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224화 (224/450)

8년 14화

기장

저녁 식사를 마치고 느긋한 기분에 잠겨있을 때였다. 일단 방으로 돌아갔던 그녀가 교복을 입고 나타났다. 아침은 교복, 귀가 후에 갈아입고 저녁을 만들어 먹고 지금 다시 교복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상당히 바빠 보이는데, 귀찮지 않은 걸까.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스커트 길이에 관한 상담이었다. 학교에서 스커트를 짧게 개조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지만, 예나 지금이나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남의 스커트를 응시하지도 않고, 몇 센티 차이는 봐도 잘 모른다.

애초에 개조란 뭘 하는 걸까. 옷감을 잘라버리면 돌이킬 수 없다. 나쁜 말은 하지 않을 테니 그대로 두는 게 어떠냐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교복을 개조하는 건 옷감을 접을 뿐이지 자르거나 꿰매지 않는다고. 그런 건 상식이잖아, 라고 말해도 그건 여자의 상식이겠지.

무릎 위로 몇 센티가 좋은가, 이건 너무 긴가. 그런 이야기를 자꾸만 건네져도 돌려줄 말이 없다. 중요한 일은 비밀로 하면서 사소하고 대답하기 어려운 상담만 한다. 소홀하게 여기지 않는 증거라고 기뻐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수치로 말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결국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여달라, 하고. 조금 꺼리는 듯했으나, 그녀는 절대 이런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 패션쇼 같은 걸 할 정도이니 보여지고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우물쭈물하는 건 조금 더 등을 밀어달라는 신호다.

실제로 교복 차림을 보는 시간은 무척 적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정도로, 그것도 바쁜 아침의 잡다한 일들에 쫓겨서 느긋하게 볼 여유가 없다. 처음 소매를 통했을 때 피로연을 해주었으니 그걸로 만족했던 거겠지. 새삼스럽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저씨라서 스커트 길이는 보지 않으면 모른다. 귀여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반대로 너무 짧게 해도, 안이 보여버려도 곤란하다, 하고. 뭐가 곤란하냐고 물어봐도 그것 또한 곤란하지만. 내 것을 남에게 보여지는 건 싫다는 뜻인데, 물건 취급하는 것 같아서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실컷 재촉하기에 자기도 팬티가 보이면 곤란하면서, 라고 돌려주었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안에는 스패츠를 입으니 보여져도 곤란하지 않다고 말해온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건 남자라는 생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보이는 게 무엇인지는 남자에겐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게 팬티건 스패츠건 달라지지 않는다. 하늘하늘한 스커트 아래에 숨겨진 것이 보인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팬티건 스패츠건 옷감이 한 장인가 두 장인가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한 상식을 늘어놓았을 생각이었으나, 그녀는 구제 불능의 중년이라도 보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의심스럽다면 반의 남자에게도 물어봐 줬으면 좋겠지만, 그녀가 치녀 취급을 당해버린다.

한바탕 말썽은 있었지만, 스커트 길이에 대한 검토는 계속되었다. 일단은 그대로 손을 대지 않은 경우다. 무릎에서 주먹 하나 위 정도인가. 충분하지 않은가 싶지만, 이래서는 불만스럽겠지. 요컨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서 싫을 뿐인 게 아닐까.

거기서 일 센티씩 길이가 짧아져 간다. 조금씩, 점점 선정적으로 변한다. 이걸 귀엽다고 부르니, 여성이 생각하는 건 잘 모르겠다.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속옷이 보일 정도다. 이건 아무리 그래도 조심성이 없겠지.

블레이저는 잘 정돈 하기만 하면 척 봐도 성실해 보인다. 그런 옷이다. 세라복의 화려함과는 다르다. 그녀의 스타일도 머리가 길고 곧게 뻗어있다. 쭉 뻗은 등줄기와 옅은 입술도 단정한 이미지를 강하게 하고 있다. 거기에 스커트 길이만 짧다는 건 어떠한가.

아니, 다르다. 결국 난 그녀가 여자로서 보이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이만큼 사랑스러우면 호의를 받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건 그저 사랑스러운 소녀로서 였으면 한다. 여자로서 치장한 모습을 보이는 건 오직 내게만 해줬으면 좋겠다.

여자는 여자끼리 멋 부리기를 즐기지, 남자가 좋아하고 말고는 상관없다고 한다.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그 가치관의 근본은 이성의 시선을 포함하고 있다. 스커트가 남성의 욕망인 이상, 그 평가가 여성 친구에게 좌우된다고 해도 결국은 아양이다.

그러나, 그런 내 욕망을 직접적으로 부딪힌다는 것은 그녀를 새장에 가두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녀에게는 멋 내기를 즐길 자유가 있으며, 내게 질문하는 것도 허가를 받으러 오는 게 아니다. 알고 지내는 사람으로서 가장 어울리는 모습을 가르쳐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하며 어드바이스를 해본다. 가능한 한 순수하게, 솔직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한 길이를 전한다. 응응, 하고 수긍하는 그녀를 복잡한 기분을 담아 넘겨본다. 그런 데만 쳐다보면 안 돼, 라는 말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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