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148화 (148/450)

5년 28화

요염

누가 나쁘냐고 묻는다면 내가 나쁘다. 멍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그녀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화내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고는 생각해도 솔직하게 이야기 하기 어렵다. 평소처럼 행동하고 있을 생각이지만 그게 잘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욕실에 들어가자고 권해오지만, 같이 들어가면 그럴 생각이 들어버린다. 그녀도 컸으니 혼자 욕실 정도는 들어갈 수 있겠지. 아니,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할 수 없다고 한다면 혼자 들어가게 해야만 한다. 마치 중요한 용건이 있는 척하며 그녀를 혼자 가게 했다.

나 자신의 유치함에 싫증이 난다. 몇 살이 되어도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서른이 넘어서도 어린아이가 눈치를 보게 만들다니, 바보나 다름없다. 한숨을 쉬며 냉장고를 열어보자 맥주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마시고 싶으니까 뚜껑을 열었겠지.

조금이라도 취한 편이 솔직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뚜껑을 열자, 공기가 빠져나오는 소리에 귀가 편안해진다. 언제든 마음이 들뜬다.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쯤 알콜 중독이 되어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단숨에 반 정도를 마시자 목이 뜨겁다.

적당히 채널을 돌리며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목욕을 하고 싶을 뿐이라면 내 방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이렇게 TV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남자답지 못함에 웃음이 나오지만 어쩔 수 없다. 정색할 수 있게 된 정도로는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어색하게 나오는 그녀와 교대로 욕실에 들어가자 잔향이 맡아졌다. 요컨대 그냥 샴푸와 린스 향이다. 그런데도 청결감이 느껴지는, 어딘가 그녀의 존재감이 있다. 꼭지를 비틀어 방 전체에 가득 찬 냄새를 날려버렸다. 일단 모든 것을 말끔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재빠르게 머리를 감고 닦아내듯 몸을 문지른다. 욕탕에 잠기자 어쩐지 하반신이 단단해져 있다. 파블로프의 개 같은 것일까. 연인이나 아내가 있더라도 혼자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손으로 잡아 문질러보지만, 아무래도 허무한 느낌이 든다. 가죽이 오가기를 반복하여 첨단이 보이고는 숨는다.

욕실을 나오자, 그녀가 항상 있는 자리에 앉아있다. 눈이 마주치자 옆자리의 방석을 팡팡 두드린다. 옆에 앉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화가 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화가 났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딱히 이야기하는 일 없이 사오십 분 넘게 TV를 보고 있자, 문득 그녀가 중얼거렸다. 상관없잖아, 그런 거 안 써도. 슬쩍 그녀를 보니 묘하게 즐거운 듯 보였다. 뒤돌아서 식탁을 올려보자, 누나가 두고 간 콘돔이 사라져 있었다.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콘돔은 사용해야만 하고, 더 말하자면 행위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아무리 콘돔을 해도 사고는 일어나기 때문이다. 알고는 있어도 한 번 경험하면 하고 싶어진다. 이런 제멋대로인 생각을 신경 써주고 있으니 나 자신이 한심하다.

이제 안 해, 라고 입에 담았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는 말할 수 없었다. 방문을 바라보고 있자 내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하듯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삐지지마, 하는 말을 들으니 정말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으면 하게 해주겠지만 제대로 언니가 말한 대로 하자, 라고 차근차근 설명하듯 말했다. 항상 귀엽다고, 성숙한 아이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여자다, 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면서도 확실하게 고삐는 잡고 있다. 그게 불쾌하지 않았다.

생각한 것을 그대로 입에 담자, 그녀는 귀까지 붉게 물들였다. 쑥스럽게 고개 숙인 목덜미가 간드러지게, 몹시 요염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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