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20화
중간고사
시험지를 보면 다양한 재미있는 일을 알 수 있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벌써 재미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시험지는 인쇄소에서 찍었을 고급 용지로 만들어지며, 몇 색 인쇄인지는 몰라도 다채로운 색깔이 사용된다.
일러스트나 문자도 그렇다. 아마추어 솜씨로는 있을 수 없는, 아마도 수많은 검토가 이루어졌을 일러스트가 다수 실린다. 타이틀과 표제, 본문의 글자체도 서로 다르다. 요컨대, 많은 어른이 모여 기획 개발에 참여했음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내가 낮에 하는 것과 비슷하고도 다른 일이다. 학교의 시험이란, 어딘가의 누군가가 회의실에서 만들어내는 거니까. 당시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일이지만, 지금은 잘 알 수 있다. 집과 회사를 왕복하는 생활에서는 보이지 않는 바깥세상이다. 아무래도 잘 만들었는지는 문외한에겐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일 학기 중간고사. 그녀가 가지고 돌아온 것을 보니 또 다른 그리움을 느낀다. 요즘은 어디서도 볼 수 없을 듯한 갱지. 까슬까슬해서 손가락에 잘 달라붙는다. 손가락 살이 빠지기 시작한 내겐 넘기기 쉬워서 마음에 들지만, 척 봐도 싸구려 같은 느낌이 든다.
들어 올려보니 모래 같은 냄새가 난다. 이들 하나하나가 그리워서 두근두근하다. 그 기대감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말하자면, 이제는 절대 지나가지 않게 된 길을 지나는, 자주 다니던 구멍가게 앞을 지나갈 때의 느낌에 가깝다.
손에 들지 않아도 점수는 알 수 있다. 팔십에서 구십 중반까지 다양하다. 그녀는 내 제자라고 해도 좋다. 그런 그녀의 고득점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중학교의, 그것도 일학년 처음 시험은 몇 점이던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만. 나쁜 것보다는 좋은 편이 낫겠지.
하지만, 뭐라고 할까. 칭찬한다는 건 의외로 어렵다. 잘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난 그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평가하는 것만 같아서 석연치 않다. 장하다는 말도 똑같다. 그게 장한 일인지는 그녀 자신이 정할 일이다.
망설인 끝에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쁜가, 하고 물어보니 수긍하기에 잘 됐구나, 하고만 돌려주었다. 무엇이든 해주고 싶지만, 그것도 교육적으로 좋지 않겠지. 물건이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공부하는 게 아니다. 미리 그녀가 말을 꺼낸다면 얼마든지 해주겠으나, 내 쪽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너무 깊게 생각한다. 당연한 일을 하지 못한다. 그게 내 단점이기는 하겠지. 예전부터 들어온 말이다. 들어왔으면서도 여전히 고치지 못한다. 적당히 칭찬해주면 된다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속삭이는데, 그걸 할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녀가 노력해서 그녀가 쟁취한 것을 타인인 내가 참견할 자격은 없다. 그녀의 기쁨과 내 기쁨은 이어져 있지 않다. 축하할 도리는 있어도 평가할 이유가 없다. 결국 머리를 쓰다듬는 정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이다.
답안을 살펴보니 틀린 문항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렇게 말하기는 뭐하지만, 간단한 미스가 많다. 계산하는 도중에 필산으로 반올림을 잊어버린다. 다음 식으로 옮길 때 계승되는 숫자를 틀린다. 영어도 비슷하게 대쉬(-)를 빼먹거나 사소한 스펠링 미스가 있다.
평소 모습만을 보면 딱히 주의산만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재검토는 잘 하고 있는 건가. 물어보니 싫은 표정을 짓는다. 검토는 딱히 하든 안 하든 똑같다, 라는 것이다. 실수가 없으면 시간 낭비고, 실수가 있더라도 쓴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다고.
무심코 납득해버릴 만한 논리기는 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자주 입에 담았던 말이기 때문이다. 나도 직장에서 자주 제출할 서류를 틀려서 총무에 호출당하고는 한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낫다, 하고 한잔하면서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어린 그녀의 마음에 새겨버리고 말았겠지.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건 완전히 잊은 채, 그녀는 자못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의 억지스러운 말을 타인에게서 들어보니 참 견디기 어려운 기분이다. 이상한 부분만 닮게 해버렸다. 이런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교사는 큰일이겠지.
계속해서 넘겨보니 여백에 낙서가 채워진 부분도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도 검토가 아니라 이런 일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지 모를 인물화나 캐릭터도 있고, 문자가 이어지는 부분도 있다.
어디 한 번, 하고 눈여겨보니 그녀가 얼른 뺏어가 버린다. 그런 곳은 읽지 않아도 된다고 돌려주지 않는다. 일기 같은 건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시험지로서 교사에게도 건네졌을 터다. 그건 부끄럽지 않은 걸까.
어찌 됐든, 그녀는 중학교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공부만 하면 되는 건 아니지만, 공부도 하지 못하면서 학교에 다니기는 괴롭겠지. 우수한 성적이었던 건 생각 밖이기도 해서, 이 성적이라면 일단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