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166화 (166/450)

6년 16화

RPG

며칠에 걸쳐 게임에 익숙해졌으니, 이번에는 RPG에 도전시켜보았다. 내가 좋아했던 게임을 몇 가지 보여주고 약간의 설명을 하며 고르게 했다. 일족이 힘을 계승하며 변해버린 일곱 영웅을 쓰러트리는 이야기. 혹은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크리스탈을 지키는 여행자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추천하는 것이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세계를 구하는 소년의 게임이다. 작중에서는 절대 말을 하지 않지만, 시간을 들여 모험하다 보면 점차 마음이 전해져온다. 그녀도 이것을 선택해주었다. 내용보다는 내 마음을 알아준 거겠지만.

그녀가 자기 손으로 카세트를 꼽고 전원을 켜는 것은 처음이다. 눈앞에서 몇 번 해 보였는데, 직접 하는 것은 느낌이 다른 걸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러면 되는지 하고 불안한 모습이었다. 튼튼함은 보장하니 망가질 일은 없다.

시계추 소리가 그립다. 이 시절 게임은 좋았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다고 요즘 게임을 하지는 않았다. 결국 젊었을 때 해본 게임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느껴지는 법이겠지. 내가 좋아했던 게임을 그녀에게 시키는 것도 그런 기분을 공유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옛날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지금 초등학생인 그녀이니 분명 비슷하게 느껴주지 않을까.

뒤에서 바라보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막히는 것이 재미있다. 예를 들어, 이름을 입력하는 당연한 기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주인공한테 이름을 붙여주는 거라고 설명해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RPG는 만화나 소설처럼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하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름이 정해져 있는 법이니 위화감이 있다는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즐기고 싶다면 초기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

이 게임은 방에서 눈을 뜬 주인공이 어머니에게서 축제를 보러 가라는 말을 듣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켜보니 방을 빙글빙글빙글빙글 어슬렁거리며 열심히 무언가를 찾고 있다. 방에서 나오니 이번에는 맵을 구석구석 탐색하고 있다.

뭘 하면 되는지 잘 모르는 걸까, 하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아무래도 게임에서 지시하는 것보다 자신의 흥미를 우선하고 있는 것 같다. 서랍 안이나 지도의 숲, 다리 같은 것이 마음에 들어서 그걸 보러 가고 싶었다고. 그녀는 진지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자유롭다.

저번 게임을 생각해보면 몬스터와 싸울 때도 불쌍하다고 말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적이 불쌍하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외견이 좋지 않은 몬스터는 기분 나쁘다며 집요하게 공격을 해댔다. 어쩐지 무서운 기분이 든다.

이야기의 진행상 납치당한 공주님을 구하러 가는 장면이 있다. 아무래도 그녀는 공주님의 성격이 취향이 아닌 모양이라,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반복해서 호소했다. 내가 좋아했던 뱀의 모습을 한 캐릭터도 마구 욕을 먹었다.

들어보니 공주님은 주인공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뱀은 답답하게 우물쭈물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게 판타지의 정서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녀는 현실주의적인 면모가 있다.

반대로 과학의 힘으로 주인공을 돕는 소꿉친구 캐릭터는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묵묵히 역할을 해내고 무슨 일이건 냉정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다고. 내가 보기에는 모든 발단이 이 캐릭터 탓이니 공주님보다 질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이야기를 해보고 알게 된 것은, 그녀는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하는 캐릭터는 용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공주님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주인공을 휘두르니까 안되지만, 소꿉친구는 자신이 연구한 도구니까 좋다고. 아마 그녀 자신도 태생이 확실치 않고, 전부 자신의 힘으로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참고로, 그녀는 소꿉친구가 고친 충실한 로봇도 마음에 들어 했다. 하는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내 어깨를 두드리며 로봇의 역할을 임명했다. 그녀에게 나는 로봇 정도의 존재인가. 기쁜 것 같기도, 슬픈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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