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15화
미래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이야기에 남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서는 언급되지만,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없다. 일 학년이기는 해도 소녀는 소녀. 여자아이들끼리 그룹이라도 만든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급식이나 청소는 남녀가 함께할 것이고 책상을 나란히 붙이고 있으니 이야기가 한 두 가지는 있을 법도 하다.
거기에 무언가 의도를 느끼는 것은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나와 그녀는 보호자와 아이의 관계이지만, 남녀 관계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을 의식시킬 정도로는 접해왔다. 애인은 아니더라도 관계를 가진 남자 앞에서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이라고 해도 내게서 반감을 사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솔직히 말해서 기쁘기는 하다. 그녀의 입에서 반 친구라고는 해도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칭찬하건 욕을 하건 복잡한 기분이 든다. 지금은 상관없지만,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된다면 내게 질투를 하지 않을 정도의 도량은 남아 있지 않겠지.
하지만 동시에 불안스럽기도 했다. 그녀의 학교생활의 일부가 완전히 빠져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집착이 강한 편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모든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가 적은가의 차이일 뿐. 하지만, 이성의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 것에 아무래도 불안을 느끼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내 쪽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이상하겠지. 교류가 없거나 관심이 없어서 말하지 않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굳이 관심을 두게 할 필요가 없다. 배려하고 있다면 오히려 호의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어쩌면 그녀는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특수한 행위는 하고 있지만, 그것 또한 가족 간의 커뮤니케이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좋아하는 남성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지 않도록 내게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럴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 장래에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다.
막 데려왔을 무렵엔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좀 더 선을 긋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녀에게 애정을 안고 말았기 때문이겠지. 그것도 아버지나 가족이 아닌, 한 명의 여자로서 그녀를 원하고 있다. 선을 그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렇게 행동한다고 무언가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말이란 얄팍한 것이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이해를 받을 수 없다. 여섯 살의 아이에게 남녀의 애정 같은 감정은 없겠지. 성장하더라도 스무 살이나 떨어진 남자를 선택할 리가 없다. 멋대로 가지고 놀아지고 있으니 증오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나란히 요리를 하고, 식사하고, 가끔 함께 욕실에 들어간다. 그런 지금 이 순간이 이상한 것이고, 기적이다. 지금이 충분히 즐거웠고,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오 년 후, 십 년 후에 이 이상의 일을 기대해도 어쩔 수 없다. 허무해질 뿐이다. 난 점점 나이를 먹어 언덕을 내려간다. 그녀는 성장하여 인생의 정상을 바라보며 올라간다.
수렁에 빠질 정도라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은 할 수 있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교인의 대부분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수행이라도 하지 않으면 인간은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뜻이다. 눈을 감아버리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될 수는 없을까.
내가 그녀에게 가르친 모든 것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것이 된다. 국어나 산수와 같은 학문에 따라 진학을 하고, 취직을 해서 누군가와 가정을 쌓아 올리기 위한 양식이 된다. 조림이나 튀김을 요리하는 법을 배운 그녀는 미래의 연인에게 손요리를 만들어주겠지. 그리고, 내게 해주고 있는 봉사의 모든 것을 아직은 본 적 없는 남자에게 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아버지도 모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경우는 혈연조차 없고, 성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정을 버릴 수가 없다. 포기할 수가 없다. 아니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어쩔 수 없는 현실이 괴롭게 느껴지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