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7화
미이라
그녀가 걸치고 있는 스웨터나 머플러는 누나가 어렸을 때 입었던 것들이다. 어머니는 뜨개질을 좋아해서 어디에 가건 뜨개질 도구를 지니고 있었다. 내가 한가할 때 책을 읽는 것처럼 어머니는 뜨개질을 했다. 취미라고 한다면 취미지만, 나도 활자를 읽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 손이 비어있는 것이 불안해진다.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그것도 일종의 중독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와 누나는 어머니가 만든 대량의 털실에 둘러싸여 자랐다. 어머니가 없어진 이후에도 그녀는 우리 집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감개 깊은 일이다.
불안정한 날씨가 이어져서 더워지기도, 추워지기도 했다. 삼한사온이란 말을 체현하는 듯한 날씨였다. 적자색의 스웨터를 입은 그녀가 내 손을 당기며 역으로 향하고 있다. 마치 팔려가는 소라도 이끄는 것처럼 손발에 힘을 쓰고 있다. 내가 제안한 것이기도 하고, 가기 싫은 것은 아니다. 걷고 있다. 그래도 느리다고 느끼는 것이겠지. 보폭의 차이가 있음에도 앞장서고 있으니 얼마나 기운이 넘치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서둘러도 미이라가 도망치지는 않는다. 이미 죽어있으니까. 혼잡함도 별로 차이가 없지 않을까. 역까지 향하는 단 몇분 동안에 결정적인 일이 일어날 정도라면 지금 서둘러도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도 있었고, 원하는 대로 걷는 속도를 바꾸는 것은 개를 산책시킬 때 해서는 안 된다고 들었다. 그녀는 개가 아니지만, 교육이기는 하다. 게다가 잡아당길수록 더 서두르기 싫어진다. 그저 삐딱한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애가 타기 시작했는지 이내 시선이 앞과 나를 오가기 시작했다. 손을 잇고 있으니까 알 수 있을 것임에도 아직 안 오나, 아직 안 가나 싶은가보다. 마치 개처럼 내 옆에 줄을 서고는 앞으로 달려가기를 반복한다. 나와 그녀의 팔 길이 정도밖에 움직이지 못하니까 그만큼씩 이동하고 있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전철을 타고 나서도 좀처럼 침착하지 못했다. 이전에는 어른스럽게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계속 둘러보고 있다. 표정만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어서 묘하게 웃겨 보였다. 손잡이가 닿지 않기 때문에 한 손을 맞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내 허벅지 주변을 붙잡고 서 있다. 흔들릴 때마다 꼭 힘을 주는 것이 잘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꽤 거리가 가까워졌다. 매일 입술을 맞추고 있으면 저항도 희미해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반년 정도 만에 조금도 긴장하지 않으면서 손을 잡고 몸을 기대듯 접해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애인이나 아내가 생겨도 이 정도로 무방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있었던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어머니나 누나는 남편에게 무방비하게 기대는 일이 없었다. 작은 여자아이에게 기대지고 있으니 나쁜 기분은 아니지만.
수족관에 갔을 때도 감동했지만 그녀는 어린이 요금으로 입관할 수 있다. 오랫동안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감동했다. 전철에 탈 때도 어린이 요금이었지만 교통카드로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갑에서 현금을 내기 때문에 이런 은혜를 맛볼 수 있다.
이집트전은 어른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많은 어린이가 줄을 서 있었다. 아직 여름도 오지 않았으니 숙제도 아닐 텐데 메모용지에 무언가 적어넣고 있다. 퀴즈 형식의 전시도 많기 때문에 아이들도 즐길 수 있다. 오히려, 전시 비율을 생각하면 어른보다 어린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책으로 어느 정도 지식은 가지고 있겠지만 대부분 미지의 것들이다.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있다. 부장품 옆에 설명이 함께 쓰여있으니 스스로 읽으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읽으려고는 한 모양이지만 금방 다시 물어보기 시작했다. 읽는 것 자체는 익숙하겠지만 한자도 많고 적혀있는 것만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겠지.
애초에, 이집트인은 죽은 다음에도 되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서 내장같은 썩는 부위를 제거했고, 시신 곁에는 먹을 것이나 의복같은 것을 놓아두었다. 그것이 미이라이며, 부장품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신기한 표정으로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받았다. 여섯 살 아이는 이런 것일까. 아니면 생활 탓에 정서가 없는 것일까.
새삼 설명하려고 해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잘난 듯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난 죽음에 대해 자세하지 않다. 부모가 죽은 지금조차도 난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금방 다른 의문으로 옮겨갔다. 그녀에게는 죽음도 여러 의문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녀가 어리다고 생각한 일은 몇 번이고 있었지만 젊다고 느낀 것은 그게 처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