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214화 (214/450)

8년 4화

소프 플레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녁을 먹었지만, 어색함은 남아있다. 원숭이 같다는 말을 듣는 중학생 때도 이런 적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그녀는 괜찮겠지만, 난 참을 수 없다. 그런 온도차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새침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난 얼굴을 바라볼 수 없다.

별로 화가 나지는 않은 듯하지만, 오늘 밤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식후의 차를 마시며 상황을 지켜보자, 뭔가 할 말은 없냐며 그녀가 말을 꺼냈다. 마른 침을 삼키며, 각오를 정한다. 일단은 현관에서의 일을 사과한다.

반성하고 있는가, 하고 재차 묻기에 긍정한다. 이건 거짓말도 농담도 아닌 사실이다. 과연 집에 돌아오자마자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억지로 쓰러뜨리는 짓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겠지. 그녀를 물건 취급하지 않도록 조심해왔지만, 실상은 이렇다고 생각되어버린다.

그녀는 책상 구석을 손톱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왜 그런 짓을 했냐는 물음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말하자면, 참다못해 하반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심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가능한 한 솔직하게 대답했을 생각이지만, 그녀는 불만스러워 보였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냐고 묻고 싶은 거겠지. 물론 아니지만, 그런 말조차 얄팍하다. 이럴 때 필요한 말을 뱉지 못하는 것이 내 결점이 아닐까. 자각한다고 어떻게 되는 성질이 아니다.

무거운 한숨의 모양이 보일 정도였다. 그걸 신호로 그녀는 책상에 양손을 짚으며 일어섰다. 정나미가 떨어졌나 싶었지만, 냉장고에서 롤케이크를 꺼내온다. 편의점산이다. 얼른 먹고 욕실에 들어가자, 라며. 갑자기 기분이 나아진 것 같은데, 뭐가 뭔지.

통과의례를 지나서 드디어 욕실에 도착했다. 욕실 의자에 허리를 걸쳐 두근거리며 기다리자, 옷을 벗은 그녀가 들어와 무릎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엉덩이에 짓눌린 탓에 물건이 아프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소프 플레이라고 하면 몸을 씻겨주는 게 아닌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어보자, 그녀도 무슨 일인가 하고 되돌아본다. 그렇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소프로 무슨 일을 하면 되는지 몰랐다. 애초에 소프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당연한 일을 잊고 있었다.

전라로 마주 보며 풍속에 대해 강의하는 그림도 우습다. 우습지만, 하는 수 없다. 세상에는 돈을 내면 이런저런 야한 일을 해주는 곳이 있다. 본방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입으로 해주거나, 손으로만 하거나, 혹은 가슴만 만지게 해주는 곳도 있다.

그중에 소프라는 것이 있어서, 거기서는 남자의 몸을 씻겨준다, 하고 설명했다. 나 자신도 경험이 없는 데다, 대학이나 직장의 음담에서도 거리를 두어왔다. 주워들은 지식밖에 없으니,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 평소랑 반대라는 뜻인가, 하고 되묻는다. 생각해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난 항상 그녀에게 소프 플레이를 해왔다는 말인가. 그렇게 들으니 외설스러운데, 딱히 야한 일을 했다는 느낌이 없다. 혼자 목욕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봤을 뿐이니, 보살핌이라 보는 게 더 가깝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완벽히 이해했다는 양 기세 좋게 일어나더니, 그녀가 등 뒤로 돌아온다. 왠지 모르겠는데, 무척 불안하다. 귀 청소도 그랬지만, 그녀는 아무래도 거칠다. 여자아이면서 적당하다고 할까, 무척 서투르다. 귀만큼 섬세한 일은 아니니 안전하겠지만.

반대라고 말했기 때문이겠지. 그녀는 우선 머리부터 씻겨줄 생각인 모양이다. 손에 산더미처럼 샴푸를 뿌려대더니, 곧바로 내 머리를 콱 붙잡았다. 많아야 두 번 정도 누르면 충분하고, 먼저 손바닥으로 거품을 낸 다음 머리에 묻혀주면 좋겠다만.

평소 같으면, 여기서 불만을 느끼더라도 그녀의 자주성에 맡겨왔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내가 포인트를 내고, 그녀가 답해주는 입장에 있다. 답답함을 느낄 바에야 그녀에게 확실하게 말해줘야 한다.

그래서, 머리를 씻는 순서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해주었다. 오늘은 괜찮지만, 다음 기회가 있다면 순서를 지키도록 다짐한다. 의외로 그녀는 쉽게 수긍했다. 네네, 하고 가볍기는 했지만, 기분이 나빠지거나 무시하는 일은 없었다.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한가. 나는 너무 사양해온 건지도 모르겠다.

별로 능숙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머리를 씻겨주면 기분이 좋다. 자극은 별 차이가 없을 터인데, 부드럽고 따스한 감정이 벅차오른다. 이것만으로도 부탁한 보람이 있었다. 손님, 가려운 곳은 없으신가요, 하는 흔한 대사도 말해온다. 이건 내가 평소에 하는 말을 따라 했겠지.

그녀는 이발소는커녕, 미용실에조차 가본 적이 없다. 머리는 계속 길러왔고, 끝머리를 정리하는 정도밖에 한 적이 없다. 익숙한 대사도 그녀에게는 익숙하지 않겠지. 함께 살거나 이어진다는 것은 의외로 이런 사소한 말의 구석구석에 남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