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은 어제, 내일은 오늘-270화 (270/450)

9년 30화

기습

거하게 날뛰는 그녀, 변명할 수도 없다. 퇴근 도중 편의점에 들렸더니 무척 익숙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은, 오늘은 돌아간다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조금 편의점에서 시간을 죽이고 마음이 정리되면 연락을 하자. 그런 생각이었다.

설마 그 편의점에 그녀가 있을 줄은. 우연도 정도껏 이다. 서서 잡지를 읽는 그녀는 나를 눈치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만약 알면서 시험해봤다고 한다면 좋지 않다. 슬쩍 다가가자 그녀의 시선이 나를 꿰뚫었다.

어서 와, 하고 활짝 미소짓는다. 대외용 미소는 정말로 무섭다. 다른 집 아이들은 이 미소에 동경하기도 하겠지만. 이건 무장이다. 커터칼이라도 이쪽을 향하면 무서운 것과 같아서, 이 미소 또한 자신을 향해지면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도망가지 않고 온 건 장하네. 그 말을 듣고 못 본 척 얼버무리지 않고 얼굴을 내밀어서 정답이었다는 걸 알았다. 하릴없이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데, 그녀가 잡지를 선반에 돌려놓았다. 사지 않아도 되는지 물었더니, 심심풀이였으니 필요 없다고.

오밤중에 편의점까지 왔으니 원하는 잡지라도 사러 왔나 싶었다만.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 심심해서 읽었으니 필요 없다, 하고 다시 말했다. 찰나에 혼란과 함께 차가운 무언가가 등줄기를 내달렸다.

분명히 오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어색해지면 어디서 시간을 때울 거다. 그렇다면 항상 들리는 편의점이겠지, 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게 냉정한 판단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부 직감이다. 오직 직감만을 확신해서 지금 이곳에 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제 이야기는 제대로 들었는가, 하고 질문한다. 순간 점내를 둘러봤지만, 마침 한산한 시간대인지 계산대에 점원이 있을 뿐이었다. 해가 떨어진 어두운 세상 속에 묘한 청결감이 느껴지는 빛의 장소가 있다. 바깥에서 바라보면 안심되는 불빛이, 안에서는 어렴풋한 한기마저 느껴진다.

들었으니까 여기에 와 있다. 수긍하자, 일언지하로 부정당한다. 듣지 않았다, 라며. 분명 점원은 치정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원조교제 커플의 수라장 같은 느낌으로. 좋은 기분은 아니고, 창피하기도 하다. 공개 처형이나 마찬가지다. 그냥 빨리 붙잡아갔으면 좋겠다.

아래에서 뻗어 나온 손이 넥타이를 끌어당겼다. 삼십 센티는 있었던 거리가 사라진다. 올해는 수험이니까 그동안은 하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초조하기도 하고, 상당히 시간이 걸리니까. 툭, 하고 그 말이 가슴에 떨어졌다.

아아, 확실히 그렇다. 난 처음 한마디를 듣자마자 머리가 전혀 일하지 못했다. 그렇구나, 하는 생각은 기쁨보다도 허탈감에 가깝다. 강한 빛을 쬐면 승천이라도 할듯한 기분이다. 그다음으로 찾아오는 건 수치심이다. 거의 하루 종일 무슨 모습을 보였단 말인가. 나잇살 먹고.

너무 갑작스러웠으니 오늘만은 해줄 테니까, 하고 걷기 시작한다. 그녀는 바구니를 손에 들더니 곧장 숙박 용품이 진열된 자리로 직행했다. 콘돔을 손에 들고 비교하더니, 가장 비싼 것을 바구니에 쓱 집어넣고 말았다.

왜 그게 놓인 장소까지 알고 있는가. 새까만 마음이 지나는 것을 분위기로 헤아렸을까. 내가 올 때까지 둘러보고 찾아두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하고 속옷을 손에 든다. 여성 속옷이 아니라 남성 속옷이다. 벌로 이걸 입어줘야겠다, 라며.

건네진 것을 보니 사진이 굉장하다. 급격한 각도로 잘린 비키니 타입의 검은 브리프다. 말이 막히자, 그녀가 웃는다. 역시, 라는 건 그럴 줄 알았다는 의미겠지. 이 속옷은 부끄럽다.

무엇보다 너무 심하게 타이트하다. 볼록 튀어나온다고 표현하는데, 이런 걸 입었다가는 정말로 툭 튀어나온다. 주머니가 어떻게든 들어가는 정도로, 고간 모양이 분명하게 떠오르게 된다. 항의하려고 했지만, 벌이라는 한마디로 기선을 제압당했다. 팬티가 바구니에 들어갔다.

그렇게 쇼핑이 끝나는가 싶었지만, 그녀는 그대로 점내를 순회하기 시작했다. 과자 코너에서는 포테토 칩이나 초콜릿, 쿠키 등을 대량으로 집어넣는다. 몇 리터나 되는 음료를 몇 개나 들고, 거기에 와플이나 슈크림 같은 생과자까지도 가져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 만에 먹을 양이 아니다. 사흘, 아니 일 주라도 무리일지도 모른다. 매일 필사적으로 먹어도 분명 남는다. 평소에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지 않는다. 같은 것이라도 슈퍼가 싸다면서 나를 말릴 정도다.

과연 멈춰야겠다 싶어서 팔을 당긴다. 뒤돌아본 그녀의 눈동자는 물기로 가득 차 있고, 어깨마저 떨고 있었다. 분노, 도 있겠지만. 불안하게도 만들고 말았겠지. 그걸 보고서야 겨우 미안한 짓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생각했다.

시작은 오해가 원인이니, 오해를 살만한 말투를 한 그녀도 나쁘다. 그것도 뭔가 말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하루가 가기 전에 화해도 할 수 있었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하는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말투는 어쨌든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오해한 것도 나고, 그 때문에 태도가 나빠진 것도 나다. 그것 또한, 그녀가 오해가 있다는 걸 깨닫고 굳이 먼저 앞지르기까지 해서 오해를 풀러 와주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말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과자가 먹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낭비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화해할 계기가 필요할 뿐이다. 그녀는 좋지 않았던 부분을 스스로 다가와 주는 것으로 갚았다. 나는 착각한 것을 사죄하고, 그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갚는다. 그런 의식인 것이다.

손목을 가만히 쥔 나를 노려보고는 할 말이라도, 하고 그녀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조금 망설인다. 얼마간의 선택지는 있었지만 미안, 이라는 솔직한 말만이 남았다. 위자료로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하고 덧붙인다.

쇼핑 바구니를 가만히 바라본 다음 내게 건넨다. 이제 됐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계산대까지 걸어가며, 더는 위가 무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겨우 한숨 돌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건 꼭 입어야 되니까, 하고.

[필독] 여기부터는 본 게시글의 작성자인 '로리간좋아'가 번역했습니다. 번역기에 돌리고 그 후 수정을 거쳤으며 혹시라도 빼먹은 한자나 일본어가 있을경우 몇화인지 써서 댓글로 달아주시면 (시간나면)고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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