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117화 (117/450)

4년 27화

두 사람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난 누나에게 숨기려고 한 적은 없었다. 눈치채지 않기를, 하고 기대는 했지만, 동생이 낯선 여자아이를 데려와서 같이 살기 시작하면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 심지어 놀러 왔는데 두 번 다시 오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의심보다는 확신을 가지리라.

다 들었다, 라는 건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애초에 나도 내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녀도 자신이 무엇인지 애매하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 딸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다. 당연히 장난감이나 노예 또한 아니다.

자세히 물으면 물을수록 불리할 테고, 지금의 머리로 세세한 일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누나 쪽에서 물어봐 준다면 무엇이든 대답하겠으나, 이야기를 이어갈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내 반응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자꾸만 생각이 헛돌고 있다. 아무튼 졸리니까 어쩔 수 없다.

밥공기를 비우자 만복감과 동시에 구역질이 덮쳐온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편의점 도시락을 먹은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혈당치가 급격하게 오른 탓일까. 싱크대로 걸어가서 칫솔을 손에 든다. 깔끔한 성격이라 적어도 이는 닦고 이불에 들어가고 싶다. 욕실은 일어나서 해도 되니까.

위가 자꾸만 뒤집어지는 느낌을 참으며 이를 닦자, 누나가 기분이 나빠 보이는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들으라고 하고 싶은 건가. 기분은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 두 시간도 못 잤으니 머리가 돌아갈 리 없다. 곤란하니까 자리를 피한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위기라는 건 언제나 계속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일일이 상대할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을 것이고, 대답하겠다. 그러니까 지금은 자게 해줘, 라고 말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더러운 속옷을 입은 채로 이불에 들어가는 것이 싫어서, 팬티만은 갈아입었다. 누우려고 하자 힘이 빠져서 무릎이 바닥에 부딪힌다. 아프다고 느낄 틈도 없이 머릿속에 안개가 낀다.

눈을 뜨자, 주변이 묘하게 밝다. 엎드린 상태로 일어나지도 못한 채 수십 분 정도 잠에 취해 있었더니, 어떻게든 머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불을 끈 기억이 없다. 켜놓고 끄는 사람이 없으니 방이 어두울 리가 없다. 심장이 자꾸만 고동치고, 손발이 어렴풋이 저리다.

드물게 밤을 새면 내 나이가 실감이 된다.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은 밤을 새도 조금 자기만 하면 다음 날은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금은 선잠을 자도, 이불에 쓰러져도 며칠은 피곤함이 남아버린다. 어른이 되었다는 실감은 전혀 없는데도 몸만은 점점 늙어간다.

의식이 돌아올수록 배의 아픔이 강해졌다. 텅 빈 위가 활동하기 시작해서 산을 내는 탓이겠지. 잠기운은 아직 있었지만, 무엇이든 입에 넣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절박감이 느껴졌다. 방을 나와서 거실에 들어가자, 익숙한 두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편성으로 함께 요리를 하고 있었다.

발소리를 들었는지 그녀가 다가와서 양손을 펼쳤다. 누나도 이쪽을 돌아봤지만, 상관없다.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면 이 정도는 알고 있겠지. 생각하기 귀찮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녀를 들어 올리고 키스를 한다. 가볍지 않은, 혀를 넣고 얽히는 키스다.

몇 분 정도 지나 그녀를 내렸을 때, 누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는 듯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도 누나의 곁으로 돌아가서 다시 요리를 한다. 적어도 방해가 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된장국의 냄새가 코를 강하게 자극했고, 서 있기도 괴로워져서 의자에 걸터앉는다.

상체가 기울더니 테이블 위로 머리가 떨어졌다. 뺨이 서늘하고도 차가워서 일어설 기력을 빼앗아간다. 어떻게든 양팔을 올렸더니 답답함이 조금 나아졌다. 그대로 눈을 감자, 마음이 멍하니 떠오르며 거실 전체를 둘러보게 되었다. 어째선지, 무척 그리운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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