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233화 (233/450)

8년 23화

블랜더

그녀의 생일 선물은 뭐가 좋을까. 매년 고민하는 테마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편지는 더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자나 케이크 같은 건 늘 사 오기도 하고, 먹으면 사라지는 것을 선물이라 우기는 것도 한심하다.

하지만 벌써 십 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 한 명의 머리로 떠올릴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인터넷으로 여성이 좋아하는 선물을 검색하거나 여성지 같은 걸 참고해봐도 이거다 싶은 것이 없다. 일반적으로 인기 있다고 해서 과연 그녀가 기뻐해 줄까.

망설인 끝에 그녀를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우선은 누나다. 우리 집의 실태를 아는 사람은 누나밖에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보다도 그녀와 친한 부분이 있다. 메일을 하나 보내두자, 회사를 나올 땐 답장이 돌아와 있었다.

내용에 의하면 그녀는 요즘 블렌더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그 블렌더를 누나가 구매해서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럼 블렌더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말하자면 믹서기라고 한다.

믹서라면 우리 집에도 있다. 찬장 안쪽에 넣어둔 것을 그녀가 보지 못한 걸까. 맞물리지 않는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누나가 사진을 보내왔다. 거기에 찍혀있는 건 봉 모양 끝에 날이 달린 것으로,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아는 믹서는 커다란 컵 바닥에 날이 붙어있어서, 사과나 당근 등을 넣고 스위치를 켜면 주스가 만들어지는 물건이었다. 누나가 가진, 그리고 그녀가 가지고 싶어 하는 블렌더라는 것과는 조금 다른가 보다.

이걸 하나의 후보로 삼고, 지금도 그녀와 메일을 주고받는 회사 동료에게도 말을 걸어보았다. 이쪽도 신기하게 얼굴도 본 적이 없으면서 상당히 오랫동안 메일 친구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녀도 어른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연상과 마음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동료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녀는 아이스크림 메이커라는 것에 푹 빠져있다고 한다. 이건 집에서 쉽게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는 기계라고. 다양한 종류 중에서 만약 산다면 어떤 것이 좋은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는데, 어느 쪽도 갖고 싶기는 할 것이다. 동료는 별로 자취를 하지 않는 모양이니 블렌더 이야기를 해도 어쩔 수 없고, 누나는 내 혈연인 만큼 단 것보다는 술을 좋아하니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그녀도 상대에 따라 화제를 바꾸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느 쪽이 더 갖고 싶은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집에서 컴퓨터로 조사해보니 둘 다 비싼 물건은 아니다. 블렌더도 비싼 것이 일만 엔 정도고 아이스크림 메이커가 오천 엔 정도다. 합쳐서 이만 정도면 둘 다 사면 되지 않을까.

가게에서 직접 봐도 좋겠지만, 내가 봐도 좋은지 나쁜지는 판단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고르게 하면 선물이 되지 않는다. 누나가 샀다는 블렌더는 좋은 물건이라 했고, 아이스크림 메이커는 둘이서 결론을 냈다고 한다. 이것들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했다.

한 주 정도 지났을 때일까. 퇴근 전에 전화를 걸자, 그녀의 기분이 묘하게 나빠 보인다. 우울한 기분으로 자전거를 젓는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그녀가 커다란 골판지 상자를 가지고 마중 나왔다. 또 이런 걸 샀다고 화가 나 있다. 지금까지 그녀 몰래 주문했던 것이 코스프레 의상이거나 정조대였던 탓인지 신용이 없다.

문을 잠그며 열어보도록 재촉했다. 여전히 수상쩍다는 얼굴로 박스 테이프를 뜯는 모습을 보니 두근두근하다.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기뻐해 줄까. 그녀보다 내 쪽이 훨씬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든다.

상자의 내용물을 꺼내더니 손에 든 물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다. 기쁘거나 고맙기 이전에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겠지. 누나와 동료의 이름을 들며 갖고 싶을 만한 것을 물어보았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생일 선물이라고 알려준다. 그러자 그녀의 약간 크게 뜨였다. 익숙해지면 알 수 있는데, 이건 놀랐을 때의 반응이다. 잊고 있었는지 물어보니 수긍한다. 일찍 주문한 탓에 물건이 일찍 배송된 탓도 있겠지만.

내가 방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겨우 뒤따라와서 감사 인사를 말했다. 결국 기쁜 건지 아닌 건지. 반응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돌아오니 복도에는 택배 상자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블렌더도 아이스크리머도 벌써 부엌에 꺼내놓았는데도.

나중에 뒷정리는 꼭 하도록 이야기하자, 그것도 포함해서 생일 선물 아니냐고 말해온다. 그건 어떨까. 식사를 마치고도 그녀는 열심히 설명서를 읽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정리하기로 했다. 기뻐하는 증거라고 생각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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