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13화
푸념
오늘은 몇 시에 돌아오는가, 하고 질문받았다. 나갈 때마다 있는 일로, 돌려줄 말도 정해져 있다. 여덟 시 정도다. 잔업도 하지 않고 곧장 돌아올 수 있다면 일곱 시 넘어서는 집에 도착한다. 조금이라도 잔업을 해버리면 결국 여덟 시 반은 되어버린다. 잔업이란 사전에 알 수 없는 법이니 애매하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그녀가 눈썹을 찌푸린다. 정도면 모르니까 확실하게 하라면서. 또인가. 내심 한숨을 쉰다. 뭐든 몸 탓을 하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짜증을 발산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럼 여덟 시, 라고 단언하는 것도 좋지 않다. 조금이라도 이르면 요리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고 초조해하고, 늦으면 늦은 대로 모처럼 만든 요리가 식어버렸다고 화내기 때문이다. 넉넉하게 대답하고 일찍 도착하면 시간을 조정해본 적도 있는데, 허무하기 이를 데가 없다.
편의점에서 시계를 보며 앞으로 오 분만 지나면 나가자는 생각을 한다. 오 분이 아까운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오 분은 무엇을 위한 오 분인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간이다. 그 오 분을 아끼고 싶어서 일찍 회사를 나온 것이 아니던가.
여름이 되어 개가 털갈이를 하듯, 그녀의 아이답고 사랑스러운 부분이 나날이 사라져간다. 대신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부분이 형태를 만들어간다. 곤란하게도 여성스러움이란 번거로움과도 같다. 특히 계속 혼자 살아왔던 나 같은 남자에게는 괴롭다.
예전에는 그녀도 좀 더 솔직했다. 여덟 시건 아홉 시건 기다려주었고, 불평 하나라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 시절에도 하고 싶은 말은 있었겠지만 말하지 않아 주었다. 사양이 없어졌다는 의미로는 좋을지도 모르겠으나, 이렇게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로 책망당하는 건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상에는 귀가공포증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 것도 같다. 집에 돌아오는 것이 싫어진 건 아니나, 마음이 무거울 때는 있다. 오늘 아침처럼 눈에 띄게 기분이 나쁜 날은 더욱 그렇다.
점심시간, 드물게도 후배가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가방에서 작은 꾸러미를 꺼내서 넓힌다. 도시락이다. 나도 그녀의 수제 도시락이 있으니 가게를 차렸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이유 없이 쓴웃음을 짓는다.
몇 개월 전, 후배는 결국 결혼을 결심했다. 별로 요리가 능숙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공부해서 결국 도시락까지 만들어주게 되었다고. 시제품 시험대지만요, 하고 웃고 있지만 기쁘지 않을 리는 없으리라.
남자들 대부분은 바깥으로 먹으러 간다. 여성진은 신기하게도 모여서 먹는 습성이 있으니 회의실을 사용하고 있다. 대각선 앞쪽에 앉아 한마디씩 주고받는다. 일의 진척을 푸념을 섞어 말해보고, 취미에 대한 화제를 꺼내보고. 대화가 흥하는 건 아니라도 나쁘지 않다.
문득 도시락을 만들어준 아내 이야기가 되었다. 후배도 이래저래 생각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변기 커버를 올려두었다는 이유로 혼이 났다거나, 식기에 젓가락을 올렸더니 예의가 없다고 매도를 당했다거나. 결혼 전에 동거하지는 않았던 것 같으니 서로에 대한 불만이 분출되고 있다.
이전까지의 나였다면 가볍게 흘려듣고 말았겠지. 남 일이기도 하고 가정의 푸념은 자랑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같은 입장인 지금이라면 자랑이기도 하고 푸념이기도 한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다.
사소한 제안이지만, 젓가락 받침을 사러 가보는 게 좋다. 여자는 의외로 작은 물건을 좋아한다. 남자 혼자서는 생각도 하지 않을 법한, 필요 없어 보이기까지 한 물건을 좋아하는 것이다. 티슈 같은 건 그냥 놔두면 되는데, 우리 집에도 그녀 수제의 커버가 달려있다. 접시 위가 싫더라도 젓가락 받침이라면 상관없겠지.
겸사겸사는 아니지만, 나도 그녀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몇 시에 돌아오는지 마는지로 언쟁이 된다고. 후배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일과 가정, 어느 쪽이 중요하냐는 자주 듣는 이야기의 변형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후배는 아침과는 별도로 회사를 나올 때 일단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귀가 시간이 조금 어긋나더라도 미리 연락을 해두면 혼나지는 않는다는 모양이다. 확실히 신혼 가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질투를 느끼고는 했는데, 그건 애정이 아니라 위기 회피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는 말인가.
곧바로 돌아갈 때 주륜장에서 집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몇 번 정도 통화음이 울린 다음 그녀가 나왔다. 통화 너머기도 하고, 대외용 목소리기도 해서 약간 다른 사람처럼 들린다.
이제부터 돌아가니 저녁 준비를 잘 부탁한다, 하고 말하자 침묵이 돌아왔다. 잠시 지나 자전거로 집까지 몇 분 정도 걸리는가, 하고 질문이 돌아왔다. 대충 한 시간이 안 될 정도인가. 잘 모르겠다. 몇 시쯤 도착하는지를 오늘은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이제부터 매일 전화할 건지 질문받았다. 그걸 바란다면, 이라기보다, 이게 효과가 있다면 하겠지. 생각한 그대로 입에 내놓아서는 우유부단하지 싶어서 할 거야, 하고 돌려주었다. 그럼 지금부터 시간을 재면 내일부터는 알 수 있겠네, 하고 웃고 있다.
돌아가고 싶다, 얼굴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그렇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