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266화 (266/450)

9년 26화

고양이

무릎 위에서 뒹굴거리고 있다. 데굴거리는 것이 고양이 같다. 고양이를 길렀던 기억은 없지만. 무릎 위는 넓지도 않다. 거인도 아니니 고작해야 사방 몇십 센티 정도다. 극히 한정된 공간을 능숙하게 활용해서 무릎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혼자 힘으로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몸집이 작다고 해도 벌써 중학생이다. 세로라면 모를까, 그대로 옆으로는 다 들어가지도 않는다. 아기가 아닌 이상 무리겠지. 데려왔을 적이라 해도 아슬아슬한 정도인가.

어떻게 하고 있냐면, 내 왼손을 멋대로 이용하고 있다. 즉, 그녀의 머리는 내 왼손 위에 올라있다. 떨어지니까 받치고 있으라고 하신다. 별로 싫어할 이유도 없지만, 그 제멋대로인 발상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야유도 아니다만.

그런데, 사람 한 명을 무릎 위에 얹어놓고 느낄만한 감상은 아니겠으나, 왠지 모르게 뮤지션이라도 된 느낌이 든다. 왼손에 안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닌 기타나 바이올린이라는 기분이다. 다소 따뜻한 악기기는 하지만, 닿으면 소리도 낸다.

먼저 말해두지만, 난 악기 종류는 무엇 하나 연주할 수 없다. 학교에서 배운 리코더나 피아니카 조차도 애매한 정도다. 배웠던 곡도 반복 연습으로 연주 자체는 가능했지만, 아무래도 감성이 부족하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너무 기계적이라고 한다. 능숙하더라도 아름답지 못하다.

음악이란 예술적인 것이다. 예술이란 더욱 정확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매력적으로 자아내는 것이다. 요컨대, 내게는 그림을 그리는 재능도 없고, 음악의 재능도 없다는 뜻이다. 나를 인정하는 건 노래방 기계 정도겠지.

뮤지션 흉내는 아니지만, 심심한 오른손 아래에 그녀의 배가 있다. 마침 아래에 말이다. 왼손 아래에 머리가 있으니 인체구조적인 문제기는 하다. 그 오른손으로 현이라도 켜는 것처럼 부드럽게 배를 쓸어본다.

내가 음악가가 아니듯, 그녀도 당연하지만 악기가 아니다. 내 생각을 읽을 수는 없으니 지극히 평범하게 TV를 보고 있다. 가끔 부들부들 몸을 떠는 것은 아마도 웃고 있는 거겠지. 고개를 옆을 향하고 있어서 얼굴을 잘 보이지 않고, 보인다고 해도 별로 표정이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녀는 표정을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고 싶을 때만 표정을 바꾼다는 인상이 있다. 감정이 옅다기보다, 감정 표현이 서투르겠지. 남한테는 잘 보여도 집 안에서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는지도 모른다.

어지간히 기쁜 일이 있거나 하면 다르지만, TV를 보면서 조금 재미있는 정도로는 표정이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몸을 떠는 정도는 한다. 눈은 입만큼, 이라고 하는데, 몸도 비교적 말이 많다.

이런 자세로 보면 목이 아프지는 않은 걸까. 몸은 위로 향한 채로 고개만을 옆으로 돌리고 있다. 나는 나대로 TV를 보고 있지만, 왼팔은 상당히 괴롭다. 내 팔보다 그녀의 목 쪽이 더 괴로울 법도 하건만. 근육통도 각오할 필요가 있다.

광고가 시작된 타이밍에 왼손이 아프다, 하고 말을 꺼냈다. 넌지시 비켜달라고 말했을 생각이다. 무거우니까, 라고 말하지 않은 만큼 섬세함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달라. 그러자 그녀는 어쩔 수 없네, 하고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적어도 무릎 위에 다시 앉나 싶었으나.

이영차, 하고 아줌마 같은 말을 뱉으면서 그녀는 천천히 몸을 다시 기댔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머리를 바꿔 베고 있다. 심지어 TV가 잘 보이도록 몸의 방향까지 완전히 TV를 향하고 있다. 귀를 막으면 TV 소리가 안 들린다, 라면서 손을 받치는 방식까지 바꾸는 형국이다.

왼손은 편해졌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몇 초 전에 항의를 했던 참이라 다시 말하기는 어렵다. 불만은 있지만 줏대 없다고 생각되기는 싫다. 이쪽이 허탈한 기분으로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아무런 사양 없이 주문을 이어갔다.

