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19화
짜증
말이 적을 때는 대체로 기분이 나쁘다. 어제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밤에 늦게 자기라도 했나. 사람이란 신기하게도 짜증 날 때 화가 났느냐고 물어보면 더욱 짜증이 난다. 가만히 내버려 두기를 바라는 법이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아침을 먹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출근하려고 생각했으나, 밥그릇을 씻고 있으니 등 뒤로 끌어안긴다. 그대로 응석이라도 부리려나 싶었지만 옆구리에 손톱을 세운다. 나이를 먹어서 늘어난 군살을 신경 쓰는 날 괴롭힐 속셈인가. 연약한 여자아이의 악력이라고는 해도 아픈 건 아프다.
아프다고 말하자 흐응, 하고 흘려 넘긴다. 설거지라고 해도 가만히 서 있지만은 않는다. 그릇 선반은 눈앞에 있지만, 수건을 집거나 선반에 넣는 등 좌우 이동도 있다. 떨어지려나 싶어도 따라와서까지 꽉 조인 손을 풀지 않는다.
오 분 정도 이유 없이 괴롭혀지면 아무리 나라도 화가 나기 시작한다. 무엇 때문에 짜증을 내는지는 모르겠으나, 괜한 화풀이가 아닌가. 마지막 그릇을 정리하고는 그녀의 팔을 붙잡아 떼어낸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팔을 깨물기 시작한다.
아침 댓바람부터 대체 뭐란 말인가. 일단은 내가 무언가 기분을 헤칠만한 일이라도 했는지 물어보지만,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도 않고 도리어 큰소리를 낸다. 오히려 자기가 손톱이나 이빨로 공격하는 것은 권리라는 듯한 말투이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무언가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 사회인의 아침은 일분일초가 무척 귀중하다. 그녀를 떨쳐내고 화장실에 틀어박혀 슈트를 마저 입고는 집을 뛰쳐나갔다. 찜찜하지만 어울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집에 돌아올 즈음엔 이미 아침의 일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집 문을 열어보니 현관이 어둡다. 구두를 벗고 들어가도 방에 불마저 켜져 있지 않다. 아직 그녀가 돌아오지 않은 걸까. 불을 켜보니 식탁 위에 수퍼에서 사 온듯한 냉동 *교자나 샐러드가 올라와 있다.
저녁으로 *레토르트 식품이 나오는 것도 처음이다. 사 온 본인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아침 일을 다시 떠올려보면 가출이라도 한 걸까. 마음속에 암운이 드리운다. 그 정도로 싫은 기억을 남기고 말았단 말인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돌아오지 않는 일은, 없을 터다.
무슨 사건에라도 말려들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있을까. 친구 집이라면 상관없다. 이 시간까지 번화가를 돌아다니거나 남자와 걷고 있다면 어떻게 될지. 몸을 요구당하거나 술이나 약을 권해질지도 모른다. 그런 경험이 없으니 상상력이 빈곤하다. 빈곤한 만큼 두려움만이 부풀어간다.
아무튼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만한 사람, 누나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귀에 대며 주변을 돌아본다. 그건 버릇 같은 것이지 딱히 의미는 없었다. 그래서 TV 앞에 그녀가 앉아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놀라서 전화를 내팽개치고 그녀 곁으로 달려간다. 무릎으로 바닥에 앉아 살펴보니 가슴의 오르내림으로 숨이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눈은 감고 있지만 자고 있을 뿐일까. 무언가 병일 가능성도 있다. 말을 걸어도 괜찮을까. 망설이자 어서 와, 하고 그녀가 중얼거렸다. 인형이 목소리만을 재생하는듯한 마른 울림이다.
깨워버렸나 싶었지만 자고 있지는 않았다. 어두운 편이 안심돼서 그렇게 했다고. 몸이라도 안 좋은 걸까. 병원에 가보자고 제안해도 고개를 흔들 뿐이다. 가도 소용없으니 조금 기다리라고만 한다. 그렇게 말씨름을 하고 있으니 그녀가 탕, 하고 있는 힘껏 바닥을 두드렸다.
그런 폭력적인 행위를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기품있는 여성을 목표하고 있을 그녀는 항상 행동에 신경을 쓰고 있다. 말하자면 연기인데, 그것이 무너질 줄은 몰랐다. 그녀 자신조차 그 소리에 놀라고 있었다.
여기서 말다툼을 해도 소용없다. 그녀의 몸 상태가 나쁘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본인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역시 자세한 사람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그녀를 알고 있고 내가 마음 편하게 연락할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아무튼 지금은 따르는 척을 하는 수밖에.
짐을 챙겨서 방에 가서는 서둘러 누나에게 전화했다. 조금 전에 신호가 간 탓인지 그쪽에서도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귀찮게 해서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전화 버튼을 누른다. 상대에게는 금방 연결됐다.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며 어떻게든 사정을 설명한다.
*만두
*간편 식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