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23화
스튜
어느 날, 집에 돌아오자 현관 주변에 화분이 놓여있었다. 산 기억이 없었으니 그녀가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고개를 갸웃하며 거실로 들어가자 부엌에서 혼자 요리를 하는 그녀를 발견했다. 과자를 만드는 모습은 자주 보았지만, 요리는 처음이다.
다녀왔다, 하고 말을 걸어보자 그녀가 식칼을 든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얼른 다가가서 식칼을 뺏는다. 식칼은 아이용이고, 요리도 익숙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발판 없이는 손이 닿지도 않는다. 실수로 발이 미끄러지기만 해도 쉽게 손발이 다친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걱정이 심하다고는 생각한다. 어머니 쪽의 피겠지. 살아있는 쪽이 이상한 것이라고 인간은 외줄 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한 걸음 길을 잘못 들거나 베란다에서 몸을 나서는 것만으로 간단히 죽고 만다. 조심하도록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잊기 쉬운 모양이다.
바구니 안에는 양배추나 오이, 수채가 들어있다. 그것만으로도 육, 칠 인분 정도는 된다. 도마 위에 토마토와 파프리카도 있었으니 매일 먹는다고 해도 며칠 분은 된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냄비가 올려져 있어 열어보자 화이트 스튜가 들어있었다.
좋든 나쁘든 정평인 메뉴이지만 그녀가 혼자 만든 것 치고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누군가가 준비해준 저녁을 먹는 것은 몇 년만인가. 기쁘지 않을리가 없다. 그녀가 날 올려다보는 눈빛에도 자랑스러움이 담겨있다. 칭찬해달라는 것이겠지.
그런 홈 드라마 같은 따스함 이상으로, 무거운 감정이 들었다. 여섯 살 아이가 혼자서 식칼을 잡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혼자서 만드는 것이 처음이라는 점도 있어 긴장했겠지. 평소보다도 신경을 쓰며 신중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은 어떤가.
두 번, 세 번 만들다 보면 기분이 느슨해진다. 약간의 실수가 대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집이 불타는 정도라면 아직 괜찮지만, 손목이라도 그어버린다면 눈치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고요하게 홀로 누운 채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웃지 못할 농담이다.
왜 이런 일을 했는가, 하고 물어본다. 가능한 한 평온하게 말할 생각이었지만 내심이 전해진 모양이다. 표정의 변화는 적었지만, 그녀의 미소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 느껴졌다. 혼을 낼 생각은 없었지만 즐거운 식탁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물어보자 그녀의 담임이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담임은 그녀가 부자가정이고 요리를 배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종업식이라 상당히 일찍 끝나므로 시간이 남는다. 그렇다면 오늘은 요리를 만들어 퇴근하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면 어떤가. 그런 생각인듯하다.
선의였다고는 생각한다. 담임에게서 학기 초부터 가정방문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두세 번 정도 받았다. 지금도 매달 한 번은 시간이 있는지 전화가 걸려온다. 무슨 일이든 열심이라 밝은 곳만을 걸어온 것 같은, 나와는 정반대인 인간이다.
그런 사람에게 나와 그녀를 보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평일 낮에 시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덟 시까지는 맞출 수 있다고는 하지만, 퇴근이 아홉 시라면 맞출 수 있을 리가 없다. 유급까지 써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없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가. 아무리 열심이더라도 그녀에게 쓸데없는 말을 불어넣는다면 웃을 수 없다. 오늘 하루만으로도 찬장의 냄비를 꺼내고, 식칼을 사용하고, 불을 사용했다. 더 무언가를 불어넣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유급을 써서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나쁜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순수하게 기뻤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맙다고 머리를 쓰다듬어도 한 번 실망한 기분은 금방 돌아오지 않는다. 스튜를 먹어보자 조금 쓴 맛이 남았다. 흔한 실수지만 젓는 것을 잊은 탓에 바닥이 타버린 것이겠지. 그녀도 그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울 것 같은 얼굴에서 코까지 훌쩍거리기 시작해 다 먹는데 평소의 두 배는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