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 마지막 소원 (18/118)


18. 마지막 소원
202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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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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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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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애란의 손은 유리에 베인 건지 시뻘건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수희가 피가 묻은 손으로 눈물에 젖은 얼굴을 닦아 내는 애란의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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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게 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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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나 해.”

피가 묻은 손으로 얼굴을 닦은 탓에, 눈 주변이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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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그만둔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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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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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엄마랑 약속해.”

눈가에 묻은 피 때문에 눈물이 빨간 물감처럼 주룩 흘러내렸다.

평소와 다른 애란의 모습에 수희는 섬뜩한 공포가 몰려왔다.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애란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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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단 진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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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보다 얼마나 더 진정할 수 있는데!”

소리를 버럭 지르며 애란이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러더니 허리가 들썩거릴 정도로 울음을 끅끅 뱉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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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야, 너까지 엄마한테 이러지 마.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데.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던 애란은 오랫동안 거실에 엎어져 눈물을 쏟아 냈다.

먹지도 않고 울기만 해 탈진한 건지 애란은 바닥에 쓰러졌다.

뒤이어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온 주형은 어질러진 거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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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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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엄마부터 방으로 옮겨 줘.”

주형은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던져두고 애란을 안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누운 애란의 손을 보고 수희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다행히 유리 조각이 박히지는 않았지만, 유리 표면에 긁힌 건지 살갗이 벌어져 있었다.

협탁 서랍에서 구급상자를 꺼낸 수희가 주형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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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어?”

주형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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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어디를 갔다 온 건지, 저녁 늦게 집에 와서 밥도 안 먹고 바로 방에 들어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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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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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방 안에서 안 나오길래 들어갔더니 울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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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는 말 안 하고?”

주형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인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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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냥 계속 그 말만 했어. 누나 배우 그만두게 할 거라고.”

잠이 든 애란을 깨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새벽 내내 잠들지 못했을 것 같아 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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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랑 싸우기라도 했어? 엄마가 옛날부터 누나 그 자리에 앉히려고 얼마나 혈안이 돼 있었는데, 왜 이제 와서 배우를 그만두게 할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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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한테 묻고 싶은 말이야.”

정상에 오른 수희를 보며 제 일처럼 기뻐하던 애란이었다.

자신의 인생은 진즉 버리고, 수희의 배우 인생에 모든 기대를 걸었던 애란이었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나쁜 꿈이라도 꾼 것처럼, 금방 잊힐 나쁜 일을 겪은 거라 여기고 싶었다.

하지만 수희의 기대와는 달리, 애란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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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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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처럼 결혼하고 아기 가져 봐. 사람들이 찾아 줄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다른 일 알아봐. 평생 배우 일에 매달릴 생각하지 말고.”

어떤 날은 수희를 설득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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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연기하는 게 싫어. 증오스럽고, 경멸스러워!”

어떤 날은 모욕적인 언사를 날리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수희는 지칠 수밖에 없었다.

매일같이 본가로 불러들이니 수희는 점점 애란의 전화를 피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이 벌어졌다.

<침수> 촬영 이후, 오랜만에 함께 연기했던 배우들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식당에 도착하기 무섭게 애란에게서 연락이 왔다.

Rrrrr―

얼마나 애란에게 시달린 건지 수희는 이제 휴대폰 벨 소리가 두려웠다.

애란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무시한 채 수희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예약해 둔 방으로 들어간 수희는 먼저 도착한 배우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떠들며 이야기할 틈도 없이 다시금 휴대폰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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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선 수희가 방을 나와 휴대폰 액정을 바라봤다.

애란의 전화인 줄 알았는데 주형에게서 온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른 수희가 휴대폰을 귓전에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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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주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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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지금 어디야?]

급박한 목소리에 수희가 문이 닫힌 방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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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약속 있어서 밖에 나와 있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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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 바로 엄마한테 가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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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왜?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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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평소랑 다른 것 같아서. 누나가 좀 가서 엄마랑 이야기 좀 해 봐.]

애란이 할 말이 무엇인지 알기에 수희는 애란을 찾아가는 것이 껄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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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그렇겠지. 엄마가 계속 일 그만두라고 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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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엄마랑 같이 안 지내니까 잘 몰라. 확실히 다른 때하고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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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내가 엄마한테 가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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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지금 강의 마쳤으니까 바로 집으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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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전화를 끊은 수희는 어쩔 수 없이 약속을 뒤로하고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본가로 가는 내내 애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계속될 뿐이었다.

늘 휴대폰을 쥐고 사는 애란이었기에 단 한 번도 수희의 전화를 안 받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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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왜 안 받지.”

애란에게 걸려 왔던 전화를 받지 않아서 더 불안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수희의 차는 속도를 내 도로를 가로질러 달렸다.

애란의 집에 도착한 수희가 빠르게 도어 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 뒤로 주춤할 정도의 거센 바람이 수희를 덮쳤다.

눈을 찌푸렸던 수희는 바람이 흘러 들어오는 거실 베란다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란이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으니까.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모습에 수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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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엄마!”

놀란 수희가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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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마!”

애란은 수희에게 소리쳤고, 수희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눈을 질끈 감은 수희가 거실에 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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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려와서 이야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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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엄마 이 손 놓을 거야.”

애란이 베란다 난간을 붙잡은 두 손을 내려다봤다.

