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174화 (174/450)

6년 24화

메일

운동을 시작하면 자연스레 자세도 좋아진다. 약간 결리던 어깨도 좋아지고 편두통도 많이 줄어들었다. 좋은 일만 가득했지만 혼자서는 절대 시작하지 않았을 거고 이어지지도 않았겠지. 그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맙게도 여자 후배들이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예전에는 충실한 생활을 보내는 사람에게 질투심을 가지곤 했다. 그녀와 즐겁게 살다 보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사소한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일 없이 느긋하게 대처할 수 있다. 제멋대로인 그녀를 상대하느라 여성을 대하는 것도 익숙해진 모양이다. 애인이 있는 남자일수록 왜인지 있기 있는 법칙을 실감했다.

환영회나 계절마다 있는 회식 자리 등에 출석하면 극히 드물게 *메일 주소를 교환할 때도 있었다. 여성 사원은 대부분 일반직이고, 일반직은 기본적으로 남성 사원의 배우자 후보로서 채용된다. 종합직 여성은 좋지 않게 보는 경우도 있는 듯하지만 대부분은 그걸 알면서 입사한다. 좋든 나쁘든 낡은 풍습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십 대도 후반이 가까워져 상대를 찾지 못한 여성에게는 서른이 넘은 남자라도 매력은 있겠지. 상승지향적이지도 않고 의욕도 없지만 매일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봐서 무난한 타협점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나 같은 사람에게 주소를 알려줄 리는 없을 터다. 반대로 말하자면, 나 같은 사람에게 손을 대는 정도이니 그 초조함을 엿볼 수 있다.

내게는 그녀가 있으니 흥미는 없다. 하지만 메일이 오면 대답 정도는 해야만 한다. 금방 질리겠지 싶었는데, 이게 의외로 계속 이어진다. 여자로서는 어쨌든 친구로서는 나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회인이 되면 친구도 줄어드니 이런 기회에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가끔 내 핸드폰이 사라질 때가 있었다. 책상 위에 두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침실에서 발견되거나, 거실에서 부엌으로 이동하고는 한다. 처음은 건망증이 심해진 내 머리를 의심했는데, 몇 번이고 계속되면 금방 알 수 있다.

시험 삼아 웃옷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화장실에 가보았다. 몇 분 기다리고 갑자기 문을 열어보니 그녀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당황스레 숨기기는 했지만 무슨 일인지는 뻔했다. 이쪽은 알고 시험해본 것이니 숨겨도 소용없다.

잠금이 걸렸는데도 보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물어보니 당연하듯 해제해 보인다. 눈앞에서 몇 번이고 푸는 모습을 보였으니 그녀로서는 모를 수가 없다는 모양이다. 왜 모른다고 생각했는지를 반대로 모르겠다는 투다.

뭘 하고 있었는지 물어보니, 거의 울리지 않았던 핸드폰이 빈번하게 진동하는 것이 신경 쓰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친구에게 물어보니 바람피우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누구한테 어떻게 물어봤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상한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이 아닐까.

회사의 동료와 이야기했을 뿐이라는 나와 명백한 바람이라고 주장하는 그녀로 의견이 갈린다. 애초에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으니 바람이 성립하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여성 점원에게 물건을 사는 것과 별반 차이 없겠지. 회사라는 속박이 있으니 무시하지 않을 뿐이다.

그럼 자기 맘대로 해도 되냐고 묻기에 그녀에게 맡겼다. 열한 살이니 일단 상식은 갖추고 있으리라. 그렇게 뜬금없는 일은 하지 않겠지. 기껏해야 주소를 지우거나 착신 거부일까. 그 정도로 생각하자, 그녀는 멋대로 메일을 답신하고 있었다. 젊다는 것은 굉장해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혼자 플릭 입력을 익히고 있었다.

그것도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나와 이야기할 때보다도 빈번히 대답이 돌아온다. 신경 쓰여서 들여다보려 해도 보면 안 된다고 숨겨버린다. 그렇다고 내 주소인데 전혀 모를 수는 없다. 출근 도중에 자전거에서 내리고 몰래 열어본다.

그러자, 그녀는 내 애인을 자칭하며 당당히 메일을 보냈었다. 상대도 신이 나서 나와 그녀의 개인 정보를 세세하게 캐묻고 있다. 얼굴이 새파래졌지만, 신상을 들킬만한 이야기는 과연 쓰여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외의 일은 숨김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동거하고 있다든지, 밥은 그녀가 만든다든지. 끝내는 숨길 일도 아니니 다른 사람에게 알려줘도 좋다고까지 쓰여있었다. 서둘러 여성에게 부끄러우니 비밀로 해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일본은 문자 서비스 없이 이메일을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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