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27화
해수욕
편하게 이야기를 나눈 덕분일까. 숙소에 대한 기대감은 전혀 없었지만 의외로 멀쩡한 건물이었다. TV에서 나올 법한 세련된 현대 건축이 아닌 낡은 민가를 청소한 것이겠지. 여기저기에 옷장 같은 가구들이 굴러다녀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일단은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둘러싼 곳에 가족 욕탕도 마련되어있다. 바닷가까지는 차를 타고 가야 하지만 그것도 여관 쪽에서 준비해주겠다고. 저녁은 본관까지 가도 마음대로 먹든가 해달라는 이야기였지만. 외식할 수 있는 가게 같은 건 근처 과자점밖에 없는 것 같으니 실질적인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좋게 말하면 더할 나위 없고, 나쁘게 말하면 외길 여행이나 다름없다. 사람 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같으니 그것만은 고맙다. 가장 중요한 일이니. 그렇게 개방적인 건 그 청년 정도일지도 모르겠다만.
바로 바다에 갈 거냐는 질문에 그녀가 곧바로 수긍했다. 바다의 집 같은 건 없으니 다들 집에서 갈아입고 달려간다. 여기서 갈아입어달라는 이야기가 되었다. 기다리게 하기도 미안하게 느껴졌으나, 그는 느긋하게 허리를 내리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원피스 형태의 수영복으로 허리에는 프릴 같은 것이 붙어있다. 이것도 굳이 새로 산 물건이다. 그녀는 집요하게 비키니를 고집했지만 난 보는 눈이 신경 쓰였다. 새빨간 남에게 보이기는 싫다. 참고로 난 지극히 심플한 수영 팬츠다. 몇 년이나 전에 수영장에서 입었던 것이다. 여전히 입을 수 있다는 건 운동한 보람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도시의 젊은 아이는 더 굉장한 수영복을 입을 줄 알았습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그녀는 대단히 분개했다. 다음번엔 꼭 비키니를 살 거니까, 하고 차 안에서 으르댄다. 백미러 너머에서 눈으로 사과해도 이미 늦었다.
곧장 바다로 향하나 싶었지만 도중에 몇 번이나 정지하더니 그때마다 다른 아이가 차에 탑승한다. 붙으면 일고여덟 명은 탈 수 있다고는 해도 상당히 힘겹다. 부탁받아서요, 하고 웃고 있다. 접객 중이라는 의식은 전혀 없는 듯하다.
어른은 청년과 나밖에 없다. 멋대로 인솔 역할을 기대받고 있다. 그녀는 그녀대로 어린아이들의 질문 세례를 받고 있다. 어디서 왔는가, 왜 왔는가, 몇 살인가. 남자 녀석들의 번들거리는 시선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좋은 기분은 아니다.
내 기분을 헤아렸는지, 아니면 약속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건지. 마을에서 바람이다 불륜이다 하기 시작하면 금방 지역이 붕괴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는 벌써 정해졌으니까 안 돼, 하고 청년이 못을 박았더니 금세 방향을 바꾸었다. 자매는 없는가, 친구는 부를 수 없는가.
아무래도 이 청년만이 특별히 느슨한 게 아니라 지역색인 모양이다. 흐름상 내가 상대라는 걸 알았을 터인데 그에 대해 위화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본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비경이라도 헤매고 있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무시당해서 나 혼자 원 밖으로 빠져나온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반나절이나 돌보는 동안 수영을 가르치고 밥 준비까지 하다 보니 제법 잘 따라준다. 보육원에서 꼬맹이들을 맡기도 했고 학원 강사 경험도 있어서 어린아이를 돌보는 건 싫지 않다.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동년대 남자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기도 했던 것 같은데, 친구를 부를 수 없냐는 말을 듣고 완전히 그럴 생각이 든 모양이다. 혼내야 하는 부분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단순함은 남 일 같지가 않다. 아무리 얘기한들 이렇게 먼 곳까지 오지는 않겠지.
한바탕 놀고는 그대로 차를 타고 본관으로 돌아왔다. 면허는 없는지 묻는 걸 보면 운전까지 맡길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골드라고 대답하니 기뻐했는데 벌써 십 년 이상 타지 않았다고 하니 미소가 얼어붙었다.
본관에는 처음 발을 디디는데 여관보다는 요리정 같은 분위기다. 토지가 남으니 단층 구조이고, 좀처럼 무너지지 않으니 요즘 건설 양식이 되는 일도 없으리라. 나중에 물어보니 사실 그냥 민가라며 웃고 있었다.
툇마루를 지나 타타미가 깔린 방으로 안내된다. 저녁 준비를 시작하니 그동안 욕실에 다녀오라고. 바닷물로 끈적끈적하니 고맙기는 하다만. 단순히 저녁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인 게 아닐까.
노란 머리를 한 남자가 헤실헤실 웃으면서 말하는 탓에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이 건물의 분위기가 이 남자 하나에게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방해된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이 그의 인품이겠지.
노천 욕탕은 혼욕입니다, 하고 미소 가득히 알려준다. 완전히 마음을 터놓은 그녀가 내 등을 짝짝 두드리더니 손을 꼭 잡아당긴다. 탕 안에서는 하지 말아주세요, 씻기 힘드니까, 하는 말이 등 뒤로 날아든다. 한 대 때려주고 싶어도 그녀를 떼어놓지 않으면 돌아갈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