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10화
선술집
저녁은 개인실이 있는 선술집에서 먹기로 했다. 아이를 데리고 술을 마셔서는 안 될지도 모르지만 나도 어렸을 때는 자주 이끌려가고는 했다. 부모가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선술집은 아이에게 괜찮은 장소다. 한 품목의 양이 적어 여러 가지를 주문할 수 있다. 다소 맵고 짠 맛은 술안주용이지만 아이들도 좋아한다. 내 양친은 우리를 데리고 술을 마시지는 않았었지만, 나는 마신다.
개인실로 한 것은 무심코 말실수를 하더라도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인 그녀는 물론이고 술이 들어가면 나도 위험하다. 긴장이 풀리지 않는 인간은 없다. 직장에서 회식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처음부터 일본주를 주문하기로 했다. 메뉴판을 건네자 진기한 것을 보듯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고 있다. 하얀 파 샐러드와 달걀말이, 멸치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우선 주문해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선술집은 식사의 유원지다. 이탈리아 요리나 중화요리, 카레 같은 가게와는 달리 본 적도 없는 요리의 이름이 줄 서 있다. 그녀가 눈을 떼지 못 하는 것도 당연하다. 나도 잘 모르는 가게에 갈 때는 지금도 메뉴를 보면서 망연해지고 만다. 식도락의 본성이겠지. 그런 의미로는 이런 부분에서도 그녀는 나의, 나아가서는 우리 집안의 성질을 이어받은 것이 된다. 매일 요리를 시키고 맛있는 것을 먹게 한 결과가 아닐까.
일본주와 오렌지 주스가 나왔다. 잔에 따르면서 사람에게 따라주는 것이 매너라고 알려준다. 당분간 그녀가 마실 일은 없고, 마시러 나갈 일도 없겠지. 하지만 격식이 필요한 장소에 나갈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연배인 분들은 유난히 술 따르는 것을 기뻐하니 잘 배운 아이라고 생각해줄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내게 술을 따르려고 한다. 남 일이었다면 솔직하게 기뻐하면서 받으라고 하겠지만, 난 누가 따라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일이 누가 따라주기를 기다리면서 마시면 취기가 깨고 만다. 조금 전에 그렇게 말해놓고 거절할 수는 없었지만, 나에겐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두었다.
잠시 기다리자 샐러드나 달걀말이 그리고 그녀가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개인실이라고는 해도 완전히 구분된 것이 아니지만 나름 눈길을 막아주기는 한다. 반합쯤 마셔서 배짱이 생긴 것도 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의 저녁 분을 아직 받지 못했다, 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외출했을 때 말을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겠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이해했다. 주변을 둘러보고는 주변에 우리 말고는 앉아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테이블 너머로 얼굴을 가까이하려 한다. 하지만 대량의 요리를 앞에 두고서는 거리가 조금 부족했다. 그래서 소파 옆을 팡팡 두드렸다. 이쪽으로 오라는 의사표시다.
자리를 옮기기 위해서는 일단 개인실의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게 조금 이상했는지 귀찮았는지. 그녀는 테이블 아래로 고개를 집어넣고는 이쪽에서 얼굴을 꺼냈다. 젓가락을 든 채로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 내 양쪽 뺨을 꾹 붙잡고는 그녀 쪽으로 향하게 했다. 바깥이라 마음이 급한 탓인지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상기되어있다. 타액으로 젖은 입술이 겹쳐지자 파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때 문득 낮의 일을 생각해냈다. 마가 끼었다고 할 수 있다. 입으로 음식을 주고받으면 재미있을까. 주변에서 잘 보이지 않고, 손님도 없다. 주문만 하지 않는다면 점원이 오지도 않는다. 다양한 요리가 늘어서 있어 맛을 바꾸며 즐길 수도 있다. 한마디로 딱 좋은 시츄에이션이다.
다시 잠수하려는 그녀를 붙잡고 간청하듯 부탁해본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듯했지만 알아들은 다음에도 이해는 하지 못한 모양이다. 알았건 몰랐건 간에 하는 일은 변하지 않는다. 입에 음식을 넣고 그대로 옮겨주면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이유식이 없었을 때는 부모가 아기에게 이런 방식으로 음식을 주기도 했다고 말하자, 자기는 아기가 아니라고 화를 내고 말았다. 이 경우에는 반대로 내가 아기의 입장이 되는 것이지만.
취해서인지 갑자기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그럼 됐다, 하고 내치듯 말해보았다. 그러자 당황한 것처럼 곧장 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요스러운 것에는 반발하지만 붙잡은 것이 떠나는 것은 견디기 어렵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취한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교섭은 이 정도가 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