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242화 (242/450)

9년 2화

머리카락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그녀의 머리카락이 옆으로 싹둑 잘려있었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던 머리가 어깨 정도가 되어있다. 사람은 너무 놀라면 말도 나오지 않게 된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뭐가, 하고 돌아온다.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들어봐도 괜찮은지 어떤지. 그녀도 어엿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으니 머리를 어떻게 하든 본인 마음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역시 신경 쓰인다. 그렇게 긴 흑발이었으니 어지간한 사정이 있었겠지. 실연하면 머리를 자른다는 말도 있지만.

나와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따로 학교에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렇지는 않겠지만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최악의 만남에 나이 차도 있다. 사람으로서도 매력이 있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다.

무언의 식사를 마치고 느긋한 휴식 시간이 다가온다. 오늘에 한해서는 별로 느긋하다는 느낌이 없지만. 아니, 다시 떠올려본다. 이대로는 TV를 봐도 욕실에 들어가도 전혀 편할 수가 없다. 각오를 다지고 물어볼 만큼 물어봐야겠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는가, 하고 묻는다. 그러자 뭐어, 하고 그녀가 큰 소리를 냈다. *반야는 여자의 화난 얼굴로부터 만들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을 뒷받침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엄청난 박력에 방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뭐야 그게, 무슨 말인데, 하고 따져 든다. 그녀는 화가 나면 조용해진다. 담담하게 하나하나씩 쌓아 올리듯 정중한 어조가 된다. 그럴 여유도 없는지 지금은 누가 왜 그런 말을 했는가, 하고 캐묻고 있다. 말하기 전까지는 사실처럼 느껴졌는데.

아니, 여자아이는 실연하면 머리를 자른다고 하니까, 하고 변명한다. 아니라고 단박에 부정한다. 그 말을 듣고 안심하는 동시에 아쉽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눈치채고 말았다.

요컨대, 이렇게 부정해주기를 바라니까 일부러 있을 수 없는 일을 입에 담는다. 당신이 있으니까, 하고 말해줬으면 하기에 물은 것이다. 내 비굴함을 채워줄 자기만족에 그녀를 끌어들이고 말았다. 그녀가 그녀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그저 나만을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나는 결국 나에게 자신이 없다. 언제까지고 함께하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자꾸만 불안해진다. 사랑하니까. 무겁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아 그래, 하고 그녀가 고개를 홱 돌린다. 침묵이 찾아든다.

평소처럼 좌의자에 앉아 TV를 켠다. 그녀도 평소처럼 내 무릎 위에 올라왔다. 제멋대로지만, 난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느낌이었다. 머리에 대해서는 더는 접하지 않기로 했다. 말하고 싶다면 말하면 되고, 아무 말 않겠다면 듣지 못해도 좋다. 단순한 기분전환일지도 모르고.

화가 난 사람에게 화가 났느냐고 물어도 의미가 없다. 더욱 화나게 할 뿐이다. 조금 전의 대화로 화를 내는 대상이 아마도 내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평소처럼 그녀를 받아들여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학교의 상급생에 이상한 남자아이가 있는 모양이다. 내가 볼 땐 일학년이나 삼학년이나 비슷한 어린아이지만, 당사자인 그녀에게는 이학년과 삼학년이란 커다란 차이를 느끼나 보다.

나름 얼굴이 괜찮고 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믿는 착각증 환자다, 하고. 이 표현은 그녀가 한 말 그대로다. 언동이나 행동도 만화 같아서 보기 괴롭다고. 단추를 풀어헤치고 다니거나 아무렇지 않게 남의 어깨나 허리를 만져댄다. 중학생은 이것저것 저지르는 시기라고 나 같은 사람은 생각하겠지. 분명 그 본인도 몇 년 정도 지나면 후회하리라.

머리가 비어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지만, 하고 가증스러운 듯 말한다. 얼굴은 괜찮으니 그런 이상한 행동도 어쩐지 용서받고 있다고. 조금 바보 같아도 미워할 수 없는 녀석은 있는 법이다. 그건 이해한다. 왠지는 몰라도 그녀는 그런 선배의 눈에 든 모양이다.

구애받고는 매정하게 거절한다. 이러니저러니 그녀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항상 있는 일이라는 느낌이라 그것도 무척 화가 났다고. 그건 그녀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 때문이겠지.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주변에서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딱 잘라 거절하면 호감도가 내려간다. 그런 느낌으로 대하니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오늘에 이른다. 그런 그가 그녀의 긴 머리를 쥐고는 입맞춤을 했다. 그야말로 만화 같은 행동을 해보고 싶었겠지 싶다. 하지만 그게 손이 아니라 머리카락이라는 건 조금 기분 나쁘다. 그렇게 말하자, 손을 붙잡힌 적은 있었지만 곧바로 뿌리쳤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으니 도망갈 수 없는 장소를 노린 것이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과연 웃을 수 없다.

*질투나 원한이 담긴 여자의 얼굴을 형상화한 일본 가면의 한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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