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6화
대결
낯선 생물이 있었다. 현관 앞에 구두가 몇 개나 굴러다니고 있다. 크고 작은 것이 세 켤레.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해본다. 지인 중에 이렇게 발이 작은 사람이 있던가. 혹은 우리 집에 세 명이나 사람이 올 일이 있었나.
마중이 없는 것을 외롭게 느끼며 거실에 들어가서는 조금 납득했다. 낯선 구두였지만 익숙한 얼굴이었다. 누나다. 물건을 오래 쓰는지는 몰라도 누나는 옷이나 구두에 고집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일 년에 몇 번도 만나지 않는 상대이니 신은 구두까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바로 옆에 작은 생물이 앉아있다. 아마, 조카겠지. 얼굴을 보는 건 몇 년 만일까. 아직 아기였을 때 안아 본 정도로 그 이후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내게도 미지와의 조우였지만, 조카 딸은 훨씬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리라.
나를 보더니 얼른 엄마의 소매를 붙잡는다. 숨지도 않고 이쪽을 빤히 엿본다. 도로에 뛰쳐나온 고양이를 닮았다. 소리치는 것도 도망가는 것도 아니라 가만히 차를 바라보고는 갑작스럽게 달려가버린다.
누나도 이쪽을 돌아보기에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을 걸었다. 그녀는 현관을 등지고 서 있어서 알아차리는 게 가장 늦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더니 가방과 양복을 받아든다. 내 방까지 가져다줄 생각인 것 같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해주지 않는데 어찌 된 일일까. 마치 *쇼와의 안사람 같다. 그녀는 누나를 존경하는 것 같으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좋은 여자고 전부 잘 해내고 있다면서. 기분의 코스프레다.
실상은 내가 방에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자마자 할 일이 없어진 모양이다. 문 앞에서 멍하게 서 있을 뿐, 돌아가도 된다고 해도 건성이다. 방까지 따라왔는데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생각이라도 했겠지. 조금 장난기가 생긴다. 얇은 문 너머에 누나와 조카가 있다.
그녀를 끌어당겨서 이불에 쓰러뜨린다. 너무 시간을 들이지는 못한다. 혀로 입술을 나누어 입안을 유린한다. 간식으로 초콜릿이라도 먹었는지 달콤하다. 그녀의 손이 등을 두드린다. 툭툭하고 가벼운 이유는 큰소리를 내서 들리는 게 싫어서일까.
양손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아서 머리 위에 모은다. 왼손으로 꽉 붙잡으니 가슴 아래에서 그녀가 몸을 비틀었다. 유일하게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웃옷을 끌어 올린다. 이대로 가슴을 만져주자, 하고 생각했지만 이게 쉽지가 않다.
브래지어란 참 위대해서 옆으로도 손가락을 넣을 수가 없다. 그대로 가슴을 붙잡는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는 뭉실한 부드러움을 즐기지 못한다. 바로 근처에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손을 대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후크를 풀고 느긋하게 즐길 시간은 없다.
어색해져서 쓱 일어난다. 흐트러진 옷을 두드려서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정돈했다. 내려다보니 아직 그녀는 이불에 누운 그대로다. 기분 탓인지 시선이 차갑다. 안아 일으켜서 매무새를 고쳐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을 나오려는 순간, 그녀에게 있는 힘껏 배를 맞았다.
중학생이나 되면 가벼운 펀치로 끝나지 않는다. 아픔을 견디며 거실로 돌아가자 조카가 그녀에게 달라붙는다. 언니 왜 그래, 라는 질문은 어린애지만 관찰력이 좋다. 단지, 아무리 대답하기 곤란해도 저 사람이 괴롭혀서, 라고 대답하는 건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도와주나 싶었더니 누나마저 나를 노려본다. 이쪽은 대강의 사정을 이해한 다음 음흉하다고 화가 난 거겠지. 모녀가 같이 내게서 거리를 둔다. 그녀도 데려가버렸으니 삼 대 일이다. 저녁 시간 동안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으니 소외감은 더욱 늘어난다.
식사를 마칠 즈음에야 겨우 그녀들의 기분이 풀렸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매형은 출장, 어머니는 동창회로 탕치를 가셨다고. 드물게도 일정이 겹친 것이다. 집에 둘만 있어도 어쩔 수 없으니 그녀를 만나러 왔다고 한다. 동생인 내가 아니라 그녀를 말이다.
낮 동안은 계속 셋이서 놀았다고 한다. 저녁은 특별히 가져와 줬으니 고마워하라니. 누나라는 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남동생보다 입장이 위라고 생각한다. 조카도 기가 세 보이는 얼굴로 으스대고 있다. 엄마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라는 건 알아도 아니꼬운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생각하고는 그녀에게 손짓했다. 아무래도 조카는 그녀를 존경하는 것처럼 보인다. 머리도 좋고 예쁘고 다정하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미소녀니 어린아이가 동경심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쉽게 됐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그녀도 내게는 순종적이니까.
수상한 남자에게 다가가려는 그녀를 조카는 필사적으로 말리고 있다. 그녀 본인도 의아해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내 부름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조카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이겼다는 표정을 지어준다.
의자에 앉은 채 양손으로 그녀를 안아 올린다. 무릎 위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목을 울리는 등 실컷 어리광을 받아준다. 존경하는 연상의 언니도 내 앞에서는 귀여운 여자아이일 뿐이다. 몸을 맡긴 채 가만히 귀여움받는 모습을 과시한다.
조카는 돌아갈 때엔 완전히 풀이 죽어서 얌전해졌다.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하고 싶다면 하라. 내게 있어 누나는 두 번째 어머니라 해도 좋을 정도로 어려워서 고개를 들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그 딸에게까지 고개 숙일 이유는 없다. 솔직히 누나를 향한 울분을 풀은 면이 없지는 않다. 너무 심하다면 그녀가 멈출 테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할 수 있다. 자비란 없다.
*1926~1989년. 아내는 남편을 모셔야 했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