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126화 (126/450)

5년 6화

정글

서둘러서 집을 나온 것이 일곱 시 반, 공항까지 한 시간 조금, 비행기에서 전철로 갈아타서 이곳에 도착한 것이 열 시가 되기 직전이다. 음식점이면 몰라도 옷가게는 폐점하는 시간이다.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또 속였다는 말을 듣게 되리라.

이제 곧 문을 닫을 거고, 내일은 놀이공원을 즐겨야 하니 시간이 없다. 그렇게 말하자, 나중에 꼭 해줄 테니 여기만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왜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폐점까지 이십 분도 남지 않았으니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식사를 해도 별반 차이는 없다.

아동복 가게로 달려가나 싶었는데, 그녀는 가까운 레이디스로 들어갔다. 서두르다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가게를 찾으러 이동하는 시간을 아낀 걸지도 모른다. 스커트도 재킷도 그녀에게는 너무 클 테고, 몸집이 작은 그녀가 숄을 걸치면 망토가 되어버린다.

남은 건 모자나 스카프 정도로, 뽐내듯 자세를 취하며 시착해보고 있다. 점원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겠지. 나였다면 폐점 직전에 온 손님은 귀찮다고 생각했겠지만, 전혀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테마파크에 공설 된 만큼 교육이 잘 되어있다.

어느 쪽이 괜찮은지, 어느 쪽이 어울리는지 물어봐도 곤란하다. 마지막에는 점원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주제에, 어째선지 매번 내 의견을 물어본다. 애초에 어른용 모자라서 머리에 맞지도 않고, 스카프를 감을 연령도 아니다. 머플러로 쓸 수 있을 만한 것을 골라주자, 더 어른스러운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그럴 거면 물어보지 않으면 될 것을.

결국, 평소처럼 점원을 소환했다. 전문가답게 아래의 서랍에서 재고를 꺼내 가장 작은 사이즈의 숄을 준비해주었다. 허리까지 내려와서 조금 이상하기는 해도 어떻게든 볼만해졌다. 드디어 정해졌나 싶었지만, 어느 색깔이 좋은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도 꽤 선대답이 능숙해졌다.

가게를 나오자 그녀의 다리에 날개가 자라났다. 축제 분위기에 취했는지, 그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가 미소짓고 있는 걸 보고 그녀는 곧 침착한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더 들떠도 좋을 텐데, 어린애 같으니까 안 된다고 한다. 그렇게 품위를 차려서 어쩌려는 건지.

식당을 몇 군데 둘러보자, 정글을 테마로 한 가게가 있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니 새의 울음소리나 고릴라의 포효가 들려온다. 도시에는 신기한 가게도 다 있다. 들어가자마자 라스트 오더라는 말을 들은 것은 놀랐지만, 둘이서 같은 요리를 주문했다.

커다란 수조를 올려다보며 요리를 기다리자, 갑자기 그녀가 고맙다는 말을 꺼냈다. 멍해져 있으니 그녀가 손을 흔든다. 시키는 대로 왼손을 내밀자, 손등에 살짝 키스를 해주었다. 오늘은 바깥이라 할 수 없으니까, 하고. 식사의 키스 대신이라고 한다.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눈을 피해졌다. 키스는 괜찮으면서 손등은 부끄러운 건가. 아니면 바깥이라 그런 걸까.

무섭기는 무섭다. 의심을 사서 추궁당하면,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아이가 조금 발돋움해서 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담, 괜찮지 않은가. 답례로 그녀의 손에 키스를 돌려주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옆을 보자, 몇 자리 떨어진 곳에 앉은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보면 안 되는 것을 보았다, 라는 느낌으로 눈을 돌려졌다. 보여진 것이다. 하지만, 별로 위험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어떻게든 발뺌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는, 등골이 싸해진다. 자신이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것이 싫어도 이해가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사양않고 내게 응석을 부린다. 타코스를 만들어 달라, 먹여달라, 하고 주문을 하고는 일부러 내 손가락을 핥는다. 보여지고 있다는 공포는 있었지만, 행복해보이는 그녀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 덕분에 여러가지를 먹어도 전혀 먹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절박감이 느슨해져서 방심했겠지.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가 손을 잡고, 손가락을 얽혀왔다. 순간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늦었다. 이렇게 활짝 웃고있는데 풀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쇼핑몰에서 원내의 호텔까지 계속 연인잇기를 했다. 기뻐서인지, 아니면 두려워서인지, 심장이 내구성이라도 시험하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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