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21화
아이스크림
목욕하고 나오면 겨울이라도 덥다. 한참 자전거를 타서 몸이 달아오르기도 했겠지. 누구랑 같이 욕실에 들어가니 시간이 배는 걸리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과연 선풍기를 켜기는 바보 같으니 뻗어있는 수밖에.
작년에 산 좌의자에 앉아 적당히 책을 읽는다. 뒤에서 그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저기, 하고. 이어지는 말이 있는지 기다려봐도 그녀는 저기, 라고 반복한다. 무슨 일인지 되물어도 고양이처럼 같은 말을 한다. 끈기라도 겨루자는 건 아니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을 향한다. 그녀는 냉장고 서랍을 열더니 자연스럽게 얼굴을 들이민다. 아이스크림이 없는데, 하고 드디어 말을 바꾸었다. 몇 번을 보고 열고 닫아봐도 없는 건 없다. 마법의 상자가 아니니까.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포기하면 된다. 오늘 하루 먹지 않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라고 해도 들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애초에 내 말 따위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으로 흘릴 뿐, 도중에 멈추지를 않는다. 내리고는 그치고, 금세 다시 내리는 비처럼 저기저기, 하고 말하기를 재개했다.
뭐 먹을 건데, 하는 말이 나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말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바닐라, 하고 대답했다. 내가 현관을 향하자, 그녀는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플리스 상의를 걸치더니 무척 서두르며 신발을 신는다.
틀림없이 사 오라는 의미인 줄 알았다. 끈질기게 말을 걸어 내가 그럴 생각이 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혹은 직접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싶을 뿐인가도 싶었으나, 밤에 산책가는 건 오랜만이라고 웃고 있으니 아니겠지.
확실히, 그녀와 밤중에 이렇게 바깥을 거니는 것도 오랜만이다. 시계는 아홉 시를 돌고 있다. 예전에는 내 귀가가 늦은 데다 장보기도 그녀의 일이 아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슈퍼에 가서 요리 재료를 나란히 고르고는 했는데, 지금은 그녀가 뭐든 해주니 외출은 완전히 주말 낮 한정이다.
이제 와서 늦기는 하나, 어린아이가 한밤중에 외출하는 건 좋지 않다. 아무리 일본의 치안이 좋다고는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특히 여자아이는 노려지기 쉽다. 그렇게 말했으나, 귀여운 여자애한테 장난치는 나쁜 아저씨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하고 웃고 있다.
농담일 생각이겠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내가 말하기는 그렇지만, 범죄에 말려들고 나서는 늦다. 진지하게 한 말을 농담 삼으면 좋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공기를 읽었는지, 아니면 내 성격을 잘 아는 건지 그녀로부터 빈틈없는 말이 이어졌다.
혼자 다니지는 않으니까, 하고. 잘 지켜줘야 해, 라고도. 그런 말을 들으니, 이건 이거대로 책임이 중대하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변질자가 나타나도 대처하기는 어렵다. 혼자 있을 때 이토록 경계해본 적은 없다. 여자들이 느끼는 신변의 위험이란 이런 것이겠지.
가로등은 서 있지만, 여전히 밤길은 어둡다. 그 안에서 편의점만은 유달리 밝다. 편의점을 유인등이라고 표현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해가 된다. 밝음이란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매혹한다. 발걸음을 향하자, 그녀가 뒤에서 상의를 잡아당긴다. 뒤돌아보니 고개를 가로로 흔든다.
편의점은 비싸니까 슈퍼까지 간다고 말씀하신다. 가격으로 말하자면 확실히 그렇겠지만, 고작 몇십 엔 차이다. 편의점이 종류도 다양한 데다, 집에서 가까운 만큼 녹지도 않는다. 슈퍼는 역 앞에밖에 없으니 상당히 멀다.
그런 논리적인 대답도 그녀는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산책 코스를 벗어난 애완견이라도 다루듯 팔을 꽉 잡아당긴다. 사회인과 어린아이의 차이일까. 십오 분을 들여서 오십 엔 이득을 보더라도 시급으로 따지면 이백 엔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시간만큼 느긋하게 지내는 편이 이득이다.
뭐, 상관없나. 몸이 차가워질지도 모르지만, 목욕 후의 열기를 식히기엔 나쁘지 않다. 그녀도 즐거워 보이기는 하니, 이것도 가족 서비스다. 수퍼까지 가는 도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평소와 다름없다고도 할 수 있고, 신기하게도 하지 않을 만한 이야기도 꺼낼 수 있었다.
학교는 재미있게 다니고 있는가, 좋은 친구는 사귀었나, 라니 화제가 없어서 곤란한 아버지 같다. 하지만 별로 부자연스럽지는 않아서, 그녀도 적극적으로 대답해주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학교란 정말이지 즐거워 보이는 장소였다.
어디 어디의 선생은 고함 한 번으로 반의 불량아를 단번에 조용하게 만든다. 몇 반의 여자는 누구누구와 사귀고 있고,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커플이다, 하고. 그러고 보니, 내가 어렸을 때 누나에게 들었던 학교라는 곳도 무척 즐거운 듯했다.
그녀들이 이야기하는 세상은 만화나 소설 속에서 일어난 일 같다. 인물이나 사건들이 마치 동화 같은,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내가 다녔던, 내 눈으로 본 학교는 그저 현실일 뿐이었다. 그건 즉, 당사자가 즐기고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겠지. 그녀에게 있어 학교란 즐거운 장소임이 틀림없으리라.
가는 도중에 공원이 있다. 예전에 저쪽 수풀에서 했던 걸 기억하는지 물어보니, 모르겠다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다. 오늘도 같은 걸 해보겠다고 하자, 새빨간 얼굴로 절대 안 할 거라고 소리친다. 잘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부끄럽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