하얗게 질려 버린 수희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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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안 갈게. 여기서 이야기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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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말했지. 엄마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연기 그만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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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결국 수희의 배우 생활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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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찍은 영화가 네 마지막 작품인 거야.”

어쩌면 애란 덕분에 이 자리에 오른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배우를 꿈꾼 건 수희, 자신이었다.

아무리 애란의 도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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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그렇게는 못 해. 나 연기 계속하고 싶어. 그걸 엄마도 바랐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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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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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고 이리 내려와. 내려와서 말해, 엄마.”

두 무릎을 꿇은 채로 수희가 엉금엉금 애란에게 기어갔다.

살기가 어린 눈빛으로 수희를 노려보며 애란이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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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오디션 보기 싫다고 어린애처럼 떼쓸 때! 그때 너 끌고 간 게 나야. 내가 그 자리에 널 올려놓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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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고립시키고 이 길만 가게 했잖아. 엄마 뜻대로 하다가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남았어. 이제 나한테는 연기밖에 남은 게 없다고. 그런데 왜 이제 그만하라는 건데. 도대체 왜.”

어금니를 악문 애란은 숨기고 있는 사실을 수희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끝까지 혼자 떠안고 갈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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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그만하라면 그만해. 토 달지 말고.”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수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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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음대로 조종하던 그때의 나 아니야. 언제까지 내 인생, 엄마가 쥐고 흔들 수는 없어.”

물러서는 건 이미 수없이 해 왔다.

지금까지 애란이 살고 싶은 인생을 대신 산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야 애란에게서 벗어나 하고 싶은 연기를 하며 마음껏 꿈을 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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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래고, 내 꿈이야. 엄마는 이제 엄마 인생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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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금 엄마 말 안 듣겠다는 거야?”

애란은 늘 그랬다. 매번 수희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했다.

저릿한 숨을 집어삼킨 수희가 달달 떨리는 입술을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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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번에는 엄마가 져 줘.”

말이 끝나자마자였다. 애란은 난간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말았다.

애란의 상체가 휘청거리자 수희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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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공포에 사로잡힌 수희와 달리, 애란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수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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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봐. 엄마 말 안 들을 거야?”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착한 딸이라면 말 몇 마디에 배우 일을 그만둘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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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엄마 제발 난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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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너야. 어떻게 할래. 날 살릴래, 죽일래.”

애란은 정말 죽고 싶어 난간에 앉은 게 아니었다.

제 뜻에 반항하는 자신의 딸을 굴복시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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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만해, 제발. 내가 다 잘못했어.”

괴로움에 몸부림치듯 수희가 고개를 저어 내며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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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딸이었잖아. 그러니까 엄마 말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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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알겠으니까 내려와, 어서.”

일단 위태롭게 난간에 앉아 있는 애란을 내려오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애란이 혹여 돌발 행동을 벌일지 몰라 수희는 천천히 한 걸음씩 떼어 냈다.

다섯 걸음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애란이 펼치고 있던 팔을 내려 난간을 짚으려 했다.

차가운 난간을 붙잡고 내려오려는데, 몸이 기우뚱하고 뒤로 넘어갔다.

손을 뻗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애란이 인형처럼 한순간에 난간 너머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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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새하얗게 질려 버린 수희가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애란은 한 손으로 난간 바를 붙잡고 있었다.

수희는 상체를 아래로 숙여 애란의 손을 붙잡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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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손 잡아.”

애란이 아래로 떨어져 있던 손을 들어 수희의 손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잔혹하게도 두 사람의 거리는 너무나 멀어 스쳐 지나가지도 못했다.

결국, 수희가 난간에 붙어서 더욱 깊이 몸을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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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 손 줘.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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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 너까지 떨어져!”

수희는 발끝으로 겨우 난간을 딛고 서 있었다.

그러다 아래로 몸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전전긍긍하는 수희와 달리 애란은 미련 없이 뻗었던 손을 아래로 떨궜다.

수희는 순식간에 변한 애란의 얼굴을 보고 심장이 멎는 듯했다.

애란이 체념한 듯 수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간 바를 붙잡은 애란의 손에서 점차 힘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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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금방이라도 애란이 난간 바를 붙잡은 손을 스스로 놓을 것만 같았다.

눈꺼풀을 감았다가 뜨는 그 짧은 찰나조차 아깝다는 듯, 애란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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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연기하지 마. 네 엄마 마지막 소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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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끝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버티고 있던 애란은 난간 바를 놓았고, 수희가 보는 앞에서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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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모든 게 거짓 같았다.

꿈이라면 악몽일 것이고, 현실이라면 지옥이었다.

난간을 붙잡고 있는 수희의 뒤로 주형의 외침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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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비명과도 같은 그 소리가 수희의 귓전을 때렸다.

난간에 서 있던 수희가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주형을 붙잡았다.

어떻게든 아래를 보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주형이 수희를 바닥으로 힘껏 밀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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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악!”

주형의 절규가 바닥에 쓰러진 수희의 위를 덮쳤다.

손을 벌벌 떨며 주형이 수희의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흔들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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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119에 전화해. 빨리! 정신 차리라고!”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에도 수희는 공황에 빠져 눈앞이 새까맣게 번졌다.

삐이이―

곧이어 귀에 이명이 들리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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