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20화
레토르트
의사는 아니니까, 하고 말을 아꼈지만 누나의 말투에서 확신이 느껴졌다. 그건 병이 아니니 확실히 병원은 소용없을 거다, 아마 생리가 온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였다. 같은 여자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점도 있다.
그녀는 누나와 달리 주기가 오더라도 건강이 나빠지거나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았다. 성욕이 늘어나는지 몸을 비비는 정도로 악영향을 본 적은 없다. 그것도 수치심을 참으며 친누나에게 물어보았다. 만약 아니라면 역시 서둘러 병원에 데려가야만 하니까.
대답을 들어보니 몸 상태나 연령에 따라 증상이 달라지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몸을 비비던 것도 성욕이 어쩌고가 아니라 머리가 뜨거워지는 탓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을 뿐이다, 라고. 에둘러서 혼자 들뜨는 멍청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자기 몸은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다. 믿을 수 없겠다면 본인에게 잘 물어보도록 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다, 하고 누나는 전화를 끊었다. 난 감기에 걸리더라도 그에 대해 대답할 자신이 없다만. 여자는 그걸 알 수 있는 모양이다.
방으로 돌아가 보니 그녀는 교자를 전자레인지에 넣는 도중이었다. 먹을 수 있겠는지 물어보니 그녀는 먹을 생각이 없다고 한다. 적어도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골랐을 뿐, 자신은 식욕이 없으니 식사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찌푸린 표정의 소녀를 앞에 두고 태연하게 교자 같은 걸 먹을 수 있겠는가. 적어도 난 무리다. 게다가 무엇보다 지금은 정확한 상황을 알아야만 한다. 얼버무리지 않도록 눈을 마주 보고 그녀를 추궁했다.
이전에 아무렇지 않게 밝혔던 때와 다르게 오늘은 말하기를 꺼린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 증거로 보인다. 내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힘이 되어 주고 싶다고 말해보지만,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말할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나를 멋대로 막 써먹었던 누나와 다르게 그녀는 내게 사양하는 부분이 있겠지. 평소에는 아무런 부담 없이 접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마음의 벽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그녀가 바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 이상 내 쪽에서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떠올려보니 누나는 생리가 오면 콩을 먹고는 했다. 샐러드에 콩만 얹어서 식욕이 없는 날은 그것만을 입에 대었던 기억이 있다. 사 오라고 부려 먹히고는 했었다.
부엌에 남은 것이 있는지 찾아보니 캔에 든 삶은 콩이 있었다. *상미 기한은 위험하긴 해도 지나지는 않았다. 양상추에 토마토, 오이를 넣은 샐러드에 콩을 딴다. 누나가 그랬다면 무언가 의미가 있었겠지. 그저 취미였다면 웃을 수 없지만.
그런데, 저녁이 식물유지와 단백질만이라면 허전하다. 탄수화물도 조금은 섭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 생각하고는 *콩소메 수프에 냉동 쌀을 넣어 간단하게 *리소토를 만든다. 얼마나 만들까 고민했지만, 내일 분은 내일 만드는 편이 좋겠지. 취향에 맞지 않아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조리에 소비한 시간은 십 분 정도 지만, 교자가 데워지고부터는 상당히 지났다. 자기가 먹을 음식이 완성된 것보다 모처럼 데워준 음식이 식은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말로 분노를 폭발시킬 만한 기력은 없어도 마치 지옥의 파수꾼 같은 눈길로 노려보았다.
교자는 맛이 없지는 않다. 가게에서 파는 것이니 이 정도겠지. 그러니까 맛있는지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데, 평소에 손 요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레토르트를 칭찬하면 자존심을 해치는 일이 때때로 있다. 지금까지의 노력은 뭐였나 하는 이야기다.
그럼 솔직하게 맛없다고 말하면 어떨까. 항상 잘 만들어주는데 가끔 대충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하고 화를 내게 된다. 배달이나 외식과 비교해도 레토르트 음식이란 대충 했다는 느낌이 강한 것 같다. 맛있지만 항상 해주는 편이 더 맛있다는 느낌으로 능숙하게 이야기를 가져가는 데엔 고생이 필요하다.
그녀도 샐러드와 리소토를 먹고 겨우 한숨 돌린 모양이다. 목소리는 딱딱한 그대로지만 맛있다고 말해주었다. 뒷정리를 마치고 TV 앞에 진을 치자 그녀도 따라왔다. 곁에 기대려고 하기에, 오늘은 무릎이 아닌가 하고 물어본다.
슬쩍슬쩍 시선을 향하더니, 망설임 끝에 평소대로 무릎에 올라왔다. 정말 뭔가 해주길 바라는 건 없는지 재차 물어본다. 잠시 기다리자, 내 팔을 당기고는 자기 배 위에 얹는다.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는 명령이시다. 다른 한쪽 팔은 입가에 가져가서 이빨을 댄다. 무언가 씹고 있으면 침착한다고는 하는데, 정말일까.
*일본 음식류의 유통기한
*고기 육수와 채소 등을 넣어 끓이는 맑은 프랑스 수프
*볶은 쌀에 육수와 채소, 고기, 해산물 등을 넣고 졸인 이탈리아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