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10화
여유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뒹굴어보기는 했는데, 점차 더위를 참을 수 없어졌다. 애초에 더위 때문에 잠이 깼으니 가만히 있기도 괴로울 정도다. 그녀와 달라붙은 채로 몸을 일으켜보자, 햇살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한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가 넘어있었다. 꽤 오랜 시간 잠이 든 것이다.
시간을 알자,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피크닉이라며 기대하던 그녀를 위한 도시락도 지참해왔다. 금방 상할만한 재료는 피했을 생각이지만, 땡볕 아래에 내버려 둔 채다. 냄새를 맡아보면 알겠지만, 혹시 전멸했다면 상점가로 돌아가서 사는 수밖에.
이번에는 그녀가 해보고 싶다기에 노를 건넨다. 그녀에게는 무겁겠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다. 힘들면 넘기도록 말하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탈 때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몇몇 커플이 노를 젓고 있다.
어디건 젓는 건 남자 쪽이다. 손이 심심해서 두리번거리는 건 나뿐이다. 그녀의 부탁을 들어줬을 뿐인데, 어쩐지 뻘쭘하다. 거기에 커플들은 눈이 마주치면 당황스러운 느낌으로 눈을 돌린다. 내 뒤에 뭐라도 있나.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그녀가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의문을 부딪치자 대답을 알려주었다. 내가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보트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옆을 지나간 배도 있었고, 같은 물 위에 있으니 배 안쪽이 보였을 수도 있었겠지, 하고.
요컨대, 내 위에서 잠든 그녀를 본 사람이 있다. 어쩌면 그다음에 키스하는 모습도 봤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자신의 밀회를 제쳐두고 신고할 정도로 정의감을 가진 자는 없었던 모양이지만. 역시 사람의 눈이 닿는 장소에서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은가 보다.
반성 또 반성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다. 곤란하게도. 화창한 날씨의 외출에 들떴는지, 그녀는 연안에 닿기까지 몇 번이고 키스를 졸라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자꾸만 호소한다. 그녀에게 사람들 이목이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걸까.
노인은 짜증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주변에도 몇조의 커플이 있는 걸 보니 기다리게 했겠지. 시간제이니 누구에게 빌려주건 수익은 변함없다. 평판에 관계되는지, 혹은 가시방석에서 기다리는 게 고통이었을 지도 모른다. 딱히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이런 날을 위해서 사 온 레저 시트를 펼쳐 늦은 점심을 먹는다. 파스텔조의 청색과 녹색이 시원하다. 좋게도 나쁘게도 여자다운 성격인 그녀지만, 색깔의 취향은 남자아이 같다. 꽃무늬에 앉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 불만은 없다. 나 혼자였다면 시트 같은 건 깔지도 않고 앉았겠지만.
장소가 바뀌면 아무렇지 않은 대화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중학교에서는 교과마다 교사가 바뀐다, 체육 수업도 남녀가 따로고, 시험 기간도 미리 정해져 있다. 학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저씨한테 가르쳐주고 있다, 라는 말투다. 나도 젊었을 때가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일까.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그녀도 영어와 수학이 서투르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약간은 배우지만, 본격적인 수업은 중학교부터다. 좋은지 나쁜지, 초등학교 영어는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수 있게 가르친다. 하지만 중학교에서는 일변해서 문법을 익혀 문장을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치게 된다. 대학 수험을 기준으로 체계화되어 있으니 단계를 걸쳐 복잡해지고, 실용적이지 않게 된다.
나는 어느 쪽이냐면, 실용적인 영어보다는 복잡한 영어가 자신 있다. 말은 전혀 할 줄 몰라도 해외의 데이터 시트를 읽을 수 있고, 수학도 *수3 정도라면 가르칠 수 있다. 아무튼, 그녀가 바라는 것을 주는 동안은 필요로 해주겠지.
돌아가면 예습복습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매우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게 가르치는 시간은 기쁨이지만, 그녀에게는 고통이겠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일이지만, 아무리 공부를 가르쳐도 점수표의 포인트를 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보다 먼저 다 먹고는 지갑을 찾아본다. 그냥 포인트라고 해서는 얼마나 가졌는지 잊어버린다. 그래서 현금을 점수표 대신으로 세기로 했다. 오늘은 내 부탁으로 보트를 타러 왔으니 먼저 점수를 지불했다. 한편으로 그녀도 데이트 제안이 기뻤는지, 점수를 받기도 했다.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는 데 분주했던 덕분에 여유가 있다. 조금만 걸어보면 인기척이 없는 장소는 얼마든지 있다. 사람도 많지만, 그 이상으로 토지가 넓다. 제대로 관리도 하지 않은 탓에 시야를 차단하는 나무들도 잔뜩 있다. 침을 삼킨다. 안일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조금 전에 생각했던 참이 아닌가.
먼저 그녀에게 물어보고, 거절했을 때 멈추면 된다. 거절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계속하면 된다. 비겁한 결론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내 부탁을 그녀가 거절한 적은 없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보트 위에서 키스를 조르는 아이가 이목을 피해서 만나기를 거부할 리가 없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미분 적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