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227화 (227/450)

8년 17화

정자

자못 빅 뉴스라는 양 그녀가 보고한다. 정자는 며칠 내보내지 않으면 진해진다고. 어안이 벙벙해서 멍해진 날 보더니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별로 관심 없었구나, 하면서 시무룩해 있다.

평범하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건 남자가 더 잘 안다. 그녀가 온 이후로는 비어봐야 이틀, 거의 하루 걸러서는 내놓고 있다. 별로 진하지 않은 건 분명하지만, 아주 묽을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 빈도인데 묽지 않으니 정력은 동년대 남자보다 강한 편이겠지.

눈을 반짝이고 있으니 일단은 물어보았다. 그럼 며칠 하지 말아볼까. 크게 수긍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쓸쓸하다. 이 나이가 되어 이상하다는 걸 자각하고 멀어지려는 구실로 들렸기 때문이다. 이건 피해망상이겠지만, 젊을 때의 무조건적인 자신감은 이제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다음 날 아침,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어떠냐며 질문을 던진다. 어떠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애초에 뭘 물어보는지를 잘 모르겠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진해졌느냐며 다시 묻는다.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적당히 얼버무려서 이야기를 끝낸다.

퇴근하고 나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지만, 빼고 난지 단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즉, 평소보다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상태로 진하고 묽고가 어디 있나. 공부는 가르쳐서 어느 정도 하게 되었으나, 이 아이는 별로 똑똑해지지 않았다.

이틀하고 사흘이 지날수록 공세가 거세진다. 궁금해져서 물어본다. 진한지 아닌지를 본인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그녀는 모르는 거냐며 놀라고 있었다. 소변을 보고 싶을 땐 알 수 있으니, 그런 것도 알 수 있는 줄 알았다고.

소변도 정자도 같은 곳에서 나오기는 하나, 같이 나오는 건 아니다. 설사 나왔다고 해도 진한지 어떤지를 알 리가 없다. 그저 쌓였다는 느낌만은 알 수 있다. 여성의 사소한 몸짓에 두근거리거나 반응해버린다. 과민해진다.

참고로 이건 그녀가 제안한 일이다. 이 주 정도 멈춰보자면서 말이다. 원래 같으면 일주일에 입으로 네다섯 번, 끝까지도 두세 번은 한다. 이걸 진하게 해보겠다는 이유로 중단하자는 걸 따라주고 있다. 내 권리를 사용할 수 없으니 포인트도 따로 받고 있다.

이 주나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포인트를 사용해서 뭘 해볼까, 하고 무던히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하기를 확인해야 하므로 처음 한 번은 입으로 해주는 것이 결정되어있다. 본방은 콘돔을 사용하므로 진하건 묽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지, 모처럼이니 애완 플레이는 어떨까.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에 빨간 목걸이를 달고 밤의 산책이라는 것도 최고로 귀여우리라. 주말이 시작되니 차라리 하루 내내 넣은 그대로 생활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건 변명이지만, 이 주나 빼지 않으면 머리가 바짝 타들어 간다. 이상한 일이 떠오르기도 하는 법이다.

그녀에게 너무 부담가지 않으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이다. 헤맨 끝에 나온 결론은 소프트 SM이었다. SM이라고 해도 양 손발을 묶고 눈을 가릴 뿐이다. 끈은 아프기도 할 테고 자국이 남는다. 막 꺼낸 부드러운 수건을 사용하도록 하자. 이 정도가 딱 좋다.

그녀에게 물어보니 아주 쉽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그녀를 다치게 한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겠지. 신뢰의 증거라고 생각해두자. 특별하게 무언가를 사지 않아도 되니까, 하고 기쁜 듯 말했던 건 잊어버리자.

마지막 삼일 정도는 망상만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맴돌았다. 그녀가 턱을 오른 아래로 움직이면 이렇게 하자. 물고기처럼 몸을 꼬면 저렇게 하자. 비슷하면서도 세세하게는 다른 모습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한다.

금요일. 저녁은 거의 긁어 담다시피 끝마쳤다. 맛을 느낄 틈도 없이 오직 그릇만을 비운다. 그렇게까지 흥이 오른 건 나뿐이고, 그녀는 평소처럼 느긋하고 조용하게 먹고 있다. 맞은편에서 가만히 먹는 모습을 바라봤더니 정신 사납다고 혼이 났다.

모처럼이니 욕실에서 하자는 그녀를 말려서 겨드랑이에 끼고 방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물건은 수건이 세 개, 이미 준비를 마쳤다. 데님 셔츠에 속옷과 양말까지 모두 벗기고 수건을 감긴다. 나신의 하얀 천이 무척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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