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18화
휴가
점심시간에도 조금은 잘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멀쩡해질 리가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칠 즈음에는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욕실에 들어갈 기력도 생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들어가면 되겠지, 하고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내 셔츠를 잡아당긴다. 화해했으니까 욕실에서 몸을 씻겨줄게, 라고 말하면서.
조금 망설였으나 솔직하게 밤을 새워서 편지를 쓴 탓에 너무 졸리다, 라고 말했다. 연상의 위엄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그런 종류의 자존심은 요 며칠 동안 산산조각이 났다만. 아니나 다를까, 바보 아니냐는 말을 들어버렸지만, 졸린 것은 졸리다. 화해하자마자 미안하지만 나는 자야겠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품속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들어와 있었다. 그녀다. 팔이 저려서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다. 팔베개라는 것은 연인끼리 하는 달달한 행위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해보니 이것 참 두려운 일이었다. 남은 오른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살짝 들어 올려 팔을 해방시켰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녀도 눈을 뜨고는 나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평소였다면 키스를 하겠지, 싶어서 기다려보았지만, 입술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쪽에서 가까워지자 도리도리를 하면서 양손으로 가로막는다. 어젯밤은 키스를 주었고, 지금도 멋대로 품속에 들어와 있으면서 지금은 거절한다. 영문을 모르겠다.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유를 묻는 것도 꺼려졌다. 그렇게 일찍 일어난 것도 아니라서 느긋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갈아입을 옷을 손에 들고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알몸으로 머리를 씻고 있었더니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에 사는 사람은 둘뿐이니까, 그녀겠지.
그건 알겠는데, 그녀가 들어오는 이유를 모르겠다. 서두르고 있으니 아무튼 머리를 마저 씻고 그녀를 향했다. 왜 들어왔는가. 아무래도 어젯밤은 그녀도 욕실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내 이불 속에 들어온 모양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몸을 씻겨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요 일주일 동안 같이 있어 주지 못하기도 했고, 그녀 나름대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미안하다는 마음은 있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내게도 일이 있다. 얼른 욕실을 나와서 회사에 출근해야만 한다. 지금은 신경 써줄 만한 여유가 없다. 나 혼자만의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회사에 민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조금 짜증이 나 있었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추고 있을 뿐, 그녀라면 혼자 욕실에 들어가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어도 학교에 늦지 않는다. 돌아와서 충분히 해줄 테니 지금은 혼자 해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입가를 앙다물며 째려보았다. 회사 같은 건 쉬면 되잖아, 라고 하면서.
사회에 나가면 알겠지만, 휴가는 그렇게 가볍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지간히 무거운 병에 걸리거나, 가족이나 친척에게 불행이 생겼거나, 그런 정도다.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재차 그녀에게 왜, 라고 되물어지자 말이 막혔다. 왜 회사를 쉬면 안 되는 것인가.
출세에도 파벌에도 흥미가 없었고, 그저 일만을 해내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일을 즐겁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도 유급은 버리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믿어왔다. 바보 같은 이유지만, 눈앞에 있는 알몸의 여자를 버리고 일을 하러 갈 이유가 있다는 말인가. 어디에도 없었다.
옷도 입지 않고 욕실을 나오자 그녀가 당황하며 쫓아왔다. 알몸인 채로 방으로 돌아와서 핸드폰을 꺼낸다.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유급을 신청했다. 변명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걸어버려서 목소리에 힘이 담겨있었다. 도저히 병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상사도 딱히 막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았지만 이유는 물어보았다. 잠깐 생각하고는, 지쳐서라고만 대답했다.
억지로 밀어붙여서 전화를 끊자 시원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남편'이 된 이후로 정시에 퇴근하게 되었고, 오늘은 드디어 꾀병이었다. 대단한 불량사원이 되었다. 거실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보는 그녀의 살결이 요망하다. 전화로는 지쳤다고 말했지만. 이제부터 지치니까, 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난방을 켜고 그대로 그녀를 쓰러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