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17화
슈퍼마켓
심야의 슈퍼는 그녀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일반적인 카트는 그녀의 손에 닿지 않으니 작은 아이용 카트를 사용해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나도 한 번 아이를 태우고 밀어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부탁해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유모차에 타기도 전에 시설에 맡겨져 사람이 미는 것에 타는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감격한 것일까, 신기해하면서도 안절부절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고 아이를 카트에 태우고 점내를 일주하는 남자란 기묘해 보이겠지. 그래도 문제가 생기지 않고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않으며 말을 걸지도 않는다. 그것이 도시에서 심야에 한산한 슈퍼의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난 상대에게 관심이 없고, 상대 또한, 내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관심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편리한 세상이다.
그녀가 카트를 가지고 있으니 내가 카트나 바구니를 들 필요는 없다. 재고가 없어질 것 같은 우유나 조와 피가 들어간 세트 등을 카트에 담아간다. 어릴 때부터 우유로 몸을 만들어왔기 때문인지 이 나이가 되어도 우유는 대량으로 마신다. 그녀도 비슷한 정도로 마시게 하고 있으니 하루 한 개 정도는 전부 마셔버린다. 먹을 것도 충분히 섭취하고 있으니 유전만 아니라면 그녀는 상당한 신장이 되겠지. 누나도 비슷하게 마셨지만, 가슴은 부풀지 않았다. 그쪽은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다.
아무거나 상관없이 물건을 넣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내가 넣은 물건을 꺼내고는 다시 한번 자신의 손으로 넣고 있다.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어디에 두는 것이 좋은가 하고 열심히 생각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세상에는 이런 귀여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 차라리 타인이니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귀엽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무언가 갖고 싶은 것은 없는지 물어보자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한다. 남자 혼자서 살아왔으니, 그녀가 온 이후에도 혼자서 쇼핑을 끝마치므로 식탁에 과일을 올리는 습관은 없었다. 생각도 못 했다. 청과물은 대체로 입구 쪽에 있으므로 카트를 유도하며 이동하자 대량의 과일이 늘어서 있었다.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겠지만, 의식해서 둘러보자 놀랄 정도의 종류와 양이었다.
사과에 딸기, 오레인지에 바나나 등 생각나는 과일은 모두 있었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과일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계절을 무시하고 팔리는 과일은 무엇이든 들여오는 것이겠지. 딸기 선반의 앞까지 간 그녀는 어떤 것을 살지 고민하고 있었다. 품종이나 가격도 몇 가지나 있어서 어떤 것을 사는 것이 좋을지 곤란했다고 한다. 나도 과일의 품종은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일로 점원을 부르는 것도 바보 같기 때문에 소개문에 쓰인 당도를 참고로 단맛이 강한 것을 카트에 넣었다. 그 옆에 연유도 놓여있었으므로 일단 함께 사두었다.
그녀가 계산대까지 카트를 가져가자 평소엔 입꼬리를 꿈쩍도 하지 않는 연배의 아르바이트가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기억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눈에 띄는 시간을 피할 생각이었다. 그런 노력도 별 의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종의 애정을 준 소녀가 내 물건을 물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역 앞에 있는 파출소에서 금방이라도 경찰이 달려오겠지.
나 자신은 괜찮은 외모를 하고 있고, 평범하게 생활하는 동안에는 미움을 살 일이 없는 청년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와도 평소엔 평범한 생활만을 보내고 있으니 의식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은 해도 다소는 긴장하고 만다. 아무런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어도 운전 중에 경찰차와 마주치면 몸이 얼어붙는 것과 비슷하다. 웃는 얼굴로 계산을 끝마치고 비닐봉지에 구매한 물건을 담아 가게로 나오고 나서야 겨우 한숨 돌린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곧바로 딸기를 집어 입에 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내 사정이라 미안하지만, 슈퍼에 나간 시간은 아홉 시 이후였다. 밤에 음식을 먹는 것은 별로 좋지 않고, 애초에 이런 시간에 아이가 일어나 있는 것도 문제다. 내일은 온종일 먹어도 좋으니 지금은 참도록 이야기했다. 꽤 싫은 눈치였지만 이런 일로 타협할 생각은 일절 없다.
그녀가 방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든 것을 확인하고 맥주를 한 캔만 열었다. 타인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자신의 건강은 소홀히 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그래도 그녀를 위한 일이기는 하다.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