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27화
란도셀
백화점을 더 둘러보던 도중 갑작스레 그녀에게 팔을 이끌렸다. 맞잡은 손을 당기며 여기로 가고 싶다는 듯 나선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란도셀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확실히, 초등학생에게는 란도셀을 사줘야만 한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사회에 나가면 사회인 말고는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생활하는 시간도 장소도 전혀 다르기 때문에 마주칠 일이 없는 것이다.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니, 있다면 있겠지. 아마도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보호자로서 란도셀같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은 반성해야만 하겠지. 이 상태라면 그밖에 또 무엇을 잊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도 된다고 말하자 빨간 란도셀을 하나 가져왔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가장 평범한 타입이다. 이곳에는 검정이나 빨강뿐만이 아니라 물색이나 분홍색 등 여러 가지 란도셀이 줄 서 있다. 그중에는 사각진 평범한 모양이 아닌 가로가 길고 세련되어 보이는 가방도 있다. 별로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지만,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절실하게 실감했다.
다른 것을 고르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자존심이 세고 겉모습을 신경 쓰는 그녀이니 더 좋은 물건을 가지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완고하게 이게 좋다고 주장했다. 듣자 하니, 시설에서 돌려쓰던 란도셀이 흔히 보는 검정과 빨강이었다고 한다. 새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다는 생각이겠지. 예스러운 생김새니까 고풍스러운 빨간색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계산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걸로 소원 하나, 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자 수족관에서 약속한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했었던 것도 같다. 그녀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기에 잊고 있었다. 연달아서 잊어버린 것들을 떠올리게 되자 어쩐지 서글퍼진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역시, 이제 젊지는 않은 것이겠지.
란도셀 코너에는 젊은 부부 같은 남녀와 아이 외에 노인이 수 명 있었다. 손자에게 사주는 것일까. 양친이 사는 쪽이 드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자가정, 부자가정에게는 괴로운 환경이 아닐까. 딱히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동경하고는 한다. 저런 따뜻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노라면 공연히 서글퍼진다. 그녀와의 생활은 충만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밖에 필요한 것은 없냐고 그녀에게 물어본다. 필통이나 필기 용구, 급식 주머니 같은 것을 사고 싶다고 한다. 잘 알고 있구나 싶었지만, 검진을 했을 때 프린트를 받았던 기억은 있다. 그녀는 읽을 수 없을 테니 내가 읽어주었겠지. 당사자라는 생각이 없는 난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그런 날 보고 있던 그녀는 오히려 위기감을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란도셀은 필요한 것이므로 그녀가 권리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줄 생각이기는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니 부탁을 해야만 사주는 것이라고 이해한 것일까. 오해이기는 했지만 이제 와서 풀기도 어려운 오해이기는 하다. 최소한 옵션으로 몇 가지를 더 사주자고 생각했다. 필요한 물건은 대강 주변에 갖추어져 있었다. 필요한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덤으로 사게 하자는 상술이겠지. 상업주의에 난색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편리성 또한, 높아져 가기 때문에 고마운 일이었다.
습자 세트나 그림 도구, 붓과 물통 등 필요한 물건은 얼마든지 있었다. 가만히 걷기만 해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꽤 많은 양의 짐이 생겼다. 대강 정리한 다음 계산대에서 배송을 신청했다. 직접 옮기면 돈은 들지 않지만 이런 곳에서 돈을 아껴도 별로 의미가 없다. 파자마는 오늘 당장 사용하므로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쥐를 물고 있는 고양이를 닮았다.
타이 요리를 내는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일식, 양식, 중식은 일단 먹어본 적이 있는 것 같지만 동남아시아는 처음이라고 한다. 시면서 달고 맵다. 겉모습이 빨간 반면에 단맛이 나자 허를 찔렸는지 재밌다는 듯 떠들고 있었다. 코리앤더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릇의 구석으로 옮기고 있다. 아까우니 내 그릇으로 옮기라고 하자 집요하게 골라내서는 넘기고 있었다. 어지간히 냄새가 싫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