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192화 (192/450)

7년 12화

보호자

그녀와 함께 등굣길을 걸으니 신기한 기분이 든다. 길 자체는 흔하고 몇 번이나 다닌 곳이다. 같은 초등학교니 이십 년 전쯤에는 나도 다닌 길이다. 상당히 풍경이 바뀌었으니 그립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단지 평일 낮에 둘이 같이 걷는다는 상황이 신선했다.

그러한 감개도 오 분 정도면 끝난다. 집단등교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데, 같은 길을 같은 시간에 걸으니 결국은 합류하게 된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선두로 가버리고 난 다른 학부모 사이에서 걷게 되었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난 입학 이후로 모임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흥미가 없는 차가운 부모라고 인식되고 있다. 그녀가 잘 따라주고 부친이기도 해서 여성이 많은 PTA에서 연락이 온 적은 없었지만, 상당히 나쁜 남자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말의 구석구석에서 편견과 아양 같은 것들을 엿볼 수 있다. 남자는 역시 일을 쉴 수 없겠지. 모친과 아이들뿐이다. 남자 혼자 아이를 키우고 휴가를 받아서까지 운동회에 오다니, 하고 손바닥을 뒤집으며 추켜세운다. 아침부터 힘이 빠진다.

기분 탓인지, 너무 깊게 생각한 것 같지만. 흑심을 기대받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만혼화 탓인지 대부분의 모친이 마흔 중반이다. 서른넷인 나조차도 어머니들 집단 안에서는 젊다. 용모가 어떻기 이전에, 아이들 앞에서 남편을 깎아내리는 것이 꺼림칙하다.

그녀는 그녀대로 같은 나이대의 아이는 모두 남자뿐이다. 이 삼학년 중에는 여자아이도 있는 것 같지만, 육학년에서 삼학년에게는 어린애로 보이나보다. 마치 측근처럼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있다. 그녀는 여동생처럼 연하의 아이를 신경 써주고 있는데, 만약 다른 여자가 있다면 재미없는 경험을 할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교문을 지나면 그런 그녀들과도 안녕이다. 운동회가 시작하기까지 할 일이 없다. 드디어 혼자 조용하게,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에 말려들 것 같다.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지 않으면 정말 온종일 같이 다니게 되리라.

솔직히 말해서 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무리해서 올 필요는 전혀 없었다. 난 원래 이성이 별로 편하지 않고, 이유 없이 접하지 않도록 해왔다. 여자에게 흥미는 있으나, 아무래도 성가시다.

그녀와 사귀게 되어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직장의 여성과도 잡담하고는 한다. 평범하게 대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주부는 전혀 다르다. 무엇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건지, 그것마저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역시 그녀는 훌륭하다. 불합리한 일은 항상 있고 제멋대로 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논리 있게 이야기하고 말이 잘 통한다. 그러도록 키웠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자라준 것은 그녀다.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리워진다.

그렇다고 현실도피를 해도 어쩔 수 없다. 어떻게 할지 헤매고 있었더니 익숙한 사람이 교문을 지났다. 누나다. 약속한 사람이 있으니까, 하고 빠져나왔다. 누나도 아이가 태어났으니 준비라도 하려는 걸까.

말을 걸었더니 내가 있다는 것에 놀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내가 얼굴을 내밀지 않는 대신 누나 혼자 그녀의 운동회를 보러 와주었던 모양이다. 처음 듣는다고 말했더니 싫은 표정으로 배를 때린다. 이학년 때 내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을 그녀에게 듣고 삼학년 때 주의를 주었다고.

일이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며 당당하게 말하기에 어쩔 수 없이 와주고 있다고. 고맙다고는 했으나, 그렇게까지 해줄 만한 일일까. 난 혼자서도 딱히 신경 쓴 적이 없었는데.

과연 남매로서 길게 살아온 만큼 표정으로 읽어낸 모양이다. 네가 신경 쓰고 말고는 문제가 아니다, 하고 또다시 얻어맞는다. 친누나의 폭력은 그녀 이상으로 용서가 없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이번엔 오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이 더 괴로웠다.

확실히, 오늘은 그녀도 기뻐해 주는 것 같았다. 중학생이란 사춘기도 한바탕이라 아빠 얼굴 같은 건 보기 싫다, 속옷을 같이 빨지 말라, 같은 욕조는 싫다, 하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녀가 힘내는 모습을 볼 몇 안 되는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크다. 풀이 죽은 모습을 보니 그건 그거대로 짜증나는지, 그 이후로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맞기만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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