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225화 (225/450)

8년 15화

크림

목욕을 마치고는 그녀가 낯선 크림을 볼에 바르고 있다. 무엇인지 물어봤지만, 그냥 약이라고 한다. 약에 그냥이고 뭐고가 있나. 잘 모르는 물건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살 빼는 약이라면서 마약이 돌아다니는 일도 있으니.

계속해서 질문했더니 시끄럽다며 방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내가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거치는 수밖에 없다. 곤란할 때 의지할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 누나에게 메일을 보내고 물어봐 주도록 부탁해두었다.

그녀에 한해서 이상한 물건에는 손대지 않을 터다. 성실하고 착한 아이로 자라주었다. 그렇게 믿고 있다. 하지만 그녀도 아직은 어린아이다. 친구에게 이상한 물건을 넘겨받았을 때 확실하게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무슨 일이 생기고 나서는 늦다.

초조한 날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누나에게서 연락이 있었다. 누나가 이르기를 제대로 된 병원에서 진찰하고 받은 약이니,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한다. 안심이 되는지 물어보기에, 고개를 흔들었다. 전화 너머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병원의 진찰이라는 말이 벌써 두렵다. 의사가 필요할 정도의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학교에 다니기만 하는데 그런 위험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그림은, 눈매가 사나운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당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소름이 끼친다.

수화기 너머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어이없어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런 바보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아무래도 얼굴에 뭐가 자꾸 나서 낫지 않는 모양이다. 여드름이 생길 나이대다. 매일밤마다 얼굴을 씻으며 청결을 유지하고, 그래도 낫지 않으니 피부과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나.

그 정도 일이라면 얼른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면 좋을 것을. 왜 그렇게까지 숨기려 했을까. 걱정한 만큼 짜증도 난다. 하지만 내가 누나를 이용해서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다는 걸 들키면 큰일이다. 별일 없었으니 좋았다고 생각해야겠지.

일단 감사를 표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여드름 같은 게 있었던가. 있었던 것도 같고, 없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본 적은 없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요는 본인이 신경 쓸 정도로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도 고등학교 정도에 여드름이 생겨서 얼굴이 석류처럼 되고는 했다. 피부과에 데려가진 기억도 있다. 그때 의사는 뭐라고 했었던가. 신경 쓰이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만지면 안 된다. 터지거나 병균이 생길 수도 있으니 내버려 두라고 하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니, 난 그녀의 뺨을 자주 만지고 있었다. 찰떡같은 촉감이 기분 좋고, 키스하기에도 알기 쉬운 신호다. 그녀도 고양이처럼 볼을 기대어 내 가슴이나 어딘가에 문지르고는 했다. 그런 행동이 좋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내게도 책임이 있다.

그래서 조금 접하는 방식을 바꿔보았다. 뺨을 만지고 싶을 때는 어깨로 바꾼다. 그녀가 다가올 때도 가능한 한 몸에 닿지 않도록 해본다. 자극을 줄이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여드름 대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로, 이틀 만에 완전히 눈치를 채고 말았다. 뭐가 하고 싶냐고 올려다보며 물어보면 거짓말도 할 수 없다. 피부과까지 가서 여드름 예방을 하고 있다기에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려고, 라고 말하자 눈썹을 팔(八)자로 그러모았다.

그렇게 만져줬으면 하는지 물어보자, 엄지와 검지를 집으며 조금, 하고 대답한다. 이런 몸짓은 어디에서 배운 건지. 묘하게 낡은 티가 나지만 잘 어울렸다. 평소엔 가지런한 얼굴이 어린 느낌을 더한다. 그리움이 마음 깊은 곳을 자극한다.

뺨에 닿지 못해서 외롭다고 느끼는 건 거리가 생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 크게 맞닿아보면 그녀의 불안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뺨 대신에 어깨를 잡는 것이 아니라 더 다른 곳으로 해본다. 귀는 어떨까.

이건 진지하게 했을 생각인데, 그녀가 웃어버려서 이야기도 되지 않았다. 귀가 안 된다면 그 뒤는 어떨까. 와인 글래스라도 쥐듯 그녀의 아래턱을 양손으로 감싸본다. 이쪽은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단지 들어 올리는 것 같아서 조금 불편하다고.

내 손은 크고 그녀는 작다. 한 손으로도 충분히 그녀의 머리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다. 오른손으로 뒷머리를, 왼손으로 허리를 지지해본다. 반쯤 끌어안는 것처럼 키스한다. 이건 푹 빠졌다.

정면이 아니라 십자로 입을 맞추는 듯한 형태가 좋다. 그녀가 위아래의 입술로 내 뺨을 깨물고, 나는 그 아랫입술이나 턱을 혀로 핥는다. 자세 탓도 있어서 타액이 흘러내려 옷을 더럽혀갔다.

살며시 허리를 쓰다듬거나 머리를 빗을 때마다 그녀에게서 침이 잔뜩 흘러들어온다. 그녀의 양손은 내 가슴에 닿아 손톱을 세웠다. 숨을 거칠게 내쉬고는 손끝에 힘을 담는다. 끝이 없고,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뺨이 닿지 않도록 한다는 제한이 어째선지 그녀의 정열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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