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252화 (252/450)

9년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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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병원은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전철을 갈아타는 장소에 있다. 차로 이동하는 편이 빠른 지역이라, 원래는 삼십 분 정도면 도착한다. 나도 면허는 가지고 있지만 차 자체가 없다. 과거에 한 대 있던 자가용차가 양친의 사고로 폐차가 되어버린 이후로는 아무래도 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착해보니 생각 이상으로 사무적인 대응을 받았다. 뚜껑이 붙은 플라스틱 컵을 넘겨받아 어디서든 내달라는 것이다. 재빠른 질답은 그만큼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배려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액검사만이라면 우편으로도 받아주는 모양이다. 카운셀링 등을 받을 생각이 없다면, 컵에 정액을 넣어 보내서 결과를 받아드는 간단한 과정으로 일이 끝난다. 물론, 수치나 해석을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병원까지 오는 편이 좋다.

혹은 카운셀링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남자 혼자가 아니라 아내를 동반하겠지. 남녀 어느 쪽에 원인이 있는지 모르는 이상, 양쪽 검사를 한 번에 마치는 편이 효율이 좋다. 치료 이야기를 하더라도 한쪽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남자 혼자 쓸쓸하게 병원까지 찾아오는 건 사정이 있는 사람이다. 여자 혼자라면 남편이 일 때문에 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억측된 결과인지, 내가 억측을 하는 건지. 아마도 후자겠지만. 너무 신경질적인 자각은 있다.

어디서든 하라고 해도 전용 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 다녀올 수도 없다. 화장실에서 해결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겠지. 용기를 받아들고 걷기 시작했지만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 건지. 잘 생각해보니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다시 돌아가서 접수처에 장소를 물어보기는 멋쩍었다. 이제부터 검사를 위해서 혼자 하려는데 화장실이 어딘지 알려주세요. 라는 의미가 된다. 딱히 그런 걸 신경 쓰지는 않겠지만, 신경은 쓰인다.

어디 안내판은 없는지, 입구까지 돌아가면 안내도가 있지 않을까. 한참을 두리번거린 탓이겠지. 화장실은 저쪽입니다, 하고 뒤에서 말을 건네왔다. 평소 같으면 감사의 말이라도 했겠지만 괜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알려준 대로 화장실에 가보자, 다행히 선객은 아무도 없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검사에 필요한 일이기는 하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개인 칸에 들어가서 하는 일이 수음이다. 조금이라도 보이고 싶지는 않다.

속옷을 내리고 허리를 안착하자 잠깐의 틈이 생긴다.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와 지내게 되고 혼자서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아무래도 미안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단순하게 혼자서 하기는 허무했으니.

금욕한 덕분에 끓어오르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소재도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와버린 것을 새삼 후회한다. 적어도 그녀에게 사진 한 장이라도 부탁해야 했을까. 그녀에겐 아직 핸드폰을 들려주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보내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아니,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할만한 일이 아니다. 아마 단 한 장이라도 지우기 아까워진다. 그런 수상한 사진을 가지고 있으면 어디서 문제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마음이 느슨해져 있다.

조금 생각했지만, 결국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검색했다. 사전지식은 전혀 없었지만, 간단한 키워드로 풍부하게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요즘은 굉장하게도 해외 서비스를 거치면 얼마든지 무수정 영상을 볼 수 있다. 내가 학생 시절에 친구와 돌려봤던 것보다 훨씬 화질도 좋다.

취향의 문제지만, 난 유난히 스타일이 좋은 금발 백인은 조금 꺼려진다. 친근감이 없어서겠지. 하는 건 하고 있으나, 미술품 또는 동물이라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차별적일지도 모르겠지만 같은 생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적어도 검은 머리를, 하고 찾아보니 일본인 여배우가 나오는 것도 놀랄 만큼 많았다. 요즘은 일본에서 직접 해외로 패키지를 유출하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일본에서 만들었다고 꼭 국내에만 판매할 필요는 없다. 해외 쪽이 시장은 크다.

재미있게도, 일본인 여배우의 영상 몇 개에는 로리타 태그도 붙어있었다. 내용은 아무리 봐도 이십 대나 잘못하면 삼십 대다. 외국인이 보면 이래도 로리타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작은 여배우는 그대로 로리타로 묶이는 걸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놀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물건을 붙잡아 시작했다. 화장실이 조용한 만큼 소리가 울린다. 병원의 소란은 들려왔지만, 손가의 소리를 유독 크게 들리게 할 뿐이었다.

동영상에서는 여배우가 열심히 귀두에 혀를 내밀고 있다. 실전보다 펠라티오 씬이 더 끌렸기 때문이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엉덩이나 배를 보는 것보다는 나은가 싶었다. 둥근 눈가와 뺨이 조금 그녀와 닮았다. 앞으로 십 년정도 지나면 이런 느낌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어떻게든 사정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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