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178화 (178/450)

6년 28화

인연

꽤 오랜만에 셋이서 식탁에 둘러앉으니 누나가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베이컨과 피망 볶음, 경수채 나물, 토란 조림에 된장찌개의 순수 일본풍 메뉴다. 뭔가 했더니 내가 토란만 골라서 먹는 것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가장 입에 맞는 맛이었기 때문인데, 그녀가 맡은 요리였다고 한다.

말하기는 그렇지만, 요리란 먹는 사람에게 맞춰서 만드는 것이다. 누나의 맛내기는 매형이나 시어머니의 취향이다. 그녀는 당연히 내게 맞춰준다. 그녀들이 자신을 뒷전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집에 살면 맛의 취향이 비슷해지는 것이리라.

맛있어, 하고 말하니 그녀도 기분 좋게 웃어주었다. 뜨겁네, 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보여주는 상대 같은 건 평소에는 없으니까. 그녀는 뜨겁다는 표현이 재미있었는지, 뜨겁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는 뜨거뜨거하고 몇 번이고 반복했다. 자기의 말이 벌써 사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누나만이 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그녀가 욕실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뒤따라가니 누나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우리 집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누나에게는 저항이 있겠지. 단지, 그녀는 혼자서는 씻지 못한다고 말해주자, 짜증스러운 얼굴로 누나가 따라갔다. 아마도 어리광부리게 두지 말고 욕실 정도는 혼자 가게 하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녀도 나도 바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할 일도 없어서 아기를 보고 있었더니, 누나도 그녀도 없는 것을 알았는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누나의 가방에서 장난감을 꺼내 흔들어본다. 한두 개는 무시당하고 아기의 얼굴 만한 인형이 한순간 주의를 끌었으나 이내 던져진다.

욕실까지 달려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별다른 말 없이 안아주라고 해도 아기 같은 건 안아본 적도 없다. 조카니까 괜찮아, 하는 아무런 근거 없는 말이 돌아올 뿐이다. 아기 주변을 세 바퀴 정도 돌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목을 가누지 못하니까, 라는 말은 들었으니 가능한 목이 돌아가지 않게 한다. 수평, 수평 하며 안아 올린다. 그녀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가볍다. 하지만, 그럼 안아서 어떻게 하는가, 라는 문제도 생긴다. TV에서는 흔들기도 했던 것 같아서 스쿼트처럼 위아래로 흔들어본다.

더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위아래가 안되면 세로인가, 가로인가. 생각나는 모든 걸 하는 동안 점차 소리도 그쳤다. 무엇이 원인으로 울음이 그쳤는지 모르는 이상, 이유가 없다는 것은 질식하거나 혀를 깨물었을 가능성도 있다. 상태를 살피기 위해 침대로 되돌리려 하자 다시금 절규가 시작된다. 안심은 안심이지만 곤란해졌다.

아무튼 빨리 욕실에서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일분일초가 한 시간 정도로 느껴졌다. 그런데, 누나가 욕실에서 나와도 전혀 대신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아저씨가 안아줘서 좋겠네, 하고 말하며 웃고 있다. 덤으로 그녀까지 달랠 때는 말을 걸어줘야지, 하고 훈수를 둔다.

석연치는 않지만, 아기에게는 죄가 없다. 웃는 얼굴로, 라고 해도 무뚝뚝한 얼굴은 날 때부터 그랬으니 가능한 한 정중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그것도 점점 익숙해지니 역시 아기란 사랑스럽다. 어떤 생물이라도 작을 때는 귀여운 법이다. 그녀에게 손을 댄 내가 말하면 수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아이가 절대 싫지는 않다.

그러니까 아기 귀여워, 라는 그녀의 말에는 전면적으로 동의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아야 할 존재다. 그 이전에, 내게는 가족이 없다. 지금은 누나도 그녀도 방에 있으나 누나는 시댁으로 돌아간다. 그녀도 지금은 내 곁에 있어 주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만약 친자식이 생긴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으리라.

피를 나눈 아이라면 어떻게 되더라도 가족이라 말할 수 있다. 누나처럼 어딘가에 시집을 간다 해도 확실한 인연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겠지. 내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도 묘하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 아이는 누나의 것이지, 자신의 아이도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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