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111화 (111/450)

4년 21화

그린 스쿨

요 며칠 그녀가 없다. 정나미가 떨어져서 집을 나간 것, 은 아니다. 나가서 갈 곳도 없고. 그린 스쿨이라는 학교 행사다. 수학여행이란 쿄토나 토쿄까지 나가서 그 도시의 명물을 관광하는 행사고, 그린 스쿨은 수학여행의 준비 같은 것으로, 집단생활과 나고 지낸 집을 벗어나서 며칠 동안 머무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한 이벤트다.

단 며칠 만에 무언가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훈련이란 반복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처음은 싫은 일도 아픈 기억도 생길 것이다. 밤에 화장실을 혼자 가지 못하거나 욕실에서 잘 씻지 못하는 등, 삼 학년이라면 있을 법하기에 수학여행을 염두에 두고 실패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뿐만 아니라 교사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길만한 학생을 미리 조사할 수 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

어제는 오랜만에 깜깜한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아무리 귀가가 늦어도 일어나서 기다려주었다. 대체로 아홉 시정도면 돌아오지만, 늦어지면 열한 시가 넘을 때도 있다. 볶음밥이나 그라탱 같은 냉동식품을 사두었으니 먹고 먼저 자도 좋다고는 말해두었다. 그런데도 항상 일어나서 기다려주니까 고마운 일이다.

내 부모는 맞벌이였고, 누나는 집에 잘 붙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혼자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이 돌아오기를 가만히 기다리고는 했다. 열쇠를 열지 않고 문을 연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난 마중을 받는 쪽이 되어있었다.

자유라고 한다면 자유다. 어쩐지 귀찮았으므로, 슈퍼에서 안주를 사서 맥주를 몇 캔이나 늘어놓았다. 닭꼬치에 닭 간, 닭고기 완자를 사고 닭튀김까지 붙인다. 구색 정도로 양파 마리네이드를 사서 야채를 먹은 느낌도 맛본다. 특히 이렇다 할 기억은 없는데도 시간만이 지나간다. 시계를 보자 자정이 넘어서, 남아있는 것은 나른함 뿐이다.

이제 와서 그녀는 뭘 하고 있을까, 하고 이불 속에서 떠올렸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자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다른 아이보다 늦게 잔다고는 해도 새벽 두 시까지 깨어있지는 않으리라. 어떤 얼굴로 자고 있을지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

자고 일어나니 익숙한 거실이 넓어 보였다. 촐랑촐랑 돌아다니는 생물이 없어서 그렇겠지. 세면소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항상 요리하는 곳에서 얼굴을 씻는다. 타올을 서로 뺏거나 전기난로를 점령당하는 일도 없다.

나답지 않게 감성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장으로 갈아입고 일찍 집을 나왔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햄 돈까쓰와 달걀 샌드위치에 야채 주스를 사 간다.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동안은 사 먹어도 괜찮겠지. 보람이 없으니까. 자신을 위해서만 요리를 하는 것도 바보 같은 느낌이 든다. 그녀가 없는 동안은 계속 그래왔으나.

점심은 오랜만에 후배를 권해서 라면 가게를 향했다. 덜어 먹기 위한 작은 그릇이나 숟가락이 자꾸만 눈에 띈다. 맥주가 나온 탓인지 후배는 평소보다 입이 가벼웠고, 처음으로 듣는 사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누구누구가 풋살을 하고 있고, 누구누구가 미팅을 했다고 한다. 술 약속은 모두 거절해왔으니 일 이외의 이야기는 더욱 접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애인과 동거하고 있는 모양이다. 소문이라기보다는 공연의 사실처럼 되어있었다. 그것도 당연한가. 양친이 돌아가셨던 시기는 매일 밖에서 마시고 다녔다. 집에 있어도 별수 없고, 제지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녀가 온 이후로는 밤중에 나다닐 수도 없는데다 요즘은 도시락까지 가져오게 되었다. 과연 결혼할 때는 상사를 부를 테니 애인이 생겼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여자친구 분 친구 좀 소개해주세요, 하고 농담처럼 말해온다. 반쯤 진심이겠지. 나도 그렇지만, 한번 사회에 나오면 이성과 알고 지낼 기회는 거의 없다. 선배의 소개든 뭐든 만날 수 있다면 만나고 싶겠지. 아쉽게도 그녀의 친구는 초등학생밖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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