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16화
만화
왜 집어던지는가.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어느 만화의 단편집을 읽었을 때였다. 연애를 테마로 한 작품으로, 이러한 단행본에는 반드시 한 권 정도 바람기나 불륜을 내용으로 한 것이 들어있다.
난 도무지 바람기라는 걸 용서할 수 없다. 싫은 추억이 있는 건 아니다. 아마도 싫은 추억 하나조차도 없기 때문이겠지. 양친도 누나도 불건전한 연애에 빠진 적은 없었다. 나는 어떠냐면, 애초에 누군가와 교제를 해본 적이 없다.
남의 것이라는 말투는 불손할지도 모르겠지만. 남의 것에 손을 대거나, 혹은 연인이나 가정이 있으면서도 다른 곳에 손을 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것을 단 한 번이라도 저지른 인간을 허용할 수 없다. 친구가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연을 끊으리라.
요컨대, 경험이 없기에 어린아이처럼 결벽한 것이겠지. 현실의 연애라는 걸 해보지 않았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이란 것을 안은 적이 없다. 안은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데,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싫은 것 같다. 그러니까 안심하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일방적이라고 할까, 남자답지 못하다. 혹은 다른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면 끝장이라고 협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를 사랑하고 놓치고 싶지 않다. 단지, 그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서 이 관계를 끝내고 싶다고 한다면. 난 깔끔하게 손을 떼고,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을 만한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견뎌야만 한다.
별일 아니다. 대답하고는 책상에 내던진 책을 다시 집었다. 페이지를 넘겨보자, 바람을 피우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온다. 한때의 꿈이었다, 라고 끝마쳐져 있다. 깔끔하게 꾸민다 한들 마음은 이미 떠나있다. 망가진 것이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뿐인 것을.
착잡한 표정을 숨겼을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만화를 가져가 버렸다. 흐응, 하고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그대로 계속 읽으니 손이 심심하다. 방으로 돌아가 입가심으로 소설을 가져왔다. 가을은 아니더라도 독서하기 좋은 밤이니까.
독서에 잠기면 시간이 지나간다. 정신이 드니 열 한시를 돌고 있었다. 내일 업무에 지장이 생기고, 그녀도 벌써 자야 하는 시간이다. 아이 취급하지 말라고는 해도 잠을 잘 자야 성장한다. 책갈피를 끼우고 문고를 닫는다. 그 소리를 신호로 그녀도 만화를 둔다.
한 이불에 들어가니 그녀가 속삭인다. 왜 화내고 그래, 하고. 화가 난 건 아니다. 자주 착각당하는데, 난 화를 잘 내지 않는다. 화내지 않는다기보다 화를 낼 수 없는 것이다. 짜증이 나더라도 있어도 금방 잊어버린다. 타인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가 머리를 문질러온다. 뒷머리가 턱이나 목에 닿아 간지럽다. 내 양팔을 붙잡고는 자기 배에 감는데, 거의 모포나 이불 대신이다. 샴푸 향기가 코를 습격한다. 좋은 냄새기는 하지만 어딘가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다.
한번 맞춰볼까, 하고 몇 가지 만화의 에피소드를 언급한다. 이거 때문에 화났을 거라고 말하는데, 전혀 맞지 않았다. 그건 불량배가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거나 등장인물이 험담을 하는 부분이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렇게 생각하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화가 나지 않았으니, 이거라고 한들 그렇다고 답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결국 더는 떠오르지 않자 그녀가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포기한 것도 아니다. 뭐야뭐야 하고 계속 소란을 피우고는 좀처럼 잠들 기색이 없다.
끈기에 밀려서 난 바람기나 불륜 같은 이야기를 싫어한다, 하고 고백했다. 말로 표현해보니 정말 그것뿐인 이야기라서 곤란하다. 그녀도 잘 이해할 수 없는지 잠시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족하고 잠들었나 싶었을 때 겨우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만화 속 이야기일 뿐인데 그걸로 화가 나는가, 하고. 별로 화가 난 건 아니지만. 그게 만화든 현실의 이야기든 싫은 건 싫다. 싫어하는 걸 읽고 기분이 좋지 않아지는 건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녀가 내 손을 잡고 가볍게 깨문다. 자기 전에 더러워지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한 이후로 그녀는 장난칠 때 깨물거나 물고는 하게 되었다. 침은 안 묻었잖아, 하고 우기는데 실제로는 끈적끈적하다. 정말 어쩔 수 없다만.
깨물거리며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는 돌봐줄 테니까 안심해, 하고 미소짓고 있었다. 자기야말로 보호자라는 말투가 재미있다. 할아버지가 되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버려지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빠른 편이 좋다.
꼭 그렇게 말꼬리를 잡는다니까, 하고 화낸다. 그런 그녀 쪽이 훨씬 자주 화를 낸다. 성마른 사람일수록 남이 화가 났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런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