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186화 (186/450)

7년 6화

비추다

평소 같으면 별생각 없이 서점이나 옷가게를 돌아다녔겠지만, 그날은 지갑을 본다는 목적이 있었다. 세련된 잡화점 두세 곳 정도만 돌아보면 마음에 드는 것을 찾겠지 싶었지만, 일단은 미리 조사해두었다. 온종일 돌아보고 결국 고르지 못한다면 조금 그럴 테니.

단지, 나는 그녀의 취향을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녀이니 색깔이나 모양 같은 디자인이 가장 평가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하지만 저녁거리를 사러 갈 때 보면 세일이나 재고품이 있기도 하니 가벼운 면도 있다. 포인트 카드나 쿠폰을 모을 수 있는 장지갑 종류를 고를지도 모른다.

편리하게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도심부에 지갑을 다수 다루는 가게가 몇 건이나 있었다. 웹페이지까지 파스텔 조로 통일된 여성용 캐주얼샵도 있나 하면, 가죽 제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도 있다. 같은 상품이면서도 상당히 극단적인 차이가 있다. 이 정도면 어딘가에는 취향인 것이 있겠지.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실제로 쇼핑을 나가보니 그녀는 두 건째에서 금방 지갑을 선택했다.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는지 꼭 몇 건마다 같은 가게를 향한다. 마음에 드는 지갑이 그곳에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라 취향이 일치하기 때문이겠지. 혹은 전부터 눈도장을 찍어두었을 수도 있다.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그녀는 가게에서 지갑을 열어보았다. 쇼핑용 지갑을 꺼내서 안에 든 돈을 얼마 정도 옮기고 있다. 알리바이라도 증명하듯 내 눈앞에 영수증을 보여준다. 사백 삼십 오엔, 주스 세 개분 정도일까. 지갑의 가격이 일만 오천엔 정도이니 내용물보다 포장이 더 비싸다.

그녀에게 고급품을 사준 것은 딱히 졸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가능한 한 오래 써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삼천엔 가격의 물건을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싼 것은 금방 못 쓰게 되어버린다. 그걸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항상 새로운 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잘 망가지지 않는 물건을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이다. 좋은 지갑이라면 잘 사용한다면 십 년은 견딘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 내가 모르는 그녀가 늘어간다. 사회에 나가서 어른이 된 그녀의 곁에 내게 받은 물건이 하나라도 남아있기를 바란다.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다. 돈을 마저 옮긴 지갑을 테이블 옆에 두고 대화하는 사이에 슬쩍슬쩍 훔쳐보고 있다. 통로에서 떨어진 자리이기는 해도 테이블 위에 지갑을 올려두는 것은 조심성 없는 일이다. 식사가 나온 것을 계기로 가방 안에 넣어두도록 타일렀다.

눈앞에서 지갑이 사라진 반동인지 이번에는 지갑에 넣을 것을 달라고 한다. 돈을 달라는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티켓이든 뭐든 상관없다고 한다. 카드를 넣는 장소가 있으니 채워보고 싶은 거겠지. 자연히 모이다 보니 사용하지 않는 카드라면 얼마든지 있다.

식사를 마치고 지갑을 정리해보니 보험증이나 병원 진찰권 같은 필요한 것도 조금은 있었다. 기한이 지난 정기권에 선술집 포인트 카드, 각 편의점 회사의 머니 카드 등 필요 없는 것이 더 적을 정도였다. 정말 쓸모 없는 것을 그녀에게 줘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영화관 티켓 카드와 노래방 회원 카드를 그녀에게 건넸다. 영화도 노래방도 그녀가 아니면 가지 않으니, 그녀가 가지고 있는 편이 효율이 좋다. 그녀도 의미가 있을 법한 카드를 받아서인지 만족스러워 보였다.

다른 것은 없는지 묻기에, 지갑에 남아있던 명함도 한 장 주었다. 평소 업무에서 명함을 교환하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필요해질 때도 있으니 만약을 위해 몇 장은 지갑에 넣어두고 있다. 받아든 그녀는 흐응, 하고 대답하며 명함을 이리저리 비춰보고 있었다. 지폐와는 달리 명함에 그런 기믹은 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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