말하기를, 계속 배를 쓰다듬고 있으라. 조금 전까지 쓰다듬었던 건 손이 심심해서였고, 약간의 상상의 놀이였다. 그녀를 위해서 했던 것이 아니다. 등산과 마찬가지다. 왜 쓰다듬느냐고 묻는다면, 그곳에 만지기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개가 있었다면 개라도 만졌겠지.

인간이란 신기하게도 요구하는 순간 귀찮아진다. 내키지 않으면서도 왼손을 배에 얹었더니 사랑이 부족하다, 하고 어디서 들어본 말을 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애초에 사랑을 담아서 쓰다듬었던가. 기타리스트가 기타에 안는 마음 정도는 있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한마디 불만을 말할 때마다 데굴데굴하고 팔 안에서 날뛰어댄다. 진심으로 날뛰면 팔에서 떨어져 아픈 꼴을 보는 건 그녀다. 그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그녀도 적당히 흔드는 정도였다만. 그런 정도라도 팔에 걸리는 부담은 무시할 수 없다.

왼손이 저리면 오른손으로, 오른손이 저리면 왼손으로, 자기 마음대로다. 언제 끝나는지도 알 수 없고, 그저 신나게 내 팔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하면서도 불만조차 말하지 못하는 나도 한심하지만. 한 시간 방송이 끝날 때쯤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날 생각이 든 모양이다. 부자연스러운 자세기는 했으니 그녀도 지쳤겠지.

해방됐다, 하고 안도한 것도 잠깐이었다. 이번에는 무릎을 세우도록, 하는 말씀이 내려온다. 슬슬 양반다리도 지치기는 했는데, 그렇다면 다리는 쭉 펴고 싶다. 나른하게 앉아있으니 어서어서, 하고 몰아세우듯 말한다. 끝내는 자기 손으로 내 다리를 억지로 세우고 말았다.

*체육앉기 같은 자세가 되자, 그녀는 거기에 온몸을 기대듯이 앉았다. 턱을 무릎 위에 얹고, 몸을 다리에 찰싹 붙이고는 TV에 푹 빠져있다. 좀 더 가슴이 컸다면 쿠션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상당한 평지라 체중도 단숨에 걸리고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상당히 무겁다.

새삼 상당히 무거워졌구나 하고 느껴버린다. 안아 올려서 키스하는 습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그럴 때보다도 더 큰 무게감이 느껴진다. 냄비로 개구리를 익히면 끓는 물에 다가가도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끓는 물의 개구리도 찬물을 부어주면 깨닫지 않을까. 딱히 비슷한 이야기는 아니다만.

등도 넓어졌다. 넓다고 하면 남자 같다만. 무엇보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알고 있으니 그 차이는 분명하다. 두 배 정도는 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갔나. 손끝을 부드럽게 미끄러뜨리자, 움찔하고 몸이 떨렸다. 그야말로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가 떠오른다.

초등학생이란 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상당한 장난꾸러기였다. 교실의 미닫이문에 칠판지우개를 달아놓거나, 문에 걸리도록 빗자루나 마포를 걸어놓기도 했다. 그중에 몰래 다가가서 친구 등에 손가락을 쓱 미끄러뜨린다는 것이 있었다. 유령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뛰어 넘는 것이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다.

요즘의 아이들도 그런 일을 할까. 초등학교라면 모를까, 중학생은 하지 않으려나.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녀도 과민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한 번 하면 효과가 없어지니 조금 전만의 즐거움이었지만.

TV를 보고 있으니 마침 좋다. 감상을 손가락으로 등에 적어본다. 전국 각지의 풍습이나 향토 요리 같은 것이 나오니, 맛있겠다거나 가보고 싶다는 등 별것 아닌 이야기다. 어려운 것을 써도 전해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만.

여기서 사랑한다고 적어보면 바보 커플 같은 느낌일까. 그런 부끄러운 짓은 할 수 없다. 바보 같은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는 동경이 있지만. 부끄러움, 수치라는 것이 있다. 역 앞 같은 곳에서 사람이 있는데도 당당히 키스하는 커플도 있다는데,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다.

이건 순수한 감상이지만, 그녀의 등은 아주 평탄해서 글자를 적기 편하다. 보통은 어깨뼈가 튀어나와 있는 부분도 살로 메워져 있다. 과연 좀 살이 찐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걱정돼서 들여다봤더니 쇄골은 분명하게 있었다. 당연한가.

*양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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