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24화
사고
흥흥, 하고 그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싱크대를 향한다. 요 며칠 매일 밤처럼 보는 풍경이었다. 수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이다. 생일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해주는 건 고마우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자주 쓰는 게 아닐까.
조금 줄이는 편이 좋다고도 말해봤지만 별로 들어주는 것 같지가 않다. 너무 단것만 먹으면 살찌지 않냐고도 해봤는데, 그녀로서는 드물게도 이런 말이 효과가 없었다. 그녀 왈, 우유랑 채소만 사용하고 있으니 가격도 싸고 건강에도 좋을 거라고.
블렌더와 아이스크림 메이커를 세트로 선물한 게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블렌더로 분쇄하면 대부분의 재료를 아이스크림으로 만들 수 있는 모양이다. 볼에 채소를 넣고 블렌더로 가루를 만든다. 여기에 우유를 넣고 아이스크림 메이커에 세팅하면 몇 시간 정도로 완성되는 방식이다.
유일한 결점은 분량 조절이 어렵다는 점이다. 너무 소량이면 얼어서 크림이 아닌 셔벗이 되어버린다. 또 아이스크림 메이커가 어설프게 큰 탓에 자기도 모르게 많이 만들게 되기도 하고. 시판 컵의 몇 배나 된다.
큰 접시에 덜어낸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내 무릎 위로 돌아온다. 허리를 내리고는 빨리빨리, 하고 재촉한다. 내가 덮은 모포로 자기를 덮어달라는 뜻이다. 추워지기 시작하면 코타츠를 꺼내기 전까지는 이렇게 모포로 견디고는 한다.
마치 산장에서 온기를 나누듯 하는 걸 보면 그녀도 추워한다. 추워하면서 어째선지 아이스크림은 먹는다. 모순이 아닐까. 심지어 손가에서 입으로 아이스크림을 옮기니 모포에 묻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더러워지면 벌레가 생길 것 같아서 무섭다.
한두 입 먹을 때마다 감탄하기에 맛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몸을 돌려 이쪽을 향하고는 떠올린 아이스크림을 내 입가에 던져 넣는다. 메이커로 만든 아이스크림은 시판과 비교하면 따뜻하다. 온도가 높다는 건 아니고 차가운 크림 정도의 온도다. 심지까지 얼어있는 기성품과는 조금 다르다.
한순간의 차가움과 달콤함이 지나가자 구수한 향기가 입안에 감돈다. 고구마다. 섬유질도 어느 정도 섞여 있다. 이번 블렌더의 희생양은 고구마인가보다. 맛이 어떤지 묻기에 솔직하게 맛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먹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만. 혼자 어느 정도 먹고는 휴식 겸 내게도 건넨다. 대접 하나 분량의 아이스크림이 사라졌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데 배까지 차가워진다. 역시 슬슬 코타츠를 꺼내야 할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지 아직 이르다고는 하지만. 코타츠를 꺼내면 꺼낸 대로 나오려고 하지 않으니 곤란하기도 하다.
접시가 비었으니 그녀가 다시 TV를 향해 몸을 돌린다. 추위 탓인지 잘게 몸을 흔든다. 차가운 공기를 넣지 않고 품 속에 들어오려면 무리한 자세가 되는데, 그게 좋지 않았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무릎에 미적지근한 감촉을 느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아마 처음엔 방귀였다고 생각한다. 그 직후에 약간 내용물이 나와버렸겠지. 나도 그녀도 방귀라고 생각해서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다. 허리를 내린 시점에서 끈적이는 수분 섞인 감촉이 있었다.
또냐, 하고 나는 생각했다. 예전부터 식욕이 왕성해서 과식할 때면 배를 부수고는 했다. 토할 때도 있었다. 대체로는 혼자 화장실에 틀어박히는데, 이렇게 무릎 위에서 실수하는 때도 없지는 않다. 기르는 고양이가 잘못한 거나 마찬가지라,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해도 의외는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유난히 충격을 받은 것이 더 놀라웠다. 마치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양 당황하더니 뛰쳐 간다. 남겨진 나로서는 옷도 처리하고 몸을 씻고 싶다. 나도 그렇지만 그녀의 파자마도 씻을 필요가 있다.
화장실에 틀어박힌 그녀에게 속옷과 바지를 넘기도록 말하자, 그런 부끄러운 일은 할 수 없다, 변태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난 오히려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만. 변태라고 할 거면 내 바지에 남은 갈색 얼룩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씻기만 할 거라는 문답을 반복하고서야 겨우 문틈으로 옷을 회수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세탁기에 넣을 수는 없다. 우선 욕실에서 손빨래를 해야 한다. 보통은 꼭 닫아놓으니 배수구 뚜껑을 여는 데도 한 고생이었다. 그대로 씻으면 바닥에 고여버리니.
그녀는 변태라고 했지만, 이런 냄새로 어떻게 하고 싶다는 사람이 정말 존재할까. 나는 무리다. 마음이 수그러든다. 아무리 그녀를 사랑한다지만 냄새나는 건 냄새가 난다. 씻어줄 정도로 애정이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대강 얼룩을 씻어내고 세탁기에 집어넣어 버튼을 누르자, 가늠한 것처럼 그녀가 욕실에 들어온다. 잘못했어요, 하고 드물게도 기특하게 사과한다. 요즘은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라 당황스럽다. 어떻게 먹는 양을 줄여보도록 타이른다. 되도록 조심하겠다는 말은 즉 줄일 생각이 없다는 뜻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