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137화 (137/450)

5년 17화

증거

눈을 뜨자, 꽤나 사람이 늘어나 있었다. 졸린 눈을 한 그녀에게 편지를 억누르고는 그대로 집을 나와 출근했다. 그녀 앞에서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하면 좋은지 알 수 없어서 그랬다. 한 시간 정도는 수면을 취할 수 있었고, 시업까지는 이십 분 조금 남았다. 어깨를 돌리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은 그녀로 가득 차 있다. 편지는 벌써 읽었을까. 아침은 바쁘니까 그대로 학교에 가져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느긋하게 편지를 열어볼 수도 없겠지. 그렇다면, 자기 방에 두었다가 돌아와서 읽을 가능성도 있다.

생각해보면, 그 편지는 러브레터이면서 동시에 범죄의 고백이기도 하다. 만에 하나, 그녀 이외의 사람 눈에 닿으면 신고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녀는 그래도 현명하니까 내용을 알고 있다면 학교에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편지를 넘겼다. 내용을 알 리가 없으니 어떻게 할지는 알 수 없다.

조금은 잠들 수 있었던 덕분에 여유가 돌아온 탓이겠지. 이렇게 적었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도 자꾸만 맴돌았다. 만났을 때의 인상을 조금 더 세세하게 전할 것을. 함께 식사를 만들던 시간이 지금 돌이켜보면 사치스럽고 행복한 때였다. 여자아이다운 체형이 된 지금의 그녀도 귀엽지만, 작을 때의 둥그런 펭귄 같은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공상에 잠겨있자, 추억 속 그녀는 지금보다 무척 작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그녀에게 불만은 없다. 귀여워졌고, 더욱 날 따라주는 그녀가 미울 리가 없다. 그저,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어가는 그녀를 외롭게 느끼는 마음도 어딘가에 존재했다. 내가 그녀를 아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은 그런 외로움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그녀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누나가 떠오른다. 나와 누나는 지금은 그녀가 사용하는 방에서 긴 시간 동안 함께 생활해왔다. 누나가 대학에 들어가서 혼자 살기 시작할 때까지 자기 방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누나는 성장하는 데 따라 같이 놀지 않게 되었고, 집을 나간 이후로는 얼굴을 마주치는 일도 없어졌다.

아이가 여자가 되어 커질수록, 언젠가는 어딘가로 떠나간다. 그런 관념이 내 안에 박혀있다. 누나가 가족이 아니게 된 것처럼, 그녀도 성장하면 가족이 아니게 된다. 자립할 수 있도록 공부나 가사를 익히게 하는 것도 당연히 떠나가리라는 발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떨까. 그 편지는 징크스를 깨줄 것인가. 평소보다 몇 배나 길어진 시간을 느끼며 모니터를 향했다. 근무 시간이 끝나자 어제처럼 다른 곳에 들리는 일 없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비는 듯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자, 과연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쁜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요 며칠 같은 무표정도 아니다. 눈썹을 모으고는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녀왔어, 라고 말하자 대답도 하지 않고 톡톡 방으로 돌아갔다. 마중까지 해주게 되었으니 한 걸음 전진한 것일까. 곤혹하면서도 거실로 들어가자 식탁 위에는 접시가 몇 개나 늘어서 있었다.

방에 짐을 두고 거실로 돌아가자, 그녀는 그릇에 밥을 뜨고 기다리고 있었다. 젓가락을 손에 쥐고 먹으려는 순간, 그녀가 입을 열었다. 편지에 쓰여있는 것은 사실인가, 하고. 이것저것 너무 쓰고 말았고, 낮에 공상했던 것들도 섞여버렸다. 어디까지가 실제로 쓴 일인지 애매했다. 하지만, 거짓말은 무엇 하나 쓰지 않았다.

그렇구나, 하고 수긍한 다음, 기분 나쁘다고 중얼거렸다. 변태네, 라고도.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하게 귀에 남았다.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 없어서 식사를 할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단지, 난 어린 여자아이라서 때문에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고, 몸을 목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때, 그 장소에서,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로 좋아하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심판을 기다리는 죄인의 심경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자, 머리 위에서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들자, 그녀가 코를 부풀리고 있었다. 눈꼬리를 활처럼 휘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애초부터 내 심경을 알면서 손바닥 위에서 춤추게 한 것은 아닐까.

물론 편지에는 내 심경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한참 이전부터 그녀는 나를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일주일 동안 나는 그녀에게 의존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절대로 손 놓고 싶지 않다고 매달려버릴 것만 같았다. 더 어울리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 것들이 모두, 그녀가 그렇게 유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결코 싫은 상상이 아니었다. 그녀가 테이블 너머로 뺨을 가까이했다. 만났을 때부터 오늘까지 거의 매일같이 해왔다.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젖어있었고, 달팽이처럼 미끄러지는 혀는 뜨겁고 껄끔거렸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용서의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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