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23화
발기술
개점 시간에 맞춰서 찾아왔으나, 혼잡한 인파 속에 섞여서 문구 코너를 산책하고, 기다란 뱀의 행렬을 만드는 계산대를 빠져나갔을 때는 완전히 점심시간이 되어있었다. 열두 시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늦는 것보다는 조금 이른 편이 가게가 비어있는 법이다. 일단 점심을 먹고 다시 오기로 했다.
메뉴를 들여다보면서도 그녀의 머리는 잡화점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지하는 봤으니 다음은 일 층으로 하자. 반대로 위에서 순서대로 보는 게 좋으려나, 하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빨리 가고 싶다면 빨리 주문을 정해서 먹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만. 그녀는 메뉴판에 정신이 팔려있다.
십 초 뒤에 점원을 부르겠다고 해도 듣지를 않는다. 카운트다운을 시작해서야 메뉴를 급하게 다시 둘러본다. 가만히 기다리자 그녀가 슬쩍슬쩍 올려다본다. 난 어떤 걸 주문하는가, 하고 묻는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흰 밥 종류는 아무래도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아서, 파스타로 할 생각이었다. 페이지를 넘겨서 이거라고 가리키자, 다시 끙끙거린다.
아무래도 그녀는 먹고 싶은 것이 두 가지라, 어떤 거로 할지 망설이고 있는 모양이다. 젊은 덕분인지 잘 먹기는 하지만, 과연 이인분은 다 먹을 수 없는 거겠지. 이것도 맛있어 보이지 않아, 하고 권하는 이유는 내게 반을 대신 먹게 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둘이 같은 메뉴를 주문하면 반을 나눌 수 있으니.
꼭 파스타를 먹고 싶었던 건 아니니, 부탁 정도는 들어줘도 좋다. 내게 부탁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더라, 하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아아, 하고 눈을 크게 열었다. 그런 일도 있었지, 라는 느낌이다.
손을 뻗어서 내 옷깃을 잡아당긴다. 그럼 이걸로 하자, 하고 메뉴를 보여준다. 그곳엔 두꺼운 햄버그가 올라탄 철판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이거면 그녀는 대체 뭘 주문할 생각일까. 그러자, 그녀는 역시나 두꺼운 스테이크를 가리켰다. 어느 쪽도 고기인데 그렇게 망설일 필요가 있었을까.
별것 아닌 잡담을 하며 요리가 오기를 기다리자, 문득 다리에 무언가가 닿았다. 그녀가 다리라도 흔들었나. 얼굴을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다. 기분 탓이었나, 하고 생각했더니 다시 무언가 닿는다. 이번에는 정강이 부근이다.
장난칠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구두를 신은 채로는 바지가 더러워진다.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다. 다시 한번 하면 한마디 주의를 줘야겠다, 하고 준비한다. 그런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세 번째는 틈이 있었다. 빈 잔에 물을 따르기 위해 점원이 다가온다. 그 순간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왼쪽 다리의 정강이 왼쪽에 슬쩍 닿는 것이 있다. 입을 열기 전에 오른쪽에서도 다가온다. 그 부드러움은 세련된 가죽 구두가 아니라, 고작해야 천에 감싸인 사람의 그것이었다. 게가 사냥감을 붙잡듯, 능숙하게 내 다리를 조여들었다.
놀이다. 안색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어딘가 수줍어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조금 신이 나서, 자기 행동에 취해있기도 하다. 내 망상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이 삭스의 재질은 두껍고, 모래가 닿는 듯한 감촉이다. 다리만의 생물이다.
발목에 오른 다리, 정강이에 왼 다리, 조이는 것에 질렸는지 점점 올라타기 시작한다. 내 왼쪽 다리의 정상까지 오르자, 홱 하고 오른쪽 다리로 이동한다.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의 위에서 아래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한다. 빙글빙글 두 바퀴고 세 바퀴고 반복하더니 마지막에는 쭉 다리를 뻗었다. 내 무릎 사이에 들어온다.
내가 무릎으로 붙잡아주자 활짝 미소지었다. 무척 순수한 웃는 얼굴이다. 드물기도 하지, 하고 생각한다. 그녀의 진심 어린 표정은 빈도가 낮다. 자고 있을 때마저 무언가를 생각하는 정도다. 아주 드물게 긴장이 빠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을 놓치지 않는 것만이 그녀의 민낯을 볼 기회가 된다.
무릎을 흔들어서 발을 꾹꾹 주무른다. 그녀도 발을 흔들어서 내 무릎을 누르고 있다. 그런 짓을 했더니, 발이 쓱 빠져서는 테이블에 부딪혔다. 유리잔이 쓰러질 뻔하고, 옆에 꽂아두었던 메뉴판이 쓰러지고 말았다.
황급히 원래대로 돌려놓자, 조금 주목을 모으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게 안쪽이라 눈에 띄는 자리는 아니지만, 높은 소리는 귀에 울린다. 점차 소란에 섞여들었지만 거북한 기분이다. 이제 끝이다, 라는 의미를 담아서 눈동자를 바라본다.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이다.
도합 세 번, 비슷한 일이 이어졌다. 처음 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툭툭 건드려온다. 쫓아낸다. 모르는 척을 한다. 끝내는 가게 쪽에서 주의를 받고 말았다. 다른 손님에게 폐가 될 수 있어서, 하고 부드럽게 지도가 들어온다.
예전의 나였다면 조금 더 의연하게 꾸짖었을 터였다. 공공의 장소에서 낯부끄러운 일을 하지 마라, 하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할 수 없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도 중학생이고 어른이니 이해해줄 거라고도 생각한다.
단지, 그 이상으로 미움받고 싶지 않다고 두려워하는 기분도 있었다. 그녀의 어리광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마치 그녀를 내치는 일처럼 느껴진다. 맞잡은 손을 풀어버리는 듯한, 견디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버린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