자면, 심심하다. 어딘가에 가도 되고,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상관없는 상황이라면 방 안에만 있더라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밖에 지낼 수 없게 된다면 이렇게까지 좁은 공간은 달리 없을 것이다.
나 혼자였다면 언제든 외출하면 된다. 성인이며, 평일은 매일같이 출근하고 있으니까. 물리적으로는 가능하다. 문제는 그녀다. 휴일에 나만이 외출하고 그녀를 집에 두고 갈 수는 없다. 그녀의 경우 자신의 의사로 집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몰아넣은 내가 놀기 위해 나가는 것은 도리가 아니겠지.
일단 외출할 수 있는 수순은 준비해 두었다. 점수표에 기재된 소정의 행동을 취하면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저번에 했던 펠라티오 한 번이라면 바깥에 나가 대강 놀 수 있을 만큼은 된다. 그것을 하지 않고, 또는 주저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겠지. 집에는 책이나 TV, 냉온방이 갖추어져 있다. 자극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쾌적하게 보낼 수 있다. 게다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 그녀에게 있어 휴일도 평일도 별반 차이는 없다. 혼자서 가만히 보내는 것은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외출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것이겠지.
문제는 나다.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는 윤리관과 놀러 나가고 싶다는 욕구가 대립하며 딜레마가 되어버렸다. 일 개월이나 지나면 참아도 참지 못하게 된다. 식도락이었던 양친의 자식으로서 가끔은 외식도 하고 싶다. 그녀를 데려왔을 때 생각만큼 금액이 들지 않았던 만큼을 포함해서 다소 사치를 부려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저금도 있다. 집에서 가만히 금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단순히 그녀를 데리고 나가도 상관없는 것일까. 이 부분도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견디기 힘들어지는 것을 기다리면 놀러 갈 수 있다고 느끼고 그녀는 점차 기력을 잃을 것이다. 앉아있는 것만으로 유원지에 가거나 외식을 할 수 있다면 가만히 있는 편이 이득이다. 그저 입을 벌린 채 먹이가 던져지는 것을 기다리면 된다.
갈등은 있었지만, 어느 땐가 결심을 하고는 그녀를 데려나가기로 했다. 단순히 견디기 힘들어졌다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쓸 수 있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방을 건넸을 때 사용했던 욕망이 느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사치를 모르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알려주어야 말로 다시 한번 맛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 균형을 무너트리면 된다. 맛있는 식사와 재미있는 체험을 들이대는 것으로 새로운 쾌감을 손에 넣고 싶어하게 되겠지.
저번과 다른 부분은 만전의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방은 열쇠를 건넨 단계에서 모든 것이 그녀의 것으로 기능했다. 내 시야에서 숨겨졌을 때 역할을 다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정을 비슷하게, 그녀의 생각대로 진행해 버린다면 그녀는 한 번에 충분히 만족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외출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게 될 것이고, 그러면 재미가 없다.
식사는 맛있지만 배부르지는 않다. 재미있지만 도중에 끝나버린다. 즐거웠지만 더, 조금만 더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해야 스스로 다음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의 무게로 타락해갈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나의 즐거움도 된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추측하며, 타이밍을 가늠하고, 눈치채지 못하게 저지한다. 게임인 것이다. 딱히 그녀를 슬프게 할 생각은 없고, 짜증 나게 만들 생각도 없다. 그녀가 바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평범하게 지내면 되는 것이다. 무언가 하고 싶다고 바라게 된다 해도 그 마음을 참고 억누르면 된다. 그게 싫다면, 점수표를 본다. 바라면 모든 것이 주어지니까, 어떤 의미로는 행복하겠지. 말의 눈앞에 당근이 매달린 것과 마찬가지지만, 달리기 싫다면 달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