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16화
편지
앞으로 한 걸음이었다. 한때는 얼굴을 마주치는 것마저 싫어했던 그녀가 집에 돌아오면 복도 안쪽에서 엿보고 있고, 아침 인사를 건네면 대답해주었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더니 아무 말 없이 옆에 앉기도 했다. 조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애가 타는 느낌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후배에게 하자, 편지를 권해주었다. 후배는 러브레터를 써서 고백했고, 이래로 일 년에 한 번은 편지를 건네고 있다고 쑥스러워하면서도 알려주었다. 편지라고 해봤자 엽서 정도밖에는 손에 든 적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이 그런 종류가 아니라는 것은 과연 나도 알고 있다.
회사에서 귀가하며 문방구에 들러 봉투와 편지지를 둘러본다. 옅은 분홍색에 진한 녹색, 카스리나 치도리 등 화풍 무늬도 많지만 스프라이트의 서양풍도 있다. 아무래도 정장을 입은 샐러리맨이 있을 곳이 아닌 느낌이 든다. 그녀가 있었다면 이런 소품을 좋아하니 한참을 들여다보았겠지.
아니, 애초에 그녀에게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할만한 무늬를 고르자. 무늬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이런 사소한 부분마저 대충 하는 인간이 사랑받을 리가 없다. 나지만 소녀냐,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아이에게 쓰는 편지란 틀림없는 러브레터였다.
집에 돌아오자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평소보다 이십 분은 늦은 시간이었다. 늦어서 미안, 하고 사과하자 그녀는 휙 거실로 돌아갔다. 서둘러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목욕을 한 다음 곧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봉투와 편지지, 볼펜을 늘어놓는다. 막상 써야겠다고 생각해도 무엇부터 쓰면 좋을는지. 조리있게 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뒷면에 논지를 적고 순서대로 정렬한다. 결론과 이유를 적은 다음, 구체적인 예를 두셋, 결론으로 돌아와서 전망을 적는다.
논리적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에피소드에 힘을 준다. 골자를 확인하자 실로 논리적인 텍스트가 완성되었다. 남은 것은 상세한 부분을 메우는 것뿐. 과부족이 없는 더할 나위 없는 문장이다. 이걸로 괜찮을까. 이건 사죄문조차 아니다. 그저 논문이었다.
내 마음속의 더러운 것, 끈적이는 것들을 감추었다. 하나의 선에 따라 말을 고르고, 남은 것들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 잘라냈다. 상쾌하고 듣기 좋은 문장이기는 해도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말의 극히 일부분 밖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몇 번이고 다시 적어가는 동안 기타로 노래하거나 시를 써서 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요컨대, 말이 아니다. 수학처럼 일과 일을 더해서 이가 되는 명쾌한 것이 될 수 없다. 솔직해질수록 불합리하고, 꼴사납고, 추악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내 경우에는 그랬다.
정신이 들자, 심야 두 시가 지나서 내일도 일을 하기에는 좋지 않은 시간이 되었다. 곧바로 멈추고 자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편지는 언제든 쓸 수 있으니까. 그녀가 오늘내일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국 그만둘 수 없었다. 지금 쓰지 않으면 평생 쓸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야의 텐션일 뿐이라고 한다면 부정은 못 하겠지만.
여기에 이르러서도 무엇을 써야만 하는지를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적고는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나는 모든 일을 처음부터 써 내려가기로 했다. 양친의 일, 누나의 일, 그녀와의 만남부터, 함께 살면서 바뀐 일들. 처음은 자포자기식의 놀이였던 것부터, 지금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일까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마무리하고 깔끔하게 봉투에 넣었을 즈음, 시계의 짧은 바늘은 정확히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자도 도저히 시간이 부족하다. 정장으로 갈아입고 방을 나왔다. 위가 거칠어진 탓인지 배는 비어있을 터인데도 식욕이 전혀 없다.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잔뜩 넣고 그녀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렸다.
기묘한 시원함이 있었다. 십 킬로미터 마라톤을 완주한 상쾌감이다. 그저 착각일 뿐이지만, 착각이라도 좋다. 그렇지라도 않으면 마주 보고 러브레터를 건넬 배짱 같은 것이 생길 리가 없다. 시곗바늘을 바라보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