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23화
약속
웃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당일 그녀는 무척이나 신경을 쓴 것처럼 보였다. 비교적 짧은 스커트와 타이츠를 입고, 소매가 짧은 셔츠에 자켓을 걸치고 있다. 어울리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발돋움을 하는 느낌이 든다. OL이었다면 어울렸겠지만, 아이인 그녀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참견할 이유도 없고, 그녀에게 옷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포기하고 있다. 한 겨울에 반소매를 입은 것도 아니었으니 남자인 내게는 전문외다.
그런 복장을 하고 있으면서 밖에서는 내 손을 잡는다. 어른스러운 여성을 의식한다면 보호자의 손을 떨쳐내는 정도가 좋지 않을까. 물론 실제로 그런다면 곤란하지만. 혼자서 뛰쳐나가거나 하지 않는 아이니까,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철에 타고 나서도 창문 밖을 엿보면서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다. 그녀만큼 프라이드가 높으면 낯선 어른을 만나는 것도 긴장이 될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귀엽다거나 미인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 같으니, 최대한의 노력인 것일까.
결국 아이는 아이다운 것이 가장 귀엽다. 아이가 어른 위에 오를 수는 없다. 아이다운 귀여움이라면 꾸미는 것보다는 솔직한 편이 바람직스럽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녀는 아이다운 흉내를 내기보다 발돋움을 선택했기에, 그런 별다른 귀여움은 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온 탓에 삼십 분은 이르게 도착하고 말았다. 내게는 평소의 일이었지만, 그녀를 데리고 서점에서 시간을 죽이기로 했다. 우리집의 룰 같은 것이지만, 오직 책에 관해서는 나름 자유롭게 사주고 있다.
그녀가 두꺼운 아동문학 코너로 걸어가서, 손을 잡고 있는 나도 끌려가게 되었다. 그녀는 <엘마>같은 온화한 이야기 보다는 <드래곤 길들이기>같은 활극을 즐긴다. 난 옆에서 그림책을 손에 들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녀에게는 그림책을 즐기는 어린 시절이 없다. 그녀의 방에는 나와 누나가 어렸을 때 읽은 그림책이 있을테지만, 읽기는 할까. 아이같은 것을 싫어하지만, 아이로 있을 수 있는 것은 지금 뿐이다.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부터 술자리에 가게 되지만, 사 센치나 되는 두께의 책을 사게 되었다. 드는 것은 나였으니, 아무 생각도 없겠지만.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반 정도 밖에 모이지 않았다. 주말이라고는 해도 평일이었으니 시간 대로 올 수 있는 편이 적다.
예상은 했지만, 그녀는 화제를 몰고 있었다. 역앞에 몇 명이나 모여서 원조교제다 성범죄다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곤란하게도, 그런 말이 전혀 틀리지는 않았다. 당황해서 부정하는 편이 더 수상해 보일 테니 가만히 있을 수밖에는 없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괴로웠다.
선술집까지 가는 길에서도, 남자들은 날 둘러싸고 그녀는 자연스레 여자들이 데려갔다. 그녀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귀를 기울인다고 들리지는 않는다. 말이 맞지 않더라도 술자리라면 얼버무릴 수 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척 신경 쓰였다. 나를 어떻게 이야기할까.
난 양친을 모두 잃었지만 숙부나 숙모는 건재하다. 교류는 거의 없어도 변명 정도로는 사용할 수 있다. 그럴듯한 말을 적당히 늘어놓고 결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했다. 귀여운 여자아이와 함께 사는 건 좋기는 하다. 가끔 욕실에서 나온 모습을 보면 기쁘다고 말해보았다.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이상하다.
그런 식으로, 여자아이가 있는 탓에 혼자 할 타이밍이 없다거나, 여자 친구나 아내를 만들 수가 없다고도 말한다. 집 밖이라면 괜찮을테니, 풍속점이라도. 평범한 남자가 말할 법한 이야기들이다. 수상하게 생각하기는 하겠지. 푸념을 늘어놓으면 반응해줄 뿐, 상세한 부분까지는 발을 들이지 않는다. 만약 나였다고 해도 그렇게 하겠지. 좋게 말하자면 그것이 남자의 우정이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