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8화
털
옅지만 분명하게 털이 자랐다.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며칠에 몇 주, 몇 개월이나 지켜봤다. 하지만 새삼 제대로 바라보니 정취가 느껴졌다. 이불에 가로누운 그녀가 무릎을 굽힌 채 다리를 펼치고 있다. 흔히 말하는 M자 개각이라는 자세다. 그 중앙에 털이 있다.
이걸 보고 싶었다. 기대 그대로의 모습이다. 하지만 동시에 예상을 벗어난 결과이기도 하다. 털이 자란 그녀는 색기가 느껴지는 어른스러운 모습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까만 어른의 하반신과는 반대로 소녀다움을 잃지 않았다. 한층 깊은 배덕감이 느껴졌다.
일 년에 걸친 계획이었다. 털을 깎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다. 처음엔 포인트를 내서 털의 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제안이었는데, 포인트를 계산해보니 이것을 실행하기는 도무지 어려웠다. 레이트가 높았기 때문이다.
하반신을 남에게 빤히 드러내는 일은 없다. 그렇기는 한데, 학교에 다니다 보면 수업이 있다. 체육을 하면 옷을 갈아입을 것이고, 남자는 없지만 여자끼리는 속옷 차림을 서로 보여주게 된다. 속옷이 있더라도 처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는 한눈에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더 색이 짙은 면 속옷이라도 입으면 쉽게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항상 깔끔한 얇은 레이스라는 것이 문제다. 다른 누구보다도 알기 쉬운 모습이니까. 그런 걸 위해서 속옷을 바꾸는 건 절대로 싫다고 하니, 보이지 않게 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녀의 저항이 거셀수록 포인트도 비싸진다. 게다가 한 주 정도로 털이 자라지는 않는다. 일정 수준까지 계속해서 포인트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몇 개월이나 반년, 혹은 일 년쯤은 걸릴지도 모른다. 이걸 계속하기는 불가능했다.
거기서 떠올랐다. 생일 선물이다. 이번 생일부터 다음 생일까지의 선물 두 번을 사용한다. 그동안은 털의 처리를 하지 않도록 요구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무엇이든 괜찮다고 했던 그녀의 안일한 발언을 꺼낸 다음 제안을 내밀었다.
설마 했던 말을 번복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교섭은 난항을 빚었다. 주변에서 바보 취급을 당한다는 생각이 그녀에게 있어서, 손질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머리를 단발로 깎은 일도 그녀 내면의 장해 중 하나인듯하다.
스스로 단발을 선택했다고는 하나, 반에서 가장 귀여운 여자아이였던 지위를 단숨에 잃어버렸다. 여자에게는 반응도 나쁘지 않은 모양인데, 그건 모델을 보는 듯한 느낌에 가깝다. 패션으로서는 괜찮다고 생각해도 같은 여자로서는 동렬이 되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몸의 관리까지 게을리하면 금방 소문이 퍼져버린다. 이제 여자로서는 한 급 아래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 그렇게까지 남의 눈을 신경 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만. 여자의 커뮤니티에 있었던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다.
그때는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를 마쳤다. 생일 선물은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로 끝났지만, 나로서는 포기하려고 해도 모처럼의 아이디어를 곧바로 없던 일로 하기가 어려웠다.
그건 어디였던가. 분명 회사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있을 때 번뜩였다. 물건을 꺼내면서 털에 닿았는데, 그 감촉으로 다시 생각해본 것이다. 딱히 나도 털을 덥수룩하게 길러 달라는 건 아니다. 그저 나이에 걸맞은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평범한 여성의 손질이란 털을 모조리 깎아서 맨들맨들하게 만드는 건 아니리라. 그런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은 길이를 짧게 유지하거나 모양을 정돈하지 않을까. 그녀도 그렇게 하면 된다. 언제까지고 털이 없으면 오히려 너무 어린애 같다.
집에 돌아와서 곧바로 그녀에게 이야기를 부딪쳐보았다. 너무나 열성적으로 얘기해버려서 질색하고 있다는 건 잘 알겠다. 하지만 조금 질색한다고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털은 나게 두면서 잘 손질해야만 주변에서도 어른의 여성으로서 다시 봐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전혀 털이 없었으니 주변에서는 어른의 증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터다. 내가 중학생 때는 남자끼리 털이 났는지 나지 않았는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털 하나 없다니 어린애다, 라는 말을 듣고는 했다.
내가 자꾸만 말하자 그녀도 불안해진 모양이다. 정말 그럴까, 하고 반대로 물어본다. 실제로 어떤지는 알 수가 없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과장되게 끄덕여주었다. 속인 건 아니다. 내 안에서는 사실이었을 뿐이지.
드디어 계약이 성립됐다. 기한 동안 그녀의 하반신 처리를 제한하게 되었다. 굉장하게도 삼 일정도 지나자 그녀의 가랑이에 옅은 털이 자라났다.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는데, 그녀는 사실 털이 많다고 한다. 원래라면 옅을 때 면도칼로 처리했을 거라고.
생각해보면 욕실은 항상 둘이 함께 들어간다. 처리하는 모습 같은 건 본 적도 없다. 그 말인즉, 그녀는 학교에서 돌아와서 내가 돌아오는 사이에 혼자 방이나 어디선가 하반신을 드러낸 모습으로 처리했다는 뜻이다. 심지어 사흘에 한 번이라는 높은 빈도다. 상상 속의 그녀는 무척 요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