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0화
결별
보기에 따라서는 부부로도 보인다고 생각한다. 난 결혼하지 않았고 누나는 아이를 만들지 않았다. 입학식에는 연이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사회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옆에서 봐서 알 수 있는 것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다.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은 것만으로 올바른 인간이라고 생각해준다. 누나는 어찌 됐든, 난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데도.
그녀는 올곧게 앞만을 바라보고 교사의 긴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학교란 그런 것으로 배웠기 때문일까.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의 어른들도 졸거나 떠드는 사람이 많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것은 그녀뿐일지도 모른다. 새삼 들어보자 교장이 말하는 일은 올바르다. 실로 올바르다. 교육이란 인생을 결정하는 한 수이며 학교란 교양과 함께 사회생활을 배우는 장소이며 긴 시간에 걸쳐 사람이 사람답게 되어간다. 함축이 있는 말이다. 올바른 말은 누가 사용해도 올바르다. 그 자신은 믿지 않으며 듣는 사람의 대부분이 무관심하더라도 더욱 올바르다.
유도나 공수도를 사용하면 맨손으로도 간단하게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다. 무도란 몸을 단련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마음을 단련한다고 한다. 위선이다. 폭력배 중에는 무도를 배우는 자도 많고 복서는 간단히 변한다. 그러면 좋겠다는 것일 뿐이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 주위를 속이거나 차액을 챙기는 것도 간단하다. 교육으로서 도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무너진다는 얘기일 뿐이다. 그렇지만 더욱 그의 이야기가 마음에 스며든다.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녀는 그것을 올바르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올바름이란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편이 좋은 것이다.
교실에서 자기소개가 끝나자 곧장 그녀가 나왔다. 나와 누나와 그녀 셋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마도 눈치채고 있겠지만 누나는 그것에 접하지 않았다. 애초에 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대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어른과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맞물리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와 그녀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에도 의심을 가진 모양이다. 그녀도 교양이 늘어서 이래 봬도 다소 대화를 나누기는 한다. 그래도 누나가 보기에는 적다고 느껴진 듯했다.
그녀는 어떤가 말하자면 누나에게 나름대로 호의를 가진 것 같았다. 동경이라고 할까. 누나의 얼굴을 봤을 때 감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원래 그런 성질이었는지, 여성은 다들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와의 생활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름다운가 추한가에 따라 평가를 바꾸고 있는 것 같다. TV나 잡지를 보는 반응에서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만큼 동경하고 반감 또한, 안는 모양이다.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다. 무시하거나 적의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날 대하는 것 이상으로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 그런 솔직함이나 모범적인 대답이 서로 간에 차이가 있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손에 닿지 않는 천상의 존재가 아닌 언젠가는 닿을 것에 대한 경멸이 아닐까.
누나는 그녀와 쇼핑을 하러 가고 나만이 먼저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어떤 대화를 나눌지 신경 쓰이기는 했다. 단지, 그녀도 앞으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말해도 되는지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나만이 아니라 내일 당장이라도 치명적인 문제가 일어나겠지. 내 가족은 누나밖에 없기 때문에 사이가 깊어져서 나쁠 일은 없다.
저녁이 되기 전에 둘이 함께 돌아왔다. 짐이 들어간 봉투를 들고 그녀는 방으로 돌아갔다. 둘만 남게 되자 누나가 말을 꺼냈다. 같이 간 사이에 자신과 같이 살지 않겠느냐고 그녀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그 말은 내겐 의외였다. 신고하지 않고 원만하게 지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누나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스스로 정했었다. 자기 아이조차 만들 생각이 없는데 완전한 타인을 기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누나가 그것을 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희생해서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이 아닐 뿐이지.
그녀는 그런 제안을 거절했다. 정신적으로 매우 몰려있으면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 몇 시간 동안 계속 상냥하게 접했다고 한다. 그래도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는 자신에게도 내게도 다가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아이를 지키는 어미 고양이와 같은 표정을 보고는 설득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녀가 누나를 따라가지 않은 것도 다소 의외였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나도 누나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타인이다. 그래도 익숙해진 편이 좋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보다는 다가오지 말라는 말 쪽이 더욱 놀라웠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반론은 없었다. 누나가 나설 때는 내게 치명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뿐이지만, 그렇게 되어도 곤란한 것은 그녀다. 본인이 좋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누나는 가만히 내가 말하기를 기다렸지만, 알았다고만 대답하자 그대로 집을 떠났다. 예전에는 거실에 네 명이 앉아있었다. 부모는 없어졌고, 이제 누나가 오는 일 또한, 없어졌다. 아무도 없는 방이 꽤 넓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